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죄의 심각성을 예수님보다 더 잘 아는 존재는 없으며, 우리가 탐욕에 약하다는 사실을 예수님만큼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존재도 없다. 하지만 예수님은 걱정하지 않으신다. 반드시 임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우리의 욕망을 구속하고 사용하시기 때문에 아버지의 일을 진행하는 데도 아무런 지장이 없다. 하나님은 우리의 존재 한가운데 욕망을,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에 대한 욕망을 심어 두셨고, 이 욕망이 하나님과의 관계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동력이 되기를 기대하신다. 우리 삶이 하나님의 솜씨를 드러낸다고 상상하기란 쉽지 않다. 악은 지구의 모든 힘을 모아 그런 노력을 저지하려고 한다. 그레이엄과 카르멘 모두 그 힘이 자기 가슴을 짓누르는 걸 느꼈다. 그러나 관계의 기술은 공동체 안에서 가장 잘 발달하는데, 그러려면 구성원들이 자신의 희망과 공포를 있는 그대로 두려움 없이 드러낼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우리의 열망, 비애, 상처를 다른 사람들이 받아들이면서 적절한 경계 안에서 공감할 때, 그것은 하나님이 창조 전부터 정하신 아름다움과 선함을 향해 재-탄생되고 재-상상되고 재-형성될 수 있다.
커트 톰슨 – 영혼은 욕망한다
우리가 세계를 해석할 때, 우리는 이미 무엇을 전제하고 있는가?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어떤 특정한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종교를 믿지 않을 수는 있지만, 과학은 신뢰하고, 판단할 때 이성에 의존하며, 도덕적 분노나 정의감은 자연스럽고 자명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예를 들어 어떤 과학 연구 결과가 발표되면 우리는 그것을 사실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또한 부당한 일을 보게 되면 우리는 본능적으로 "그것은 잘못된 일이다"라고 말한다. 이러한 태도는 종종 "중립적"이거나 단순히 "상식적"인 것으로 여겨진다.
백철규 - 수학과 철학이 증언하는 하나님
신약성경은 그리스도 안에서 얻는 구원을 해방으로, 그리스도인의 삶을 자유의 삶으로 본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자유롭게 하시려고 우리를 해방하셨다(요 8:32, 36, 갈 5:1). 이 사역은 오늘날 흔히 생각하듯이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개선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다음 세 가지 측면과 관련된다. 첫째, 그리스도인은 구원의 체계로서의 율법에서 해방되었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므로, 더 이상 하나님의 율법 아래 있지 않고 은혜 아래 있다(롬 3:19, 6:14.15, 갈 3:23.25). 이것은 그들이 하나님과 누리게 된 상태, 다시 말해 로마서 5:1.2가 말하는 ‘화평’과 ‘들어감’이 전적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받아들여지고 양자된 사실에 근거한다는 뜻이다. 그 상태는 그들이 행하는 일에 달려 있지 않다. 앞으로도 결코 그렇지 않을 것이다. 또 그들이 하지 않는 일 때문에 그 상태가 위태로워지는 일도 결코 없다. 그들은 완전해짐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용서받음으로 산다.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도 계속 그렇게 살 것이다.
제임스 패커 - 신학 한 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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