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이 에베소 교회의 장로들을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에 부탁[한다]”(행 20:32)는 말의 뜻은 무엇일까? 일단 “그 은혜의 말씀”은 아마도 성경을 의미할 것이다. 유대인들은 성경으로부터 신앙의 도리는 물론, 윤리 덕목과 가치판단의 기준을 정립했다. 하지만 모든 이가 스스로 성경을 읽고 이해할 수 있었 던 것은 아니다. 신약 시대 유대(회당)공동체는 물론, 초기 기독교 공동체에서도 성경을 읽고 가르치는 일은 일정한 전문성이 요구되었다. 한 번 훈련을 받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가르치는 자가 된 후에도 계속해서 배우고 연구해야 했다. 이것이 바로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에 부탁[한다]”는 표현의 의미다. 목회자는 교육받은 사람이며 계속해서 배우는 사람이다. 오늘날처럼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문화와 과학기술의 시대에 는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주의 말씀에 의탁된 지도자는 성경적 관점으로 사회와 문화와 세상을 해석해 낼 수 있어야 한다.
조재천 - 사도행전으로 오늘을 읽다
수직적 읽기’ 혹은 ‘수직적 성경 해석’은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에 주목합니다. 하늘의 하나님과 땅의 인간의 관계에 초점을 맞추기 때문에 ‘수직적’이라 부릅니다. 이 관점에서 중요하게 다루는 신학적 주제는 위로부터 오는 하나님의 명령을 사람이 ‘잘 지켰는지, 잘 지키지 않았는지’입니다. 하늘로 올라가려 하고, 하나님을 공격하여 신이 되려는 인간의 욕망과 교만은 ‘죄’로 규정됩니다. 여기서는 ‘겸손’과 ‘순종’이 인간에게 요구되는 덕목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익숙한 주제입니다. 지난 2천 년 동안 성경을 읽어 온 주류 방식이기도 합니다. 반면 ‘수평적 읽기’는 인간과 인간의 관계에 더 주목합니다. 나아가 인간과 창조된 세계의 관계에 더 초점을 맞춥니다. 단순히 인간이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했느냐보다, 하나님은 우리가 이 땅에서 어떻게 살기를 원하시는지, 우리가 서로 어떤 관계를 맺고 살기를 요청하시는지, 우리는 다른 피조물과의 관계에서 어떤 책임과 역할을 부여받았는지에 관심을 둡니다.
송민원 - 태초에 질문이 있었다
예수님께서 하신 또 다른 폐부를 찌르는 날카로운 말씀이 17절이다. 스스로 거룩하고 구별된 존재라고 자부하는 바리새인들이 이 뒤섞인 무리를 얼마나 업신여겼을지 상상할 수 있다. 율법의 모든 측면에 대해 자세하고 정확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고 자부하는 율법학자들도 경멸의 시선을 보냈을 것이다. 예수님의 농축된 선포는 다시 한번 양쪽 집단의 오만한 갑옷을 뚫는 데 실패하지 않았다. 주님의 실제적 말씀은 이런 것이다. ‘당신들은 너무 건강해서 앞으로 더 이상의 도움이 필요 없다는 말인가? 그렇다면, 고통받는 사람들에 대한 당신들의 태도는 어떠해야 하는가? 그들이 병들었다면, 당신들은 치료하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여기서 ‘초청하다’로 번역한 단어는 그 자체로 그 의미가 있다. 이것은 파티나 축제에 초대장을 발행할 때 사용 하는 자연스러운 동사이다. 마태의 집에서 베풀어졌던 예수님의 ‘파티’는 결코 자신들이 건강하다고 알고 있는 사람들만을 위한 독점적인 모임이 아니었다. 그분의 초대는 자신이 궁핍하다는 것을 알고 있고, 자신들의 영적인 빈곤을 알고 있으며, 삶이 피곤하고 무거운 일로 느껴지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었고 지금도 그렇다. 예수님이 환영하시는 사람은 자신의 선함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자신의 필요를 알고 있는 절박한 사람들이다.
J. B. 필립스 - 마가복음 베드로전후서 강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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