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철훈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사무총장
허철훈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사무총장이 3일 오후 경기 과천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와 관련해 대국민 사과를 하고 있다. ©뉴시스

6·3 지방선거 당시 발생한 투표용지 부족 사태와 관련해 검찰과 경찰의 합동수사본부 출범이 임박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검·경 합수본을 통한 진상규명을 지시한 가운데, 사법당국은 합수본 구성과 수사 방향을 놓고 막바지 실무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

이번 수사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투표용지 인쇄·배부 기준과 현장 대응 과정 전반을 들여다보는 방향으로 진행될 전망이다. 특히 선관위 관계자들에게 직무유기 혐의를 적용할 수 있는지, 그 과정에서 고의성이 있었는지가 핵심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9일 수사당국 등에 따르면 대검찰청과 경찰청 국가수사본부는 합수본 출범을 앞두고 파견 인력 규모와 사무실 장소 등을 조율 중이다. 합수본은 이르면 이날 공식 출범할 것으로 알려졌다.

합수본 출범에 앞서 경찰은 이미 기초 수사에 착수한 상태다. 서울경찰청 광역범죄수사대는 노태악 중앙선거관리위원장 등을 직무유기와 직권남용, 횡령 혐의로 고발한 시민단체 관계자를 불러 조사했다. 투표하지 못한 시민들과 선거 사무 공무원들을 상대로 한 참고인 조사도 진행됐다.

투표용지 배급 기준·매뉴얼 압수수색 가능성

수사팀은 선거 종사자들의 메신저 대화방 기록을 확보하고, 투표용지 조달을 담당한 인쇄업체도 특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기초 조사가 상당 부분 이뤄진 만큼, 합수본이 공식 출범하면 선관위의 투표용지 배급 기준과 관련 매뉴얼, 의사결정 라인 전반에 대한 강제수사가 본격화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경찰은 투표용지 인쇄량을 정하는 과정과 현장별 배분 기준, 사고 발생 이후 선관위의 대응 과정을 집중적으로 살펴볼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일선 공무원들이 투표용지 부족을 알렸는데도 적절한 대응이 이뤄지지 않았는지 여부가 수사의 주요 대목이 될 전망이다.

이번 수사는 검찰과 경찰이 역할을 나눠 공조하는 방식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 선거범죄 수사 경험이 많은 검찰이 수사 전반의 방향을 잡고, 경찰이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와 현장 수사를 담당하는 형태가 거론된다.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검찰의 선거범죄 수사개시권이 사라진 만큼, 공직선거법 관련 혐의에 대해서는 경찰이 실무를 맡고 검찰은 직무유기 등 형사 혐의 검토와 법리 판단에 관여할 것으로 관측된다.

핵심은 ‘단순 과실’과 ‘고의’ 판단

이번 수사의 최대 쟁점은 투표용지 부족 사태가 단순한 행정 착오였는지, 아니면 의도적 직무유기에 해당하는지 여부다.

직무유기 혐의로 형사처벌이 이뤄지려면 선관위 관계자들이 유권자의 투표권 행사를 방해할 의도나, 최소한 고의에 가까운 직무 방기가 있었다는 점이 입증돼야 한다.

경찰은 지방선거 본투표용지 최소 인쇄량을 선거인 수의 60%에서 50%로 낮춘 선관위의 의사결정 과정을 주요 수사 대상으로 삼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 이번 선거에서는 서울 송파구 잠실2동, 잠실4동, 잠실7동 등 일부 지역의 본투표율이 전체 유권자 대비 50%를 넘어서면서 투표용지 부족 사태가 발생했다. 송파구 전체로는 약 4만2000장의 여분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지만, 동별 투표소 특성을 고려한 배분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일부 투표소에서 투표용지가 부족해졌다.

선관위는 지역 실정에 따라 투표구별 인쇄량을 조정할 수 있도록 단서를 달았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오후 2시부터 선거 사무 공무원들의 단체 대화방에 투표용지 부족을 호소하는 내용이 올라왔음에도 선관위가 즉각적인 조치를 하지 않았다는 정황이 제기되면서, 이 부분이 고의성 판단의 핵심 변수가 될 전망이다.

법조계도 고의성 입증 두고 의견 갈려

법조계에서는 고의성 입증 가능성을 두고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일부에서는 투표용지를 50%만 인쇄해야 한다는 법적 기준이 없고, 추가 인쇄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거나 과도한 비용이 드는 사안도 아니었다는 점에서 수사와 처벌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국민의 참정권 행사와 직결된 사안인 만큼 형사책임을 따져볼 필요가 있다는 시각이다.

반면 신중론도 만만치 않다. 헌법상 독립기관인 선관위라 하더라도 불법이나 비위 의혹에 대한 수사는 가능하지만, 형사처벌까지 이어지려면 고의나 중대한 과실이 구체적으로 입증돼야 한다는 것이다.

또 사전투표율 등을 고려해 본투표용지 인쇄량을 낮춘 결정 자체는 정책 판단의 영역으로 볼 여지도 있어, 직무유기 혐의 적용이 쉽지 않을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다만 문서 조작이나 예산 유용 등 별개 혐의가 확인될 경우 수사 범위는 확대될 수 있다.

중수청 출범 전 수사 속도도 변수

또 다른 변수는 오는 10월 2일 중대범죄수사청 출범과 검찰 직접수사권 전면 폐지다. 수사기관 재편을 앞두고 있는 만큼, 이번 사건 수사가 장기화될 경우 수사 인력과 역할 분담에 공백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그동안 대형 선거·공공기관 사건이 발생하면 검찰이 인지수사에 나서는 경우가 많았지만, 현재는 검찰 직접수사권이 제한된 상태다. 이에 따라 경찰의 대형 인지수사 경험과 검찰과의 공조 방식이 수사 성패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경찰은 신속한 수사 방침을 밝혔다. 박성주 국가수사본부장은 기자간담회에서 “합수본이 설치되면 차질 없이 이관될 수 있도록 신속히 수사를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또 검찰 폐지와 수사 체계 개편으로 선거 수사에 차질이 우려된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모든 사건을 신속하고 책임감 있게 수사하겠다”며 “공소시효 만료 3개월 전인 9월 2일까지 본청과 시도청 주관으로 1차 현장 점검을 완료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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