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신 이도,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라” (욥 1:21, 신 32:39)

우스 땅의 의인 욥은 모든 소유를 강탈당하고 자녀들마저 불의의 사고로 잃는 극심한 고통 속에서도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라”는 찬송을 올렸다.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나는 죽이기도 하며 살리기도 하며 상하게도 하며 낫게도 하나니 내 손에서 능히 빼앗을 자가 없다”고 선포하셨다(신 32:39). 성경은 생명이 창조주 하나님께 속한 것임을 분명히 하며, 인간은 극심한 고통 가운데서도 생명을 존중하며 인내할 것을 요구한다(고전 10:13).
그러므로 자신의 생명을 스스로 끊는 행위는 하나님의 주권을 침해하고,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일이다. 성경은 자살을 명시적으로 ‘죄’로 규정하진 않지만, 가룟 유다의 절망스러운 죽음이나 사울 왕의 최후는 인간적 절망 속에 스스로 생을 마감한 이들의 삶이 어떤 결말을 맞는지를 경고적으로 보여준다.
하지만 세속 사회는 점점 다른 길을 택하고 있다. 네덜란드, 벨기에, 캐나다 등 일부 국가는 자발적 안락사와 의사조력자살을 법적으로 허용하고 있으며, 미국 오리건주를 비롯한 여러 주에서도 일정 요건 하에 ‘존엄한 죽음’을 선택할 수 있도록 제도화하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여전히 적극적 안락사를 살인죄 또는 자살방조죄로 간주하며 불법으로 보고 있다.
통계에 따르면 한국 국민 다수는 병든 몸으로 오랜 시간 투병하다가 생을 마감한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어떻게 죽음을 잘 맞이할 것인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고, 극심한 고통 속에서 죽음을 맞이하기보다는 스스로 죽음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인식이 점차 확산되고 있다. 이러한 여론에 힘입어 ‘조력존엄사에 관한 법률안’이 국회에 발의되었다. 조력존엄사는 환자가 자신의 의사에 따라 극심한 고통 속에서 삶을 존엄하게 마무리할 권리를 보장하자는 제도다. 그러나 ‘존엄사’라는 이름과 달리, 이는 실질적으로 의사의 조력을 통한 자살을 합법화하려는 법안이다.
죽음에 대한 사회 인식 변화의 큰 전환점은 2009년 ‘김 할머니 사건’이었다. 대법원은 당시 회복 가능성이 없는 식물인간 상태의 환자에 대해 연명치료 중단을 허용하면서, 2016년 제정된 ‘연명의료결정법’의 토대를 마련했다. 대법원 다수 의견은 다음과 같다. “이미 의식 회복 가능성을 상실하여 더 이상 인격체로서의 활동을 기대할 수 없고, 자연적으로는 죽음의 과정이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는 회복 불가능한 사망 단계에 이른 환자에게,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강요하는 것은 오히려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해치는 일이므로, 예외적으로 환자의 죽음을 존중해야 하며 이는 헌법정신에도 어긋나지 않는다.”
하지만 연명의료결정법은 치료 효과 없이 단지 임종을 지연시키는 연명치료를 중단하는 것이며, 생명을 단축시키는 데 목적이 있지 않다. 반면 조력존엄사는 아직 임종기에 도달하지 않은 말기 환자가 의사의 도움을 받아 적극적으로 삶을 종결하는 ‘안락사’이다. 특히 그 적용 대상을 ‘수용하기 어려운 고통을 겪는 환자’로 규정함으로써 판단 기준이 모호해지고, 결국 생명 경시 풍조를 불러올 위험성이 크다.
이로 인해 의료 사각지대에 놓인 환자들이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가족의 압박이나 경제적 부담으로 인해 죽음을 선택하게 되는 일이 벌어질 수 있으며, 실제로 안락사 제도를 도입한 여러 나라에서 이러한 우려가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한국교회와 의료윤리단체들이 조력존엄사 법안에 강하게 반대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렇다면 말기 환자들이 실제로 겪는 고통이 크고, 국민 대다수가 존엄사 제도의 도입을 바라는 상황에서 교회는 무조건 반대만 해야 하는가? 그렇지 않다. 오히려 교회는 죽음을 두려워하는 이들에게 부활의 복음을 전하고, 그들이 진정한 소망 가운데 삶의 마지막까지 존엄을 누릴 수 있도록 동행할 책임이 있다.
죽음보다 더 고통스러운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이들이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공감하며 이들이 안락사의 유혹으로 내몰리지 않도록,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소망과 위로로 그들의 삶을 품어야 한다. 고통을 피하기 위해 생명을 끝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의미 있게 마무리하도록 돕는 것이야말로, 조력존엄사 시도를 무력화하는 가장 큰 힘이다.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라”는 욥의 찬송이 오늘날 우리 모두의 찬송이 되기를 소망한다.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press@cdaily.co.kr
- Copyright ⓒ기독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서헌제 #서헌제교수 #한국교회법학회 #기독일보 #하나님의법과가이사의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