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판 페치말지
스테판 페크말지. ©Christian Post

미국 크리스천포스트(CP)는 스테판 페크디말지의 기고글인 ‘아제르바이잔의 스테파나케르트 대성당 철거는 기독교 아르메니아를 향한 문화적 집단학살이다’(Azerbaijan's demolishing of Stepanakert Cathedral is cultural genocide of Christian Amenia)를 5월 9일(현지시각) 게재했다.

스테판 페크디말지는 미국 샌프란시스코 베이 지역에 거주하는 커뮤니케이션 전략가다. 그는 아르메니아계 미국인 1세대로, 아르메니아 대학살 생존자들의 손자이기도 하다. 다음은 기고글 전문.

역사는 우리에게 준엄한 교훈을 남겼다. 집단학살(Genocide)은 단순히 한 민족을 물리적으로 축출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그들의 존재를 증명하는 마지막 흔적인 '기억'마저 지워버릴 때, 비극은 비로소 완성된다. 지금 남코카서스의 심장부에서는 한 문명의 존재를 통째로 지워버리려는 소리 없는 삭제 작업이 전개되고 있다.

최근 아제르바이잔은 나고르노-카라바흐(아르차흐)에서 12만 명 이상의 아르메니아인을 강제로 몰아내며 지역의 지정학적 지도를 새로 그렸다. 그러나 이보다 더 음흉하고 치명적인 제2의 캠페인이 지금 정점을 찍고 있다. 이번 소모전의 희생양은 아르차흐 내 아르메니아인들의 삶과 신앙을 상징해 온 스테파나케르트 대성당이다. 최근 공개된 위성 사진은 이 성스러운 부지가 체계적으로 철거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는 건물의 파괴를 넘어, 한 문명의 천년 역사를 고의적으로 말살하려는 시도다.

이것은 결코 전쟁 중에 발생한 부수적 피해가 아니다. 전형적인 ‘문화적 집단학살’의 교본과도 같다. 1915년, 세계는 아르메니아 교회들이 평토장되고 역사가 닦여 나가는 것을 무기력하게 지켜보았다. 그리고 오늘날 2026년, 국제사회의 침묵은 아제르바이잔에 1세기 전 시작된 그 잔혹한 작업을 완결 지으라는 '녹색 신호'를 다시금 보내고 있는 셈이다.

스테파나케르트 대성당의 파괴는 아제르바이잔 바쿠 당국이 추진하는 거대한 역사 왜곡 정책의 단면일 뿐이다. 수십 년간 코넬 대학의 '코카서스 유산 감시단'을 비롯한 연구자들은 아르메니아 유산을 ‘코카서스 알바니아’의 것으로 둔갑시키거나 파괴하려는 국가 주도의 ‘알바니아화’ 프로그램을 경고해 왔다. 이들은 고대 유적지에 새겨진 아르메니아어 비문을 지우고 그 기원을 조작하며 역사를 새로 쓰고 있다.

이러한 행태는 1997년부터 2006년 사이 나히체반에서 수천 개의 하치카르(십자가 석비)를 파괴했던 참혹한 전례를 그대로 따른다. 당시의 사건은 현재 슈시와 스테파나케르트에서 벌어지는 일의 예행연습이었다. 주민들이 떠나 텅 빈 도시에서 대성당을 허무는 행위는 명확한 메시지를 던진다. "아르메니아인은 이곳에 존재한 적이 없으며, 결코 돌아올 수도 없다"는 선언이다.

또한, 이는 국제사법재판소(ICJ)의 권위에 대한 정면 도전이다. 2021년 12월, ICJ는 아제르바이잔에 아르메니아 문화유산의 파괴와 모독을 방지하라는 잠정 조치를 명령했다. 바쿠가 이 체계적 파괴를 멈추지 않는 것은 국제법의 한계를 시험하는 일이다. 만약 세계가 천년 유산의 말살을 방치한다면, 이는 전 세계의 팽창주의 세력들에게 ‘문화재 보호를 위한 헤이그 협약’ 따위는 휴지 조각에 불과하다는 오만한 확신을 심어주게 될 것이다.

유산 말살은 단순한 물리적 파괴를 넘어, 진정한 평화를 위한 심리적·법적 토대를 해체한다. 평화 조약이 한낱 휴전 문서가 되지 않으려면 상대의 존재 권리에 대한 최소한의 신뢰가 필요하다. 아제르바이잔이 국제적 명령을 무시하고도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는다면, 아르메니아에 있어 향후 국제적 보장에 의존하는 그 어떤 평화 조약도 무가치할 수밖에 없다. 결국 국제법이 아닌 '오직 군사력만이 안전을 보장한다'는 비극적인 믿음만 강화될 뿐이다.

현재 이란과 남부 레바논의 전운으로 세계의 이목이 분산되어 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남코카서스에서의 방관이 초래할 대가는 매우 높다. 문화적 집단학살은 인종 청소의 마지막 단계이며, 그 정화 작업을 영구화하는 최후의 수단이기 때문이다.

국제사회는 이제라도 행동해야 한다. 지체된 유네스코(UNESCO) 실사단에 즉각적이고 제약 없는 접근권을 보장하고, 경제적·외교적 관계를 문화유산 보존 문제와 엄격히 연계해야 한다. 문화재 파괴를 평화 협상의 결코 넘어서는 안 될 ‘레드라인’으로 설정해야 한다.

역사는 인류 공동의 자산이다. 스테파나케르트의 대성당이 무너지는 것은 아르메니아만의 손실이 아니라 인류 문명사의 일부가 소멸하는 것이다. 한 국가가 특정 민족의 존재 흔적을 중장비로 밀어버리는 것을 방관하면서, 우리가 '규범에 기반한 국제 질서'를 말할 자격은 없다.

스테파나케르트의 돌들은 침묵하고 있을지 모르지만, 우리의 대응까지 침묵해서는 안 된다. 책임 규명만이 이 지역의 평화가 사라진 문명의 잔해 위에 세워지지 않도록 보장하는 유일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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