영국은 이미 '외로움 담당 장관'을 임명했고, 여러 나라에서도 사회적 고립을 중요한 공공정책 과제로 다루고 있다. 이는 외로움이 개인의 감정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가 함께 해결해야 할 과제임을 보여 준다. 행정학에서도 조직의 성과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신뢰와 관계에서 비롯된다고 본다. 아무리 뛰어난 제도와 기술이 있어도 공동체가 무너지면 사회는 건강할 수 없다. 사람은 혼자서는 온전히 살아갈 수 없는 존재다. 관계가 끊기면 삶의 의미도 약해진다.
성경 역시 이를 오래전부터 말씀한다.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창세기 2:18)**라는 말씀은 인간의 본질이 관계 속에 있음을 선언한다. 하나님은 인간을 공동체적 존재로 창조하셨다. 교회도 단순한 예배 장소가 아니라 서로를 위로하고 격려하는 공동체이다.
예수님은 병든 사람만 고치신 것이 아니라 외로운 사람을 찾아가셨다. 세리와 죄인의 친구가 되어 주셨고, 소외된 자와 함께 식탁을 나누셨으며, 울고 있는 사람 곁에서 함께 눈물을 흘리셨다. 사랑은 치료 이전에 '함께 있어 주는 것'에서 시작된다.
미국의 심리학자 존 카치오포는 "외로움은 하루에 담배 여러 개비를 피우는 것만큼 건강에 해롭다."고 말했다. 이 말은 외로움이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생명을 위협하는 위험요인임을 시사한다.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마더 테레사도 이런 말을 남겼다. "세상에서 가장 큰 질병은 나병도 결핵도 아니다. 사랑받지 못한다고 느끼는 것이다." 이 한마디는 현대인의 고독을 가장 정확하게 설명한다. 물질은 풍요로워졌지만 사랑은 메말랐고, 정보는 넘치지만 진정한 대화는 줄어들었다. 우리 사회는 경쟁에는 익숙하지만 공감에는 서툴다. 성공을 위해 달려가지만 정작 함께 걸어갈 사람을 잃어버리기도 한다. 특히 노년층의 독거생활, 청년들의 사회적 단절, 가족 해체와 1인 가구 증가는 외로움을 더욱 깊게 만든다.
그러나 외로움은 반드시 극복할 수 있다. 가장 좋은 치료제는 사람이다. 따뜻한 인사 한마디, 진심 어린 전화 한 통, 함께하는 식사, 경청하는 마음이 사람을 다시 살린다. 교회와 가정, 지역사회가 이러한 관계의 울타리가 될 때 외로운 사람은 희망을 발견하게 된다.
시편 기자는 "하나님이 고독한 자를 가족과 함께 살게 하신다"(시편 68:6)고 고백한다. 하나님은 인간을 고립이 아니라 공동체 안에서 회복되도록 이끄시는 분이시다. 참된 신앙은 하나님과의 관계뿐 아니라 사람과의 관계를 회복시키는 능력이 있다. 21세기는 AI가 많은 일을 대신하는 시대가 될 것이다. 그러나 어떤 인공지능도 사람의 따뜻한 손길과 진심 어린 위로를 대신할 수는 없다. 기술은 발전할수록 인간다움은 더욱 소중해진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라고 말했다. 또한 빅터 프랭클은 "인간은 사랑을 통해 가장 깊은 삶의 의미를 발견한다."고 했다. 시대와 학문은 달라도 결론은 같다. 사람은 관계 속에서 살아가고, 사랑 속에서 성장한다.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빠른 인터넷이 아니라 더 따뜻한 마음이며, 더 많은 팔로워가 아니라 더 깊은 한 사람과의 만남이다. 외로움의 시대를 이기는 힘은 사랑이며, 고독을 치유하는 가장 위대한 처방은 함께하는 공동체이다. 21세기의 진정한 경쟁력은 기술이 아니라 사람이다. 사람을 존중하고, 사람을 품고, 사람을 살리는 사회가 가장 건강한 사회이다. 서로의 손을 잡아 주는 작은 사랑이 외로움을 희망으로 바꾸고, 고독을 행복으로 바꾸는 가장 위대한 기적이 될 것이다. 21세기는 과학기술이 인류 역사상 가장 빠르게 발전하는 시대이다. 그러나 기술의 발전이 인간의 행복을 자동으로 보장하지는 않는다. AI는 정보를 제공할 수 있지만 사랑을 대신할 수는 없고, 로봇은 일을 도울 수 있지만 상처 입은 마음을 위로할 수는 없다. 결국 인간을 살리는 힘은 기술이 아니라 사람이며, 사람을 이어 주는 사랑과 신뢰, 그리고 공동체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경쟁에서는 세계 최고를 지향하면서도, 함께 살아가는 지혜는 점점 잃어가고 있다. 혼자 성공하는 사람보다 함께 성장하는 사람이 더 가치 있으며, 혼자 높아지는 사회보다 서로를 품는 공동체가 더욱 건강한 사회이다. 행정학은 신뢰를 사회자본이라 말하고, 성경은 사랑을 가장 큰 계명이라 가르친다. 학문과 신앙은 서로 다른 길을 걷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같은 목적지에 이른다. 사람을 존중하고 사람을 살리는 사회가 가장 건강한 사회라는 사실이다.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소유가 아니라 더 깊은 관계이며, 더 빠른 속도가 아니라 서로를 기다려 주는 여유이다. 외로운 이웃에게 먼저 다가가는 따뜻한 인사 한마디, 진심 어린 전화 한 통, 함께 식사하는 작은 나눔이 누군가의 삶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희망이 될 수 있다. 교회와 가정, 학교와 지역사회가 이러한 사랑의 울타리가 될 때 외로움은 희망으로, 고독은 행복으로 바뀔 것이다. 21세기의 진정한 경쟁력은 인공지능이 아니라 인간다움이다. 서로를 존중하고 사랑하며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를 세워 갈 때 우리의 가정과 교회, 그리고 대한민국의 미래도 더욱 따뜻하고 건강해질 것이다.
"사람은 다른 사람의 삶에 빛을 비출 때 자신의 길도 함께 밝아진다."(알베르트 슈바이처)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그들이 수고함으로 좋은 상을 얻을 것임이라. 혹시 그들이 넘어지면 하나가 그 동무를 붙들어 일으키려니와."(전도서 4:9~10)
양기성 교수(Ph.D., Hon. Th.D.)
서울신학대학교 교회행정학 특임교수
웨슬리언교회 지도자협의회 대표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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