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달러 환율이 약 11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준으로 내려오면서 고환율에 따른 수입물가 부담이 다소 완화될 것이라는 기대가 커지고 있다. 원유와 원자재 등 수입품의 원화 환산 가격이 낮아지면 국내 소비자물가의 상승 압력도 일정 부분 줄어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동 정세 불안으로 국제유가가 다시 오름세를 보이고, 폭염에 따른 농산물 가격까지 급등하면서 하반기 물가를 둘러싼 불확실성은 여전히 큰 상황이다. 반도체 수출과 내수 회복 등 경기 개선에 따른 수요 측 물가 압력까지 더해질 수 있어 환율 하락만으로 물가 안정을 낙관하기는 어렵다는 분석이 나온다.
21일 서울 외환시장에 따르면 원·달러 환율은 전날 주간 거래에서 전 거래일보다 5.1원 내린 1392.6원에 마감했다. 지난해 9월 23일 기록한 1392.6원 이후 약 11개월 만의 최저 수준이다.
◈ 달러 공급 확대에 원화 강세…수입물가 부담 완화 기대
최근 원화 강세에는 국내 외환시장의 달러 공급 확대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됐다. 지난달 SK하이닉스가 미국 주식예탁증서(ADR) 상장을 통해 조달한 달러를 국내로 들여온 데다 경상수지 흑자 규모도 커지면서 환율 하락 압력이 강해졌다.
이달 들어서는 수출기업들의 법인세 중간예납도 원화 수요를 높이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기업들이 세금 납부에 필요한 원화를 마련하기 위해 보유 달러를 매도하는 가운데 환율 하락세가 이어지자 그동안 쌓아둔 달러 물량까지 시장에 나오고 있다는 분석이다.
앞서 원·달러 환율은 중동 전쟁에 따른 안전자산 선호와 미국 연방준비제도의 금리 인상 기대, 외국인 투자자의 국내 주식자금 유출 등이 겹치며 한때 1500원대까지 치솟았다. 환율이 오르면 원유와 원자재를 비롯한 수입품의 원화 환산 가격이 높아져 국내 물가에도 상승 압력이 가해진다.
실제로 올해 상반기에는 고유가와 고환율이 동시에 이어지면서 소비자물가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5% 상승했다. 월별 소비자물가 상승률도 1월과 2월 각각 2.0%에서 3월 2.2%, 4월 2.6%, 5월 3.1%, 6월 3.2%로 점차 확대됐다.
최근 원·달러 환율이 빠르게 하락하면서 수입물가를 통한 물가 상승 압력은 이전보다 낮아질 것으로 전망됐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환율이 낮아지면 원유나 원자재 등 수입품의 원화 가격이 떨어지면서 수입물가 상승 압력이 줄어들기 때문에 물가 안정에 상당히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며 “경상수지 흑자가 크게 나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환율도 안정세를 보일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 국제유가 4거래일 연속 상승…중동발 공급 불안 고조
환율 하락에 따른 물가 안정 효과를 제한할 가장 큰 변수로는 국제유가가 꼽혔다. 중동 지역의 긴장이 좀처럼 해소되지 않는 가운데 국제유가는 4거래일 연속 상승했다.
19일 현지시간 ICE선물거래소에서 10월 인도분 브렌트유 선물은 전장보다 0.66% 오른 배럴당 91.62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뉴욕상업거래소에서 9월 인도분 미국 서부텍사스산원유(WTI) 선물도 1.05% 상승한 배럴당 85.83달러에 마감했다.
미국과 이란의 임시 휴전 합의가 만료된 가운데 원유와 액화천연가스(LNG)의 핵심 수송로인 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싼 불확실성이 이어지면서 에너지 공급 차질 우려가 커졌다. 우크라이나의 러시아 정유시설 공격과 흑해 노보로시스크항 운영 차질도 세계 석유제품 공급을 압박하는 요인으로 거론됐다.
시장에서는 중동의 지정학적 위험이 확대될 경우 국제유가가 추가로 오를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일각에서는 국제유가가 다시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설 가능성도 제기됐다.
국제유가 상승은 휘발유와 경유 등 석유류 가격에 직접 반영될 뿐만 아니라 운송비와 생산비를 높여 상품과 서비스 가격 전반을 밀어 올릴 수 있다. 원화 가치가 상승하더라도 국제유가 오름폭이 커지면 환율 하락에 따른 수입물가 개선 효과가 상당 부분 상쇄될 수 있다는 의미다.
◈ 폭염에 채소류 가격 급등…‘히트플레이션’ 우려
폭염으로 인한 농산물 가격 상승도 하반기 물가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농산물유통정보에 따르면 지난 20일 기준 시금치 100g의 평균 소매가격은 2121원으로, 한 달 전의 1088원보다 94.94% 급등했다.
같은 기간 오이 10개의 평균 소매가격은 7977원에서 1만1069원으로 38.76% 올랐고, 깻잎 50g은 987원에서 1516원으로 53.6% 상승했다. 애호박 1개 가격은 38.51%, 배추 1포기 가격은 61.27% 각각 뛰었다.
폭염이 장기화하면 농작물 생육이 악화되고 출하량이 줄면서 농산물 가격이 추가로 오를 가능성이 있다. 고온 현상이 먹거리 가격을 끌어올리는 이른바 ‘히트플레이션’이 본격화하면 소비자들이 체감하는 장바구니 물가 부담도 한층 커질 수 있다.
특히 채소류와 신선식품은 가격 변동 폭이 크고 소비자들의 일상생활과 밀접해 전체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둔화하더라도 체감물가를 높일 수 있다. 환율 하락으로 수입물가가 안정되더라도 국제유가와 농산물 가격이 상승세를 이어가면 하반기 물가 둔화 속도는 제한될 가능성이 있다.
◈ 경기 회복에 수요 압력까지…물가 경로 불확실
경기 회복에 따른 수요 측 물가 압력도 향후 물가 흐름의 변수로 떠올랐다. 최근 국내외 주요 기관들은 반도체 업황 개선과 수출 증가 등을 반영해 올해 한국 경제의 성장률 전망치를 잇따라 상향하거나 비교적 높은 수준으로 제시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이달 발표한 수정 경제전망에서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2.5%에서 3.2%로 높였다. 정부는 지난달 발표한 ‘하반기 경제성장전략’에서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3.0%로 제시했다.
한국은행은 지난 5월 올해 성장률을 2.6%로 전망했고, 국제통화기금(IMF)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도 각각 2.6% 성장을 예상했다. 반도체 수출 호조와 함께 소비 등 내수 회복세가 이어질 경우 상품과 서비스 수요가 늘면서 물가 상승 압력도 커질 수 있다.
한국은행도 지난 5월 경제전망에서 경기 개선에 따른 수요 압력이 점차 확대될 것으로 분석했다. 공급 측면에서는 국제유가와 농산물 가격이, 수요 측면에서는 경기 회복이 각각 물가를 끌어올릴 가능성이 있는 셈이다.
향후 물가 흐름은 원화 강세가 수입물가를 얼마나 낮추느냐와 함께 중동 정세에 따른 국제유가, 폭염으로 인한 농산물 가격, 경기 회복에 따른 수요 압력이 어떻게 움직이느냐에 따라 달라질 전망이다. 원·달러 환율 하락이 물가 부담을 덜어주는 요인이기는 하지만 여러 불안 변수가 동시에 남아 있어 하반기 물가를 둘러싼 경계감은 쉽게 가라앉기 어려운 상황이다.
김 교수는 “환율이 낮아지면서 물가는 상당히 안정될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중동 정세 불안으로 유가가 오르거나 채소류 등 신선식품 가격이 상승하면 생활물가를 끌어올릴 수 있고, 경기 회복 과정에서 통화량이 늘어나는 것도 물가 상승 요인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press@cdaily.co.kr
- Copyright ⓒ기독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