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재인 정부 시절 발생한 ‘탈북 어민 강제 북송’ 사건과 관련해 기소된 외교·안보 라인 인사들이 1심에서 전원 선고유예 판결을 받았다. 이에 대해 법조계에서는 강제 북송의 위법성을 인정하면서도 실질적인 처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비판이 나온다. 검찰은 즉각 항소 의사를 밝혔다.
◈1심 법원, "강제 북송은 위법하지만 선고유예"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21부(재판장 허경무)는 19일 국가정보원법상 직권남용 혐의로 기소된 정의용 전 국가안보실장과 서훈 전 국가정보원장에게 징역 10개월의 선고를 유예했다. 또한, 노영민 전 대통령 비서실장과 김연철 전 통일부 장관에게는 징역 6개월의 선고를 유예했다.
재판부는 북한 어민 2명이 귀순 의사를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이들을 강제로 송환한 행위가 신체의 자유, 거주 이전의 자유, 재판받을 권리 등을 침해했다고 판단했다. "북한 주민들은 보호 신청 의사를 여러 차례 표시했으며, 이는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권리를 주장한 것과 다름없다"고 재판부는 밝혔다.
그러나 선고유예 판결이 내려진 배경에는 이들이 동료 선원 16명을 살해한 흉악범이었다는 점이 고려됐다. 재판부는 "이들의 범죄 행위가 극히 잔혹했으며, 북송 결정이 이러한 범죄 사실을 바탕으로 신속하게 이루어진 점을 감안하지 않을 수 없다"고 설명했다.
◈검찰, "납득 어려운 판결... 항소 예정"
서울중앙지검은 판결 직후 "법원은 탈북 어민들이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점을 인정했고, 강제 북송이 위법하다는 점도 확인했다"면서도 "범행을 일절 부인하는 피고인들에게 선고유예를 적용한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며 항소하겠다고 밝혔다. 검찰은 "형법은 ‘뉘우치는 정상이 뚜렷할 때’ 선고를 유예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피고인들은 자신의 범행을 부인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또한 검찰은 "이 사건의 본질은 귀순 의사를 밝힌 북한 주민을 정부가 자의적으로 북송한 것으로, 이는 헌법상 우리 국민으로서 보호받아야 할 기본권을 침해한 심각한 사례"라고 지적했다.
◈강제 북송 과정과 법적 논란
2019년 11월, 함경북도 청진 출신의 북한 어민 우범선(22)과 김현욱(23)은 동해 북방한계선(NLL) 인근 해상에서 우리 군에 나포됐다. 이들은 조사 과정에서 여러 차례 귀순 의사를 밝혔으나, 정부는 이들이 동료 선원 16명을 살해한 흉악범이라는 이유로 닷새 만에 강제 북송했다. 이후 이들은 북한에 도착한 직후 처형된 것으로 알려졌다.
법조계에서는 이번 판결이 헌법상 대한민국 국민으로 인정된 탈북 어민의 기본권을 침해한 공직자들에게 면죄부를 준 것이 아니냐는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공안 검사 출신 변호사는 "흉악범이라도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국내법 절차에 따라 처벌받아야 하는 것이 원칙인데, 이번 판결은 이를 무시한 채 강제 북송을 정당화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법원의 추가 설명과 정치적 해석
재판부는 "2019년 당시 탈북 어민에게 적용할 법률이나 지침이 전혀 없었고, 법적 공백 속에서 결정이 내려졌다"며 "사회적 논의를 통해 이러한 모순을 해결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 "이 사건은 2021년 문재인 정부 당시 검찰에서 한 차례 각하된 사안이었지만, 대통령이 바뀐 뒤 국정원의 고발로 재수사가 이루어졌다"며 "검찰의 수사와 기소 과정도 적절했는지 의문"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법조계 일각에서는 "재판부가 사실상 정치적 고려를 한 것이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한 법조인은 "범죄 행위를 인정하면서도 '법적 공백'을 이유로 처벌하지 않은 것은 법적 원칙에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검찰이 항소를 공식화한 만큼, 이 사건은 2심에서 다시 심리될 예정이다. 검찰은 1심 판결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하며 상급심에서 실질적인 처벌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법리 다툼을 이어갈 방침이다. 반면, 피고인 측은 "국익과 국민 안전을 최우선으로 고려한 정책적 판단을 이념적 잣대로 재단하지 말아야 한다"는 입장을 유지하며 항소심에서도 적극적으로 변론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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