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대한감리회 세계선교가 선교사 개인과 개별 파송교회의 헌신에 의존해 온 기존 구조에서 벗어나 교단과 파송교회, 선교사, 현지교회가 함께 책임을 나누는 새로운 세계선교 체계로 전환해야 한다는 정책 제안이 나왔다.
지난 28일 열린 '감리회 세계선교사 설문조사 결과 보고 및 정책포럼'에서는 세계선교사들의 사역 환경과 생활 실태를 분석한 설문조사 결과가 발표됐다. 이번 조사에서는 재정과 건강, 심리 상태, 안식년, 은퇴 준비, 사역 이양 등 선교사의 생애 전반에 걸친 현황이 공개됐으며, 이를 토대로 감리회 세계선교의 지속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다양한 정책 방향도 함께 제시됐다.
이번 정책포럼은 교단 본부나 일부 전문가 중심의 정책 제안이 아니라 선교 현장에서 활동하는 선교사들의 실제 목소리를 바탕으로 향후 정책 수립의 기초 자료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미를 더했다. 완성된 정책을 발표하는 자리가 아니라 현장의 현실을 객관적인 데이터로 확인하고 앞으로 논의해야 할 과제를 제시하는 출발점이라는 평가가 이어졌다.
황병배 감리회 본부 선교국 총무는 "선교의 미래는 현장의 목소리에서 시작된다"며 "정책은 책상 위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선교 현장의 경험과 요구 속에서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전쟁과 경제 불안, 종교 규제, 기후위기, 디지털 환경 변화, 선교사 고령화와 신규 선교사 감소 등 급변하는 선교 환경 속에서 과거의 방식만으로는 미래를 준비하기 어렵다고 진단했다.
◇ 세계선교사 설문조사, 재정 불안과 구조적 문제 확인
이번 조사는 감리회미래정책연구소가 지난 6월 1일부터 14일까지 실시했다. 총 55개 문항으로 진행된 조사에는 세계선교사 202명이 참여했다. 응답자는 남성 153명, 여성 49명이었으며, 교역자 선교사는 164명으로 전체의 81.2%를 차지했다.
사역 경력을 살펴보면 9년 이상 20년 이하의 선교사가 91명으로 가장 많았으며, 21년 이상 장기 사역자도 62명에 달했다. 전체 응답자의 상당수가 중장기 사역 경험을 갖고 있어 선교 현장의 구조적 문제를 파악하는 데 의미 있는 자료가 됐다.
조사에서 가장 두드러진 어려움은 경제적 문제였다. 개인적으로 가장 큰 어려움을 묻는 질문에서는 응답자의 46.7%가 경제 문제를 꼽았고, 실제 사역 과정에서 겪는 가장 큰 어려움 역시 53.1%가 경제적 부담이라고 응답했다.
경제적 여건을 스스로 평가하는 항목에서도 어려움을 호소하는 응답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전체 응답자 가운데 절반에 가까운 96명이 '어려움' 또는 '매우 어려움' 수준을 선택한 반면,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다고 응답한 선교사는 21명에 불과했다.
경제적 어려움은 심리적 안정에도 영향을 미쳤다. 심리적으로 불안정한 상태라고 응답한 비율은 13.9%였으며, 보고서는 경제적 어려움이 큰 선교사일수록 심리적 불안도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나는 경향을 확인했다고 분석했다.
또한 파송교회와 선교사의 관계 역시 개인적인 신뢰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구조라는 점도 드러났다. 응답자의 33.2%는 처음 자신을 파송했던 교회가 아닌 다른 교회에 소속돼 있었으며, 가장 큰 이유는 담임목사의 교체였다. 이어 파송교회의 재정 악화가 주요 원인으로 조사됐다.
이는 담임목회자의 인사 이동이나 교회의 재정 상황에 따라 장기적인 선교사역이 영향을 받을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결과로, 특정 교회나 개인에게 의존하지 않는 교단 차원의 안정적인 지원 체계 마련이 필요하다는 의견으로 이어졌다.
선교비 운영 방식에서도 개선 과제가 확인됐다. 사역비와 생활비를 구분해 지원받는 선교사는 전체의 13.4%에 불과했고, 대부분은 생활비와 사역비를 함께 지원받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 같은 구조에서는 선교사가 생활비를 줄여 사역을 이어가거나 반대로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사역 규모를 축소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이에 따라 생활비와 사역비, 의료비, 자녀 교육비, 위기 대응비 등을 구분한 표준 지원 체계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함께 제시됐다.
◇ 안식년과 은퇴 준비, 개인이 아닌 정책 과제로 접근해야
조사 결과는 안식년과 은퇴 준비 역시 선교사 개인의 문제를 넘어 교단 차원의 정책으로 접근해야 할 필요성을 보여줬다.
응답자의 약 65%는 안식년을 경험하지 못했다고 답했으며, 은퇴 이후를 충분히 준비했다고 평가한 비율은 10% 안팎에 머물렀다.
또한 응답자의 18%는 감리교 교역자 은급과 국민연금 모두에 가입하지 않은 상태였으며, 개인연금을 준비한 비율도 약 20%에 그쳤다. 은퇴 후 한국에서 생활하기를 희망하는 선교사는 절반을 넘었지만, 실제 주거와 생계 계획까지 준비한 사례는 많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포럼에서는 선교사의 은퇴를 사역 종료 이후의 개인 문제로 보기보다 파송 이전부터 준비해야 하는 정책의 일부로 인식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시됐다. 파송 준비부터 현장 사역, 위기관리, 안식년, 사역 이양, 은퇴와 귀국 정착까지 이어지는 선교사 생애주기 관리 체계 구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선교사 고령화 역시 중요한 과제로 제시됐다. 정책 자료에 따르면 감리회 소속 선교사 1,261명 가운데 50대가 501명, 60대가 303명으로 전체의 약 64%를 차지했다. 반면 20대 선교사는 6명, 30대는 102명에 그쳐 세대 교체가 시급한 상황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발표자는 현재와 같은 흐름이 이어질 경우 향후 10년 안에 감리회 선교사 수가 크게 감소하고 평균 연령도 더욱 높아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다만 이는 현재의 연령 구조와 신규 선교사 감소 추세를 토대로 한 정책적 전망으로, 보다 정밀한 후속 연구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 협력 중심의 세계선교 생태계 구축 필요성 제기
포럼에서 제시된 정책 방향의 핵심은 개인 중심 선교에서 협력 중심의 선교 생태계로 전환하는 것이었다.
기존처럼 선교사가 개별적으로 사역지를 선택하고 후원을 모아 활동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현지교회의 요청을 바탕으로 교단과 파송교회, 선교기관이 함께 참여하는 네트워크 파송 체계가 대안으로 제시됐다.
또한 동일 국가나 권역에서 여러 선교 단위가 협력해 인력과 재정, 전문성을 공유하는 협력선교 모델도 제안됐다. 이를 통해 동일 지역에서의 사역 중복과 후원 경쟁을 줄이고, 특정 선교사가 이동하거나 은퇴하더라도 사역이 지속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아울러 선교사 재교육과 권역별 모임, 위기관리, 의료 및 상담 지원, 재정 보고, 사역 평가 등을 하나의 시스템으로 연결하는 방안도 제시됐다. 정책 방향은 공공성과 투명성, 연대성, 지속성이라는 네 가지 가치에 기반을 두고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만 공공성과 투명성 강화가 선교사에 대한 통제나 감시로 받아들여져서는 안 된다는 점도 함께 언급됐다. 선교 현장의 특수성과 보안, 선교사의 자율성을 존중하면서 공동체가 함께 책임을 나누는 제도적 기준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또한 교단 본부는 모든 사역을 지시하는 조직이 아니라 선교사와 파송교회, 현지교회를 연결하고 필요한 지원을 제공하는 플랫폼 역할을 수행해야 하며, 선교사 역시 정책 수립 과정의 핵심 주체로 참여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시됐다.
◇ 현지교회와 함께하는 선교 패러다임으로 전환 요구
사역 이양과 현지인 지도자 양성 역시 앞으로의 선교 정책에서 중요한 과제로 다뤄졌다.
조사에서는 약 60%의 응답자가 자신의 후임자로 현지인 지도자를 세울 계획이라고 답했지만, 선교재산 관리와 현지교회 이양 계획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하지 못한 사례도 적지 않았다.
포럼에서는 앞으로의 선교 성과를 단순히 한국인 선교사가 세운 교회나 기관의 숫자로 평가하기보다 현지교회의 자립과 현지 지도자의 성장, 선교재산의 투명한 이양 여부 등을 중요한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 같은 방향은 국제 선교계가 강조하는 다중심 선교 흐름과도 맞닿아 있다. 특정 국가가 일방적으로 선교를 수행하는 구조를 넘어 다양한 지역의 교회가 서로 협력하고 자원을 공유하는 선교 모델이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국내 이주민 선교 역시 세계선교의 새로운 축으로 제안됐다. 외국인 근로자와 유학생, 다문화가정을 단순한 지원 대상이 아니라 선교의 동역자이자 미래 지도자로 세우는 접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포럼에서는 해외 사역 경험을 가진 선교사와 국내 교회, 이주민 공동체를 연결할 경우 해외선교와 국내선교를 함께 아우르는 새로운 선교 모델을 구축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은퇴 선교사와 목회자, 전문직 평신도의 경험을 이주민 사역과 선교 교육에 활용하는 방안도 함께 검토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한편 이번 설문조사는 전체 감리회 선교사 약 1,300명 가운데 202명이 자발적으로 참여한 결과인 만큼 이를 전체 선교사의 현실로 일반화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점도 함께 언급됐다. 이에 따라 국가와 권역, 연령, 성별, 사역 분야 등을 세분화한 후속 조사와 함께 선교사, 현지인 지도자, 파송교회 등을 대상으로 한 심층 연구가 이어져야 한다는 제언도 나왔다.
포럼에서는 향후 정책 추진 과정에서 재원 마련과 제도 정비, 공동재정 운영, 의료·상담 지원, 안식년과 은퇴 지원, 선교재산 관리 등에 대한 구체적인 실행 계획을 마련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참석자들은 무엇보다 감리회 세계선교의 미래는 누가 선교를 통제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선교의 책임을 누가 함께 나누고 지속가능한 구조를 만들어 갈 것인가에 달려 있다고 입을 모았다. 개인과 개별 교회의 헌신에 의존해 온 기존 방식을 넘어 교단과 파송교회, 선교사, 현지교회가 함께 책임을 나누는 협력 체계 구축이 앞으로 감리회 세계선교의 중요한 과제로 제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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