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아는 시선을 창밖으로 옮기다가 자기도 모르게 ‘성경에 의하면’이라는 문구를 딸각, 바닥에 떨어뜨린다. 노아만 들을 수 있는 말이고, 이어지지 않는 말이다. 엘리엇의 아들은 사고 이후 눈을 한 번도 뜨지 못한 채 죽었다. 우리가 무슨 죄를 지었다고 주님께서 이러시는지 모르겠어요, 하며 엘리엇 부인은 양손으로 얼굴에 흐르는 눈물을 훔치며 말한다. “주님은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게 있다고 생각하시는 걸까요?” 두 사람은 늘 걷는 길 위에서 돌연 방향을 잃고, 이름조차 기억 못 하며 손을 떠는 노인이 되었다. 노아는 두 사람에게서 진지하면서도 진실할 수밖에 없는 인생을 느낀다. 경건함을 본다. 노아는 링 안에 있는 두 사람을 향해 자기도 모르게 두 손을 깍지 낀다. 그것은 기도하는 손이다. 어렸을 때는 아버지가 보는 권투 중계를 무심히 지나쳤는데, 그날부터 권투는 노아에게 글, 춤, 노래, 그림이 된다.
백정기 – 침묵
스마트폰 사용 금지 법안은 학습 집중도 향상과 스마트폰 과의존 개선을 위한 제도적 조치입니다. 이 변화는 가정에 이어져야 합니다. 스마트폰 중독은 알코올이나 니코틴 같은 물질 중독과 달리 ‘행위 중독’에 해당하지만, 뇌과학적으로는 유사한 메커니즘을 공유합니다. 스마트폰과 SNS는 이 하이퍼리얼리티를 구현하는 대표적 장치입니다. 이들은 거울처럼 나를 비추는 것이 아니라, 필터링되고 연출된 ‘또 다른 나’를 생성합니다. 청소년이 디지털 세계 밖에 있는 실제 세계와의 관계를 회복하고, 재구성하도록 돕는 데 의의가 있습니다. 이렇듯 스마트폰 과몰입이라는 복합적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단속과 금지 규제 이상의 접근이 필요합니다.
김영한 – 스마트폰 리터러시
죽음은 결코 장난이 아니다. 삶을 이루고 있는 사랑스럽고 부드러운 것들이 찢기는 일은 몹시 고통스럽다. 그러나 이는 십자가가 예수님께 행한 일이었고, 십자가가 사람들을 자유롭게 하기 위하여 행하는 일이다. 우리는 스스로의 힘으로 휘장을 찢고자 자기의 내적 생명을 어설프게 만지작거리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하나님 한 분만이 이 일을 이루실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편에서 할 일은 항복하고 의탁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진지하기 때문에 신념을 가지고 장난하지 않는다. 이들은 단지 남들에게 과시하기 위해 거미줄 치듯 장황하게 이야기를 늘어놓는 데 흥미를 느끼지도 못한다. 그들의 모든 믿음은 실제적이다. 그것은 톱니바퀴처럼 그들의 삶에 맞물려 있다. 그들은 믿음에 의해 살고 죽으며, 서거나 쓰러진다. 우리는 마력과 같이 신속하고 극적인 것을 좋아한다. 이 시대 그리스도인들은 목표 달성에 있어 좀 느리고 덜 직접적인 방법을 사용하려 하지 않는다. 우리는 하나님과의 관계에도 기계적 방법을 적용하려 애쓰고 있다. 성경 한 장을 읽고 짧은 경건의 시간을 가진 후 뛰어나가 버리면서, 복음 집회에 참석하거나 최근 먼 곳에서 돌아온 선교사의 감격적인 이야기를 들음으로써 우리의 깊은 내적 틈새가 메꾸어지기를 기대한다.
A.W. 토저 – 하나님을 추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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