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신적 폭력으로서의 자기 비움: 발터 벤야민의 해석

김영한 박사
김영한 박사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 1892~1940)은 유대계 독일인으로 마르크스주의자이자 문학평론가이며 철학자이다. 그의 사상은 게르숌 숄렘의 유대교 신비주의와 베르톨트 브레히트로부터 마르크시즘의 영향을 크게 받았으며 또한 비판이론의 프랑크푸르트 학파와도 관련이 있다. 그는 「폭력 비판에 관하여」(Zur Kritik der Gewalt)에서 폭력이 지닌 다양한 양태들을 기술하고 폭력을 통해 그 폭력이 모두 말살되는 “신적 폭력”(die göttliche Gewalt)을 말한다. 그가 여기서 신적 폭력에 관련하여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보여주었던 자기비움의 힘(권력)이라고 해석하는 것은 독특한 착상이다.(Walter Benjamin, “Zur Kritik der Gewalt,” in: Walter Benjamin Gesammelte Schriften, vol II.1, herausgegeben von R. Tiedemann und H. Schweppenhäuser (Frankfurt(M): Suhrkamp Verlag, 1999), 179-204)

자연법 안에서 폭력 내지 권력은 일반적으로 정당화된다. 정당한 목적을 위하여 폭력은 사용되기 때문이다. 선한 목적을 위해서는 모든 것이 허락될 수 있다는 것는 자연법의 전제다: “그것(자연법)의 관점에 따르면... 폭력은 자연적 소산이다. 즉, 그것을 사용하는 것은 일반의 사람들이 폭력을 정당하지 못한 목적을 위해 이용하지 않는 한 전혀 문제될 것이 없는 재료이다.” 이에 반해 실정법(實定法)의 경우 폭력은 수단을 통해 평가된다. 실정법의 경우 폭력은 인위적으로 발생하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정당화될 수 없다. “자연법은 목적의 정당성을 통해 수단을 정당화하려고 노력하며, 실정법은 수단을 정당화함으로써 목적의 정당성을 보증하려고 노력한다.”

벤야민은 자연법과 실정법의 구분 안에서 폭력을 보다 구체적인 형태로 구분한다. 첫 번째 폭력은 법 정립적 폭력(rechtsetzende Gewalt)이다. 이것은 기존 질서를 무너뜨리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승리를 기준으로 인정받는 폭력이다. 예를 들면, 쿠데타, 사회주의 혁명, 테러 등이다. 두 번째 폭력은 법 보존적 폭력(rechterhaltende Gewalt)이다. 이것은 기존의 질서를 지키려는 목적으로 행사되는 폭력이다. 경찰력이나 군대력 등 기존 세력에 의해 행사되는 폭력이다. 벤야민은 현대에 이르러 폭력이 빈번히 발생하면서 법 정립적 폭력과 법 보존적 폭력이 뚜렷한 구분을 가지 못할 사태가 빈번히 발생한다고 보았다. 경찰의 강제력은 이중적 성격을 지니고 있어서 적합한 폭력과 적합하지 않는 폭력의 구분이 애매하게 된다고 본다.

현대 사회에서는 폭력이 어쩔 수 없는 삶의 요소로 등장한다. 이러한 폭력의 사태 안에서 우리는 어떠한 대안으로 살아야 하는가? 이에 질문에 대해 벤야민은 이 둘과는 전적으로 다른 차원의 폭력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이것이 세 번째 폭력인 신적 폭력이다. 신적 폭력은 모든 폭력을 잠재우는 폭력이다. 신적 폭력은 “다른 종류의 폭력, 그 목적들에 대해 정당화된 수단이 될 수도 없고, 정당화되지 않은 수단도 될 수 없으며, 전반적으로 그 목적들에 대해 수단으로서가 아니라 오히려 어떻게 든 다르게 관계를 맺는 그러한 폭력”이다. 이 폭력은 일상적 수단과 목적을 통해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다른 차원, 즉 신적 차원으로부터 도래하는 폭력이다.

벤야민에 의하면 신적 폭력은 다신론 시대에 창궐했던 무자비한 신화적 폭력과는 다르다. 예를 들면 신화적 폭력이란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미친 헬라클레스의 폭력적 살인 혹은 복수에 눈이 먼 테베의 분노의 복수 등을 의미한다. 신화적 폭력은 신들의 의지가 그 안에서 투영되어 폭력의 목적과 수단을 정당화하며, 그럼으로써 신들의 의지를 세상에 드러낸다. 이런 신화적 폭력은 목적과 수단이 신적 차원으로 고양되어 인간의 인식으로부터 벗어난다는 점에서 일반적 폭력을 넘어서는 것으로 보이지만 그 결과가 어떠한 모습으로든지 여전히 인간의 삶 안에 법을 정초하는 모습으로 결정된다는 점에서 법정립적 폭력과 다른 것이 없다. “직접적 폭력의 신화적 발현은 가장 깊은 차원에서 모든 법적 폭력과 동일한 것으로 드러난다.” 이에 반해서 신적 폭력이란 신화적 폭력을 넘어서는 직접적 폭력으로서 폭력 자체들을 종언시키는 폭력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사용한 폭력이란 바로 이 신적 폭력으로서 권력이나 무력의 사용을 통해서가 아니라 자기 비움의 사랑과 용서의 능력으로 기존하는 모든 폭력을 종식시켰다. (계속)

김영한(기독교학술원장, 샬롬나비 대표, 숭실대 기독교학대학원 설립원장,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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