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019년 7월25일 청와대 본관에서 윤석열 당시 신임 검찰총장 임명장 수여식을 마치고 환담장으로 향하고 있는 모습. ⓒ뉴시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019년 7월25일 청와대 본관에서 윤석열 당시 신임 검찰총장 임명장 수여식을 마치고 환담장으로 향하고 있는 모습. ⓒ뉴시스

문재인 대통령이 23일 신임 한국은행 총재 후보자를 지명한 것을 두고 청와대와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진실 공방을 벌이면서 양측 간 갈등이 더욱 심화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그동안 문 대통령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간 고위직 인사권 행사를 둘러싼 갈등이 두 사람 회동 파행의 주요 원인으로 꼽혀왔다는 점에서 문 대통령의 한은 총재 후보자 지명으로 갈등이 완화될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하지만 후보자 인선 협의를 놓고 청와대와 윤 당선인 측이 정반대 입장을 보였다. 청와대는 후보자 지명 과정에서 윤 당선인 측 의견을 수렴했다고 밝혔지만 곧바로 윤 당선인 측은 청와대와 공식 협의한 적이 없다고 부인했다. 양측 간 갈등이 한동안 지속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당장 양측 간 '진실 공방' 양상으로 흐르면서 갈등이 더 격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첫 회동 무산의 핵심 원인이었던 감사원 감사위원 2명에 대한 인사권 갈등이 여전하다는 점에서 신(新)·구(舊) 권력 간 추가 충돌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이다.

문 대통령은 이날 오전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의 뒤를 이을 신임 총재 후보로 이창용 국제통화기금(IMF) 아시아·태평양 담당 국장을 지명했다. 지난 2018년 연임 돼 이달 퇴임하는 이주열 총재의 후임을 지명한 것이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기자들과 만나 새 한은 총재 후보자 지명 배경에 관해 "한은 총재는 당연직 금융통화위원으로서 정치적 중립성이 보장돼 있다"며 "어느 정부가 지명했느냐와 관계없이 이달 31일 임기 만료가 도래해 임명 절차 등을 고려할 때 후임 인선작업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한은 총재 후보자 지명 건은 문 대통령과 윤 당선인의 첫 회동 결렬 원인과 깊이 연관돼 있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후임자 인선을 위해 윤 당선인과의 사전 협의가 필요하다는 문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장제원 비서실장과 이철희 정무수석 간 공식 채널을 통해 양측이 협상을 벌여왔다.

실무협상 과정에서 한은 총재, 2명의 감사원 감사위원,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상임위원 등 총 4곳의 주요 고위직 인선을 조율해왔다. 한은 총재 후보자 인선에 관해서는 대체적으로 이견이 좁혀져 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후보자로 지명된 이 국장은 이명박(MB) 정부 출범 당시 인수위원회 인수위원과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을 잇따라 맡았던 인물로 윤 당선인 측에서도 크게 문제 삼지 않을 것이라는 평가가 대체적이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가 이날 "당선인 측의 의견을 들어서 내정자를 발표하게 됐다"고 밝힌 것도 이러한 맥락 위에서 이해된다.

그러나 윤 당선인 측이 곧바로 입장문을 내고 "한국은행 총재 인사 관련해 청와대와 협의하거나 추천한 바 없다"고 부인했다. 청와대에 이 후보자에 대한 추천도, 그에 따른 공식 협의 과정도 거치치 않았다는 게 윤 당선인 측 주장이다.

윤 당선인 측 협상자인 장 비서실장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이 수석이 '이창용씨 어때요' 하니까 (제가) '좋은 분이죠'라고 한 게 끝"이라며 "협의를 거쳐서 추천 절차를 밟은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날 청와대의 이 후보자 인사 발표와 무관하게 사전 협상 과정에서 이 수석이 한은 총재 후보자에 대한 의견을 물었고, 개인적 평가를 전달했을 뿐이라는 취지의 주장이다. 공식 협의 과정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얘기다. 충분한 협의 끝에 발표됐다는 청와대의 주장과 정면 배치되는 부분이다.

이처럼 청와대와 당선인 측이 한은 총재 후보자 인선 건을 두고 '진실공방' 양상이 전개되면서 문 대통령과 윤 당선인 회동은 또다른 '뇌관'으로 작용할 것으로 전망된다. 윤 당선인의 대통령 집무실 용산 이전 구상을 놓고 정면 충돌했던 것이 새로운 갈등 국면으로 옮겨갈 가능성이 크다.

실제 양측 협상 카운트 파트인 장 비서실장과 이 수석은 지난 주와 이번 주 두 차례 실무협상에서 주요 고위직 인사 문제를 협의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한은 총재에 대한 논의 보다는 2명의 감사원 감사위원 인사 문제가 쟁점이었다고 한다.

현재 임기가 남아있는 감사위원 4명 가운데 2명(김인회·임찬우)이 친여 성향이라는 점을 감안해 2명 모두 당선인 측 입장을 반영하는 방안, 2명의 인사를 1명씩 나눠서 추천하고 이를 수용하는 방안까지 거론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첨예한 이견으로 접점을 찾지 못하고 협상은 결렬된 것으로 전해졌다. 협상과정에서 윤 당선인 측은 청와대가 추천하는 감사위원 1명에 대한 자신들의 비토(veto)권을 인정해 줄 것을 요구해 협상이 최종 결렬된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에서는 감사위원 2명에 대한 인사권 모두를 윤 당선인이 행사하겠다는 요구를 수용할 수 없었다 한다.

이와 관련 야권 관계자는 "당초 모두 위임할 뜻을 시사했던 청와대가 감사위원 1명의 자리에 대한 인사권 행사로 입장이 선회한 것으로 안다"며 "용산 국방부 청사 이전 불가 입장을 보인 것도 그 때문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청와대는 윤 당선인의 공약과 정책에 대해서 함구령을 내린 문 대통령 지시에 따라 관련한 언급을 극도로 아끼고 있다. 다만 일부에서는 인사권 갈등 이후 문 대통령이 회동을 공개 제안했음에도 당선인 측에서 미온적 태도를 보이고 있는 데 대한 불만도 감지된다.

반대로 윤 당선인 측에서는 문 대통령의 회동 제안에 진정성을 의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문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용산 집무실 이전을 문제 삼은 상황에서 회동에 임해서는 안된다는 목소리가 분출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양측 간 감정의 골이 깊어지면서 회동이 장기 표류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양측 실무협상 당사자들은 추가 협상 일정도 잡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집무실 용산 이전 구상에 제동이 걸린 윤 당선인 측이 재차 감사원 감사위원 인사권과 이명박 전 대통령(MB) 사면론으로 국면 전환을 시도하자 청와대가 인사 카드로 '되치기'에 나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비교적 대립이 적었던 한은 총재 후보자를 발표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윤 당선인의 최측근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은 이날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청와대도 MB 사면 요청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사면론을 거듭 제기했다. 그는 또 "인사권 문제는 어느 정도 조율이 돼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용산과 이 청와대 해체 문제에 대해서는 아직까지는 조율이 안 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도 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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