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내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수 주째 두 자리에서 세 자리를 오가고 있다. 아직 속단하기 이르지만 이 정도 수준에서 더 이상 대량 감염자 수가 증가하지 않는 한 교회 예배를 비롯해 모든 일상을 정상적인 수준으로 복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 그러나 총리도, 질본도 입을 굳게 다물고 있다.

수도권의 교회들은 어제 주일예배도 예배당 수용 좌석 수의 30% 선에서 현장 예배를 진행했다. 이는 프로야구 등 스포츠 경기 입장객 수와 동일하다. 아무리 감염병 확산이 원인이라 하더라도 하나님을 예배하는 신앙 행위와 개인의 취미생활이 감은 범주에서 취급받아야 하는 것은 기독교인에게 있어서는 모욕에 가깝다.

그런데도 교계에서의 별다른 움직임이 없다. 주요 교단들은 정부와의 협의체에서 뭔가 조치를 발표하지 않는 한 그대로 따르는 분위기이다. 유튜브 등 공간에서 현장 예배와 사이버 예배에 대한 찬반 논란이 뜨거운 것과는 사뭇 대조적이다.

‘K방역’이라 이름 붙여진 국내 코로나19 방역 시스템은 한때 해외 언론에서 모범 사례로 소개되었다. 일일 확진자 수가 8만 명을 돌파한 미국과, 아베 총리의 퇴진사태까지 불러온 일본과 비교하면 분명 성과라 할 수 있다. 그러나 ‘K방역’은 지난 5월 팬데믹 종료를 선언한 아프리카 탄자니아나 완전한 일상 복귀를 공식 발표한 뉴질랜드, 대만, 핀란드, 중국 등과 비교해 봐도 성공이라 평가하기 어렵다.

지금까지 조사된 코로나19의 치사율은 세계 평균이 3.1%, 한국은 1.6%이다. 우리나라에서 매년 독감으로 사망하는 사람이 2천여 명인데 비해 코로나19로 3백여 명이 사망했다. 그렇다고 코로나19가 독감보다 못하다고 할 수는 없겠으나 그렇게 무서운 질병도 아니라는 말이다. 적어도 수치상으로는 그렇다.

코로나19 집단 감염 예방을 위해 우리나라에서는 ‘마스크 쓰기’와 같은 개인위생과 ‘사회적 거리두기’가 철저히 시행되고 있다. 개인이 마스크를 쓰지 않고 대중교통 수단을 이용할 수 없을뿐더러 밖에 나다니다 단속되면 벌금을 내야 한다. 그렇게 개인 통제가 엄격한데도 확진자 수는 좀처럼 줄어들지 않고 있다.

인도의 대표적인 빈민가인 뭄바이는 주민 57%에서 코로나19 항체가 확인되어 집단면역이 형성된 첫 사례로 주목받았다. 이곳은 사회적 거리두기 자체가 불가능한 곳인데도 지난 7월 ‘집단면역’이 형성되어 가장 먼저 코로나19에서 해방되었다.

스웨덴은 코로나19 팬데믹 초기에 집단면역을 시도하다 사망자가 많이 발생해 대표적인 실패 사례로 꼽혔다. 그러나 지금은 집단면역이 성과가 나타나 상황이 역전되었다. 스웨덴은 개인의 마스크 착용을 규제하지 않고 종교활동을 비롯해 모든 사회활동을 규제하지 않았다. 세계보건기구(WHO) 특사인 데이빗 나바로 박사는 “(지나친) 코로나 봉쇄는 모든 사람, 특히 가난한 이들과 중소기업의 생계를 완전히 깨뜨린다”고 강조하면서 스웨덴의 방역사례를 높이 평가했다.

일부 외국의 사례를 한국의 사례와 단순 비교해 옳다 그르다를 평가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개인과 사회적인 철저한 방역시스템에도 불구하고 완전한 종식을 기대하기 어렵다면 언제까지 이런 상태로 갈 수는 없다. 사회적인 피로감이 한계치에 도달한 이상 조속히 출구전략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더구나 코로나19 집단 감염을 막는다는 명분으로 개인의 기본권이 침해되는 상황은 더이상 방치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한국기독교생명윤리협회가 지난 22일 개최한 ‘전염병과 생명윤리’ 주제 세미나에서 정소영 변호사는 발제를 통해 이 문제를 강도 높게 지적했다. 그는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 사태를 이용해 독재 정권이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고 독재성을 강화하는 일들이 잦아지고 있다”며 “어쩌면 팬데믹으로 생명을 잃는 경우보다 인간이 누려야 할 기본적인 자유와 공동체의 지지가 상실된 결과로 생명을 잃는 일이 더 많을지 모른다”고 경고했다.

이는 지난 8월 말 우리 정부에 서한을 보내 코로나19로 인한 정부의 종교 탄압을 공개적으로 지적한 미국의 저명한 북한인권운동가인 수잔 숄티 여사와 미국의 시민단체 ‘쥬빌리 캠페인’ 등의 지적과도 같은 맥락이다. 수잔 숄티와 국제사회는 한국 정부가 코로나19의 재확산의 책임을 개신교에 돌리는 것은 코로나를 이용해 정치적 반대 목소리를 억압하려는 시도라고 주장했다.

마스크와 같은 개인 보호 장비가 전혀 없는 상태에서도 코로나19를 극복한 사례는 신종 바이러스를 막연한 두려움의 대상으로만 인식해서는 극복할 수 없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국가적 통제 속에 마스크를 안 쓰면 제재 대상이 되고, 교회에 가서 마음대로 예배도 드릴 수 없는 지구상에 몇 되지 않는 나라 중 하나다. 그래서 방역정치, 방역독재라는 말이 국민들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상황이다.

현대의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히포크라테스는 ‘진정한 의사는 내 몸 안에 있다. 몸 안의 의사가 고치지 못하는 병은 어떤 명의도 고칠 수 없다’고 했다. 하나님이 주신 자연치유력, 즉 면역력을 두고 한 말이다. 국가가 강제한다고 병을 고칠 수는 없다.

  • 네이버 블러그 공유하기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press@cdaily.co.kr

- Copyright ⓒ기독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독교 종합일간지 '기독일보 구독신청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