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건보다 앞선 은혜, 믿음으로 받은 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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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4장 9–10절에서 바울은 아브라함이 언제 의롭다 하심을 받았는지를 묻는다. 이 질문은 단순한 역사적 확인이 아니다. 구원이 할례라는 외적 표식에 달려 있는지, 아니면 하나님의 은혜와 믿음에 달려 있는지를 밝히는 결정적인 질문이다. 바울의 대답은 분명하다. 아브라함이 의롭다 여김을 받은 것은 할례를 받은 후가 아니라, 할례를 받기 전이었다.

아브라함은 75세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믿음의 길을 떠났다. 그러나 그가 할례를 받은 것은 99세 때였다. 다시 말해 아브라함은 할례를 받기 전에 이미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고, 하나님께서는 그 믿음을 의로 여기셨다. 이것은 유대인들의 편협한 구원 이해를 무너뜨리는 말씀이었다.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 된 것은 할례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총 때문이었다.

유대인들은 할례를 구원의 조건처럼 여겼다. 하나님 백성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바울은 아브라함의 삶 자체가 그 생각을 반박한다고 말한다. 아브라함은 할례 이전에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다. 또한 율법도 아브라함보다 훨씬 뒤에 주어졌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의 의는 할례나 율법의 공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을 믿은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은혜가 인간의 조건보다 앞선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하나님은 사람이 어떤 표식을 갖추었기 때문에 받으시는 분이 아니다. 먼저 부르시고, 먼저 약속하시며, 먼저 은혜를 베푸시는 분이시다. 믿음은 그 은혜에 응답하는 것이다. 그래서 구원의 복은 할례자에게만 제한되지 않고, 무할례자에게도 열려 있다. 하나님은 모든 믿는 자의 하나님이시다.

바울이 말하는 복음은 차별 없는 은혜의 세계다. 사람은 쉽게 자신이 먼저 왔다는 이유로, 더 많이 했다는 이유로, 더 오래 믿었다는 이유로 은혜의 자리를 독점하려 한다. 그러나 마태복음 20장의 포도원 품꾼 비유처럼, 하나님 나라는 계산의 세계가 아니라 은총의 세계다. 늦게 온 자도 주인의 은혜로 동일한 품삯을 받는다. 이것은 불공평이 아니라 은혜의 풍성함이다.

가인과 아벨의 이야기에서도 인간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들이지 못할 때 비극으로 나아간다. 하나님께서 아벨의 제사를 받으신 것은 은혜의 사건이었다. 그러나 가인은 그 은혜를 기뻐하지 못하고 시기와 분노에 사로잡혔다. 은혜를 은혜로 보지 못할 때, 인간은 하나님을 오해하고 형제를 미워하게 된다.

바울은 로마서에서 계속해서 이 놀라운 은혜를 설명한다. 하나님은 죄인에게 의의 옷을 입히시고, 자격 없는 자를 받아들이시며, 믿는 자를 의롭다 하신다. 이것은 인간의 상식이나 율법적 계산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세계다. 그러나 복음은 바로 그 이해할 수 없는 사랑과 은총을 선포한다.

오늘의 말씀은 우리에게 묻는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조건 안에 가두고 있지는 않은가. 나의 기준과 자격으로 사람을 나누고,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은혜를 제한하려 하지는 않는가. 아브라함이 할례 이전에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다면, 구원의 문은 모든 믿는 자에게 열려 있다. 은혜는 조건보다 앞서고, 믿음은 그 은혜를 받아들이는 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랑할 수 없다. 다만 감사할 뿐이다. 하나님께서 먼저 부르셨고, 먼저 약속하셨고, 먼저 의롭다 하셨다. 이 놀라운 은혜를 깨닫는 자는 더 이상 편협한 기준에 갇히지 않는다. 차별 없는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우리는 모두 믿음으로 복을 받은 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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