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병 환자는 율법의 이러한 요구 사항을 무시하고 예수님 앞에 엎드려 치유를 간청했다. 따라서 이 사람의 행동은 자신과 예수님뿐만 아니라 더 많은 사람들을 부정하게 만드는 위태로운 행위였다. 이는 절망에 빠진 한 사람이 사회적으로 고립된 상황에서 취한 행동이었다. 반면 예수님께서는 더 큰 규칙을 깨는 반응으로 응답하셨다. 예수님은 나병 환자를 만지심으로써 사람들 사이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행동을 하셨던 것이다. 그러나 질병이 예수님께 옮겨가는 대신 치유가 이 분에게서 흘러나왔다. 예수님의 분노는 나병으로 인해 하나님의 창조된 세상이 손상된 방식에 대한 것이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이 남성은 심각한 피부병으로 인해 신체적으로 훼손되었고, 종교적, 사회적 상호작용에서 배제되어 고립된 상태에 처해 있었다. “사람이 혼자 있는 것이 좋지 않다”(창세기 2:18)는 말씀처럼, 이 남성의 상태는 예수님이 깊은 분노와 연민을 느낄 수 있는 이유가 되었던 것이다. 이 열정적인 감정이 예수님의 메시아적 기적 행위로 이어져 고립된 자에게 교제와 공동체를 회복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크리스 H. 헐쇼프 – 예수와 장애

마태복음 6장은 기독교인의 삶의 종교적인 면과 세속적인 면 두 가지를 다루고 있습니다. 주님은 이 두 가지 면을 과제로 삼아 상다히 자세하게 취급하셨습니다. 기독교인은 이 두 가지 면에 모두 교훈을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개심하여 기독교인이 되는 순간 그의 모든 문제가 해결되며, 모든 난제가 사라져 버린다고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큰 오류는 없습니다. 기독교인의 삶은 난제로 가득하며, 함정과 올가미로 가득합니다. 우리에게 성경이 필요한 것도 이 때문입니다. 우리 주님이 주신 이 자세한 교훈은 존 번연이나 기타의 기독교인들이 고전에 매우 조심스럽게 지적한 바와 같아 이 세상에서의 기독교인의 삶이 여러 가지 무제로 애워싸여 있는 삶이라는 사실입니다.
마틴 로이드 존스 – 산성설교: 하

사랑의 하나님, 하나님은 나를 불러 거룩한 존재로 만드셨습니다. 하지만 나에게는 거룩함이 엄청난 부담으로 다가왔습니다. 앞뒤가 꽉꽉 막힌 듯 답답하기만 했습니다. 거룩함을 곡해한 탓에 거룩함을 멀리했습니다. 그래서 믿으면 믿을수록 자꾸 교만해지고 뻔뻔해졌습닏.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회개합니다. 정작 알고 자랑스러워야 할 것을 많이 놓쳤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자랑하지 못했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을 자랑하지 못했습니다. 한 인간, 한 영혼이 세상의 모든 것보다 더 중요하다는 말씀을 잠시 잊었습니다. 이 시간 나를 찾아오셔서 주님의 거룩한 손으로 친히 만져 주옵소서. 내 안에 있는 교만고 거짓, 탐욕과 부패의 악들을 쳐서 부숴 버리소서. 하지만 주님을 사랑하는 내 마음과 영혼은 부드럽게 만져 주시고 받아 주소서.
김지철 – 참회의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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