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진수 교수
가진수(월드미션대학교 찬양과 예배학과 교수)

우리는 때때로 하나님이 저 멀리 계신 것 같게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이야기를 나눈다고 하지만 친밀하다기보다는 거리가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이에 요한의 편지들은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 속에서 참된 예배 공동체가 무엇인지 알려줍니다.

요한이 이 편지를 쓴 가장 중요한 이유는 거짓 교사들과 싸우는 그리스도인 예배 공동체에 힘을 주기 위함입니다. 당시 속이는 자들의 유혹에 쉽게 미혹될 수 있었던 이유는 그들이 공동체에서 함께 했던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우리에게서 나갔으나 우리에게 속하지 아니하였나니 만일 우리에게 속하였더라면 우리와 함께 거하였으려니와 그들이 나간 것은 다 우리에게 속하지 아니함을 나타내려 함이니라”(요일 2:19)

당시 교회는 교회의 정통 가르침, 전통, 권위에 대항해 육체적 존재를 결함이 있거나 악한 것으로 주장한 영지주의와 같은 이단의 유혹에 큰 혼란을 겪고 있었습니다. “미혹하는 자가 세상에 많이 나왔나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심을 부인하는 자라 이런 자가 미혹하는 자요 적그리스도니”(요이 1:7) 이에 요한은 영적인 하나님의 자녀들이 처음부터 믿었던 진리를 잘 간직하고 다른 사람들을 사랑함으로써 그들의 믿음을 지킬 것을 촉구합니다. “너희는 처음부터 들은 것을 너희 안에 거하게 하라 처음부터 들은 것이 너희 안에 거하면 너희가 아들과 아버지 안에 거하리라”(요일 2:24) “그의 계명은 이것이니 곧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그가 우리에게 주신 계명대로 서로 사랑할 것이니라”(요일 3:23)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는 참된 그리스도인만이 모든 거짓을 극복할 수 있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사랑하는 제자 중 한 사람인 요한은 우리와 삼위일체 하나님, 그리고 그리스도인 예배 공동체 사이에 친밀한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는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의 사랑의 관계를 통해 참된 기쁨을 누릴 것을 강조합니다(요일 1:3-4). 그리스도 안에서의 삶은 하나님 안에 거하는 삶이며, 하나님을 통해서만 참된 사귐이 있습니다. “그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요일 1:7)

그러므로 예배는 멀리 계시는 하나님을 뒤로한 채 드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예배를 통해 하나님과 더 친밀한 교제 가운데로 들어가는 것이며, 함께 예배를 드리는 지체들과도 더욱 친밀해지는 시간입니다. 요한은 하나님과의 깊은 관계를 설명하기 위해 그가 가장 좋아하는 그리스어 동사를 사용했는데, ‘meno(메노)’라는 동사로, ‘살다’, ‘거하다’, ‘계속되다’, ‘머무르다’와 같은 의미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처음 믿을 때, 하나님 안에서 살기 시작합니다. “누구든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시인하면 하나님이 그의 안에 거하시고 그도 하나님 안에 거하느니라”(요일 4:15) 그리고 아들과 아버지 안에서 거하게 됩니다. “너희는 처음부터 들은 것을 너희 안에 거하게 하라 처음부터 들은 것이 너희 안에 거하면 너희가 아들과 아버지 안에 거하리라”(요일 2:24) 또한 우리에게 보내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이를 깨닫게 됩니다.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는 주 안에 거하고 주는 그의 안에 거하시나니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우리가 아느니라”(요일 3:24) 그리고 성령님을 통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십니다. “누구든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시인하면 하나님이 그의 안에 거하시고 그도 하나님 안에 거하느니라”(요일 4:15) 요한은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잘 그려내었고, 구름 저편 아주 멀리 계시는 막연한 하나님의 이미지를 명확하게 해주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을 때, 우리는 하나님 안에, 하나님은 우리 안에 사시게 됩니다. 그러므로 예배는 피상적이 아니라, 아주 친밀한 교감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생명에 참여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보내주신 견줄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이 항상 우리와 함께하며 그 충만한 사랑으로, 우리도 이같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요일 4:9-10)

이 사랑은 하나님께만 보여드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도 표현해야 합니다. 요한은 사랑하는 공동체 그리스도인들에게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에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말합니다(요일 4:11), 그리고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이며, 옆에 보이는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보지 못하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다고 권고합니다(요일 4:20). 하나님과의 참된 교제는 항상 하나님의 백성과의 교제까지 포함합니다.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면 그 사랑은 반드시 다른 사람들에게까지 흘러넘칩니다.

요한일이삼서를 포함한 대부분의 서신서들의 가장 큰 주제 중 하나는 공동체입니다. 교회는 각 지체들이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 공동체입니다. 교회 공동체라는 주제는 요한의 편지 내내 강조되고 있습니다. 그는 이 새로운 공동체는 단순히 사람의 모임이 아니며, 참된 목적은 하나님만 바라보는 수직적인 관계임을 알려줍니다.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림이라”(요일 1:3).

요한은 이 공동체가 사랑의 공동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 사랑은 단순히 사람의 충동이나 감정이 아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먼저 보여주신 사랑의 결과입니다.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요일 4:10) 그것은 감상적인 느낌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 다른 지체에 대한 헌신으로 나타납니다. 요한은, 다른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신뢰를 통해 우리가 사망으로부터 생명으로 들어갔다는 증거라고 선포합니다(요일 3:14). 함께 믿는 자들에 대한 우리의 사랑과 신실함은 예수 그리스도의 계명을 따르려는 순종의 반응이며,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그리스도 안에서의 형제자매들을 미워한다면 그것은 우리를 거짓말쟁이로 만드는 일입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요일 4:20)

이 사랑의 공동체는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공통된 신앙고백에 따라 모였습니다. 그러므로, 이 공동체가 참된 예배 공동체가 됩니다. 왜냐하면 기독교 예배의 핵심적 행위는 예수님을 주님이자 메시아, 하나님의 아들로 높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신앙고백에 대해 타협한다면 우리 예배 공동체는 무력화됩니다. 요한은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는 점을 부인하는 사람들을 강하게 질책하고 있습니다. 그는 그들을 적그리스도라고 부르면서 그들이 신앙 공동체에 설 자리는 없다고 선포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우리 교회 공동체에서 나간 것은 우리 예배 공동체에게 속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강조합니다(요일 2:19).

이와 같은 요한의 경고는 결코 예배가 세상의 주제나 세속 문화를 발전시키기 위한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일깨워줍니다. 이에 반해 우리의 예배는 예수님을 만유의 주님으로 높이고 모든 사람들이 그분만이 주실 수 있는 참된 복음의 삶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환대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때때로 교회 공동체는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스스로 평가해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요한은 우리에게 몇 가지 기본적인 것들을 일깨움으로써 교회 공동체가 올바른 길로 갈 수 있도록 돕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계명에 따라 서로를 사랑하고 있는지(요이 5-6절) 아니면 그리스도의 가르침과는 달리 행하고 있는지 말입니다(요이 9절).

특별히 요한은 예배 예식에 관해 언급하지 않았지만 그가 말한 그리스도의 교제와 예배의 삶은 수 세기에 걸쳐 행해진 예배의 요소들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예배는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신 일을 선포하는 신앙고백을 포함합니다(요일 1:1-3, 3:23). 예배 중에 우리는 우리의 죄를 고백하고 그리스도를 통해 용서를 받습니다(요일 1:9, 2:1). 그리스도는 우리 예배 가운데 함께 하시며, 장래에도 함께 하십니다(요일 3:2). 성찬식에서 그리스도인들은 죄를 용서받도록 만들어주신 그리스도의 몸의 희생을 기억하게 됩니다.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요일 4:10) 그리고 하나님께 우리와 다른 사람들의 필요를 간구하는 기도가 예배에 포함됩니다(요일 5:14-16).

예수님께서 특별히 사랑하셨던 요한은 예수님과 가장 친밀하게 지냈던 제자 중 한 사람입니다. 그는 사랑으로 표현되는 참된 삶의 중요성에 관한 몇 가지 지침들을 남겼습니다. 그 삶은 예수님께서 기도하고, 가르치고, 웃고, 울고, 사랑하고, 죽으심으로 요한에게 본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이제, 오랜 세월이 지난 후 요한은 믿음의 자녀들이 사랑 안에 거함으로써 하나님께 예배하며, 하나님 말씀을 잘 배우고 자라는 모습을 보고 싶었습니다. 요한은 하나님이 선택하신 우리 모두가 그리스도의 사랑에 반응해 하나님과 말씀에 대한 그들의 사랑을 서로 자유롭게 나누며 그 사랑을 보여줄 것을 부탁하고 있습니다.

요한의 세 번째 편지는 하나님을 위해 사는 그리스도인들과 나눈 기쁨의 대화입니다. 참된 예배의 특징은 진리를 믿고 진리에 따라 사는 것입니다. 요한은 사랑하는 예배 공동체가 그들이 고백하는 진리에 따라 살 수 있기를 고대했습니다. “형제들이 와서 네게 있는 진리를 증언하되 네가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하니 내가 심히 기뻐하노라 내가 내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함을 듣는 것보다 더 기쁜 일이 없도다”(요삼 3-4절) 그는 아버지처럼 이 기쁨을 더하도록 마음껏 격려했으며(요삼 5-8절), 믿음의 예배자들이 하나님을 예배하지 못하도록 하는 어리석음에 맞섰습니다(요삼 9-11절).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는,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찬양할 때 더욱 특별해집니다. “내가 네게 쓸 것이 많으나 먹과 붓으로 쓰기를 원하지 아니하고 속히 보기를 바라노니 또한 우리가 대면하여 말하리라”(요삼 13-14절) 요한삼서는 하나님의 자녀들과 함께 예배하면서 그리스도의 진리로 하나가 되어 찬양하는 것이 얼마나 행복하지를 말해줍니다.

요한일이삼에서 우리는 예배의 통찰을 배울 수 있습니다. 첫째, 예배는 생명의 말씀이신 그리스도를 계시하는 것으로 시작됩니다(요일 1:1).
둘째, 예수님께서 세상의 모든 죄를 없애셨으므로, 죄를 고백하는 것은 예배의 한 부분입니다(요일 2:2).
셋째, 세상을 사랑하는 것과 참된 예배의 삶은 양립할 수 없습니다.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요일 2:15)

넷째,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를 자녀로 삼으신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습니다(요일 3:1).
다섯째, 예배 공동체의 예배자들은 서로 사랑을 보여야 합니다(요일 3:14-17).
여섯째,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자들이 성경에 따라 말하고 있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예수를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니 이것이 곧 적그리스도의 영이니라 오리라 한 말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지금 벌써 세상에 있느니라”(요일 4:3)
일곱째,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가 사랑을 통해 온전히 나타납니다.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어지느니라”(요일 4:12)

여덟째, 우리는 죄에 빠진 다른 예배자들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요일 5:16-17).
아홉째, 진리를 가르치는 교회는 항상 그리스도의 신성을 확고히 선언해야 합니다(요이 10-11절).
열 번째, 진리 안에서 살 때 예배자들의 기쁨이 넘칩니다(요삼 4절).
열한 번째, 예수님의 이름으로 환대하는 것은 주님을 높이는 일입니다(요삼 6절, 8절).
열두 번째, 예배에서 스스로를 높이는 것은 주님을 욕되게 하는 것입니다(요삼 9절).

열세 번째, 선한 일을 행한다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자여 악한 것을 본받지 말고 선한 것을 본받으라 선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고 악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을 뵈옵지 못하였느니라”(요삼 11절)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가장 최고의 교회는 사랑이 넘치는 교회입니다. 각 지체가 하나 되어 하나님을 온전히 찬양할 때 참된 예배가 됩니다. 요한은 사랑이 식어지고 개인주의가 횡행하는 지금의 교회와 예배 공동체에 사랑으로 하나 되어 하나님께 온전히 영광 돌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지를 말해줍니다.

가진수(월드미션대학교 찬양과 예배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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