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 어민 강제 북송’ 사건으로 기소된 문재인 정부 외교·안보 라인 고위 인사들에 대해 1심 법원이 선고 유예를 결정해 ‘솜방망이’ 판결 논란이 일고 있다. 우리 국민을 북한에 넘겨 죽게 만든 중한 범죄를 법원이 경범죄처럼 가볍게 처리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서울중앙지법 형사 21부는 지난 19일 국가정보원법상 직권남용 등 혐의로 검찰에 기소된 정의용 전 국가안보실장과 서훈 전 국가정보원장에 대해 징역 10개월에 선고를 유예했다. 선고유예는 범죄의 정도가 경미하다고 봐 일정 기간 형의 선고를 유예하고 그 기간이 경과하면 면소(免訴)된 것으로 간주한다.
재판부는 정 실장 등이 지난 2019년 11월 2일 오징어잡이 배를 타고 탈북한 북한 어부들의 귀순 의사를 확인하고도 강제로 북한에 송환한 사실을 확인했다. 신체의 자유, 거주 이전의 자유, 재판받을 권리 등을 침해했다고 범죄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그 엄중한 책임의 무게와 상반된 판결을 내린 것이다.
정 전 실장 등은 북한 어부들을 나포 5일 만에 포승줄에 묶어 강제 북송했다. 판문점에서 북에 인계된 어부들은 결국 며칠 만에 처형된 것으로 확인됐다.
문 정부의 외교 안보라인 책임자들이 주도한 이 사건은 당시엔 국가기밀이란 이유로 꽁꽁 숨겨졌다. 그러다가 윤석열 정부 들어 이들이 판문점에서 북송되지 않으려고 끝까지 발버둥치는 사진이 공개되면서 일부나마 실체가 드러나게 됐다.
탈북 어부 강제북송 사건은 친북 ‘평화쇼’를 위해 문 정부가 북한에 보낸 선물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당시 정부가 탈북 어부들의 신병을 확보한 지 사흘 후인 11월 5일 문재인 대통령이 북한 김정은을 한국에 초청하는 친서를 보냈다. 그리고 이틀 후인 7일에 탈북 어부들의 북한 강제 송환이 이루어졌다. 결국 위장 ‘평화쇼’를 위해 우리 국민을 북한에 팔아넘겼다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
사실 이 사건은 국민 누구도 모른 채 영영 묻힐 뻔했다. 당시 청와대와 국정원, 통일부 등이 철저하게 비밀리에 일을 진행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국회 예산 관련 회의에 참석한 대통령 비서실 관계자가 받은 탈북 어부 북송 관련 내용 휴대폰 문자 메시지가 우연히 카메라 기자에게 찍히면서 영원히 묻힐 뻔한 추악한 음모가 드러나게 된 거다.
야당과 언론이 문자메시지 내용을 추궁하며 탈북어부 북송을 중단하라고 요구했으나 김연철 통일부장관은 이미 북한 추방을 완료했다고 발표했다. 국가인권위원회 등이 자료를 요청해도 국가기밀이라는 이유로 전부 거부했다. 판문점에서 북송을 거부하며 발버둥치는 사진도 정권교체가 이루어지고 나서야 비로소 공개됐는데 이미 모든 관련 자료들이 사라진 뒤였다.
그 후 정 전 실장 등 문 정부 외교 안보라인 고위 인사들이 탈북 어민 강제 북송 사건에 관여해 정보를 은폐하고 탈북 어민들의 귀순 의사 표현을 임의로 삭제한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졌다. 그런데 이런 중대 범죄자들에게 1심 재판부가 전부 징역 1년 미만의 가벼운 형을 선하고 선고유예로 사실상 면죄부를 주기까지 한 것이다.
재판부가 이들 문 정부 고위직 인사들의 범죄 혐의를 대부분 인정하고도 지나치게 가벼운 형을 선고한 결정적인 이유는 탈북 어부들이 동료 선원 16명을 살해한 흉악범이라는 단 한 가지다. 북에서 살인을 저지르고 남으로 도망쳐 온 범죄자들을 북으로 돌려보낸 것이 크게 잘못된 게 아니란 논리다.
그런데 탈북 어부들이 동료 어부들을 살해했다는 직접적인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심문 과정에서 자백했다는 데 근거 자료조차 없는 일방적 주장일 뿐이다. 정 전 실장 측이 탈북 어민들이 북한 국적자이지 우리나라 국민이 아니라고 주장했다는 데 황당하기 짝이 없다. 북한 주민이 헌법 상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건 초등학생도 다 아는 기초상식이 아닌가.
설령 이들이 흉악범이라고 해도 강제 북송이 정당화될 순 없다. 정부가 자국민을 추방할 권리는 그 어디에도 없기 때문이다. 아무리 흉악범이라도 정당한 절차로 수사한 후 재판을 받도록 했어야 했다. 또 재판결과가 나오기까지 무주추정의 원칙이 적용되는 걸 누구보다 잘 아는 판사는 무슨 근거로 이들을 흉악범으로 단정했는지도 도무지 납득이 안 된다.
정부가 북한을 탈출해 우리나라에 들어온 우리 국민을 위력에 의해 북한으로 강제 추방한 일은 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이는 사람을 고문당할 위험이 있는 나라로 추방, 송환, 인도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한 UN ‘고문방지협약’ 위반이기도 하다.
이 사건은 국민을 보호해야 할 정부가 은밀한 방법으로 국민을 속이고 강제로 사지로 내몰아 죽임을 당하게 한 매우 중대한 범죄사건이다. 만약 정당하고 떳떳하다면 왜 그렇게 했는지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무엇인지 전모를 떳떳하게 밝힐 일이지 쉬쉬하며 모든 걸 감추고 은폐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이런 중대 범죄 사건에 대해 사법부는 범죄를 모의하고 은닉한 자들에게 지나치게 가벼운 형량을 안겼다. 반면에 자유를 찾아 목숨을 걸고 우리나라에 들어왔다가 강제로 다시 북에 끌려가 살해당한 힘없는 국민의 권리는 철저히 외면했다.
법은 권력이 아니라 힘없는 국민을 보호하라고 있는 것이다. 기울어진 법의 균형추가 2심 법원에서 바로 잡혀 주권자인 국민의 권리 침해 행위에 경종을 울리는 계기로 삼게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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