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쓰지 마라, 하나님이 하신다
도서 「애쓰지 마라, 하나님이 하신다」

어둠은 싸워서 사라지지 않습니다. 빛이 오면 물러납니다. 상처를 가진 사람은 그것을 붙잡고 오래 씨름합니다. 감추기도 하고, 잊으려 하기도 하지만 쉽게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진심으로 사랑받는 경험이 찾아오면 흐름이 달라집니다. 억지로 치유하려 애쓰지 않아도 마음이 풀리고, 상처의 결이 서서히 달라집니다. 우리의 내면도 이와 닮아있습니다. 많은 경우 죄 사함 자체를 구원의 전부로 이해합니다. 이미 용서받았으니 구원받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용서는 끝이 아니라 시작입니다. 길이 열렸다는 사실이 곧 목적지에 도달했다는 뜻은 아닙니다. 생명나무는 살리는 나무이고 선악과는 죽이는 나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이 둘은 서로 대립하는 존재가 아닙니다. 십자가 복음이 하나님의 사랑을 붙잡아 우리를 그분 곁으로 이끈다면, 하나님 나라 복음은 그분의 왕 되심을 인정하게 함으로써 우리를 온전한 통치 아래 머물게 합니다. “ 하나님이 모든 것을 다 하신다”라는 고백과 십자가의 은혜가 만날 때, 우리는 비로소 하나님을 대면하는 자리로 나아가게 됩니다.

장재권 – 애쓰지 마라, 하나님이 하신다

심판하여 이길 때까지 하리니
도서 「심판하여 이길 때까지 하리니」

우리의 죄가 우리를 낙심시키게 만들겠는가? 그리스도께서 거기에 계신 이유가 바로 죄인들을 위해서인데 말이다. 그대는 상하였는가? 낙심하지 말라. 그분이 부르신다. 상처를 숨기지 말고 모두 그분 앞에 드러내라. 떨리는 마음을 가지고서라도 그리스도께 나아가라. 순간의 두려움이나 짧은 슬픔은 참된 상함이 아니다. 죄를 형벌보다 더 미워하게 만들고, 죄에 대해 거룩한 폭력을 가할 만큼 마음을 움직이는 슬픔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것만은 확실하다. 그리스도 안에는 우리의 죄보다 더 큰 자비가 있다. 상한 채로 천국에 가는 것이 멀쩡한 채로 지옥에 가는 것보다 낫다. 오직 그분의 멍에를 지고, 육체의 자유를 누리는 것보다 그분의 다스림 아래 있는 것을 더 큰 행복으로 여기는 자들만이 참으로 그리스도의 긍휼을 주장할 수 있다. 누구든지 진실로 용서를 위한 긍휼을 구한 사람은 치유를 위한 긍휼 또한 구하였다. 그분은 우리의 구주이실 뿐 아니라 우리의 성화자이시다.

리처드 십스 - 심판하여 이길 때까지 하리니

죄 죽이기
도서 「죄 죽이기」

신자는 자신의 영적 신분과 관련해서는 할 수 있는 한 최고의 증거를 갖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자신이 계속해서 악한 길로 행했을 때의 결말은 멸망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신자의 의무이고,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자는 무신론자이다. 나는 어떤 신자가 계속해서 악을 행할 때에 그리스도 안에 그의 분깃이 있다는 증거가 아무 소용이 없게 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 증거를 계속해서 유지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이다. 한 사람과 관련해서 두 종류의 정죄가 존재한다. 하나는 그 영혼이 자기는 하나님의 임재로부터 쫓겨나는 것이 마땅하기 때문에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았다고 결론을 내리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불신앙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신앙으로부터 나온다. 다른 하나는 영혼이 자기는 결국 영원한 멸망에 처해지게 될 것이라고 결론을 내리고 실제로 그렇게 되는 것이다. 나는 신자가 계속해서 죄를 지었을 때에 그런 식으로 자신을 정죄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그 악한 길을 계속해서 걸었을 때의 결말이 멸망이라는 것을 명심하고서 그 악한 길에서 벗어나기 위해 분발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죄악된 욕망들에 사로잡히지 않고 거기에서 벗어나기를 원하는 영혼이 반드시 명심해야 할 것이다.

존 오웬 – 죄 죽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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