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빛순복음교회 김영태 목사 (profile)
참빛순복음교회 김영태 목사

성령운동의 원조, 또는 장자라고 주장하는 교단들과 목사들이 있다. 그런데 누가 원조이고 누가 장자인지도 중요하겠지만 진짜 중요한 것은 성령님의 능력이 나타나는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고전 4:20)

성령님의 능력이 나타나지 않는데 원조나 장자, 주역이 무슨 필요가 있겠는가?

지금은 어느 때보다도 성령님의 역사가 필요한 시대이다. 코로나19로 인해서 전 세계인들이 고통을 당하고 있고, 교회도 예외가 아니다. 정부와 지자체들은 다른 단체나 업종들과 비교할 때 불공정하고 과도할 정도로 교회를 제재하고 있다. 이런 억울함을 한방에 날려버릴 수 있는 것은 성령님의 역사다. 성령님이 주시는 신유의 은사로 확진자들을 다 치료하고, 또 교회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단 1명도 나오지 않게 한다면 어떤 세력이 교회를 핍박한다 해도, 교회는 오히려 부흥하고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교회는 성령의 능력을 나타내지 못하고 있다. 성령의 은사를 자랑하던 목사들과 교단들이 모두 잠잠하다. 목사인 필자도 부끄러움과 책임감을 느끼며 회개한다. 성령의 능력이 나타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성경은 허황된 책일까? 절대 그렇지 않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성령님의 역사는 왕성하게 나타났다. 그런데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 성령님의 역사는 희귀해지기 시작했다. 그 대신 교회 성장에 관한 수많은 방안들이 쏟아져 나왔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교회는 감소했다. 이제 1,200만 성도라는 말이 무색하다. 800만 명 정도나 될까? 코로나 사태가 끝나면 500만 명이나 남아있을까?

하나님의 깊은 뜻을 다 알 순 없지만, 성령님의 역사가 희귀해지는 이유 중에 하나는 성령님을 떠나게 하기 때문이다. 사울 왕에게 성령님이 함께 할 때 그는 백전백승 했다. 그러나 성령님이 떠나자 귀신에게 고통당하고 어린 소년 다윗을 의지하는 초라한 겁쟁이가 되었다. 성령님이 사울 왕에게서 떠난 이유는 그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지 않고, 권력과 물질과 명예를 탐하고, 하나님의 사람 다윗을 핍박했기 때문이다. 오늘날 성령님의 역사가 희귀해진 것이 이런 이유-목사들의 죄 때문은 아닐까 두렵다.

성령을 강조하는 어떤 목사는 정부에게 정신 차려야 한다고 비판했다. 그런데 그 목사가 속한 교단에서는 법 개정을 반대한 목사의 발언을 문제 삼아 명예훼손 등으로 고발했다. 교회가 남을 비판하면서도 다른 사람에게 비판 받는 것을 싫어하면 교권주의에 빠질 위험이 있다. 또 세상 법정에 고소하는 것을 금지하는 어떤 교단에서는 중환자실에 입원중인 목사를 세상 법정에 고소했다. 충격을 받아서 불행한 일이 발생하면 간접 살인으로 회자될 수도 있는데, 평신도들과 세상 사람들 보기 부끄럽다. 왜 그랬을까? “무엇이 중헌디?”

어떤 교단에서는 교단대표(총회장) 및 임원들이 7~8년 이상의 임기를 하고, 10년 이상을 하기도 한다. 기네스북에 오를 수 있을 것이다. 의심스럽겠지만 불법은 아니다. 교단의 분열, 통합, 특별법, 추대, 단독 입후보 등의 꼼수로 적법하게 한다. 그러나 세계적 부흥사였던 C목사는 1990년대 초반, 교단 통합 때 총회장으로 추대되는 것을 사양하고 뒤에서 겸손하게 섬기고 또 시골교회와 작은 교회 목사들의 노후를 위해서 교단연금에 30억원을 후원해서 존경받았다.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사고방식을 버리고 성령님께 맡겨야 성령님이 역사하신다.

한국교회가 코로나19와 불공정한 제재로 힘든 싸움을 하고 있는 때에, 교회에 대한 정부의 과도한 제재에 대해서는 항의도 한 마디 못하는 목사들, 돈과 권력과 명예를 탐하여 꼼수로 임기 연장하는 목사들, 입만 열면 ‘성령님을 의지하라’, ‘비판하지 말고 용서하라.’고 말하면서도 정작 자신을 비판하는 것을 넓은 아량으로 품지 못하는 목사들, 자신의 교회 화장실보다도 작은 교회의 목사를 고소하거나 고소하는 것을 모르는척하면서도 성령운동의 대표처럼 행동하는 목사들은, 성령님을 떠나게 하고 교회를 쇠퇴하게 하는 부끄러운 역사를 남길 것이다.

성령을 내세우는 자들이 총회원(목사)들에게 세상 법정에 고소하면 제명하겠다고 겁박하는 대신, 자신들부터 교단과 세상에 고소하는 습관을 회개하고 하나님께 맡기길 기대한다. 빈대나 벼룩 같이 작은 목사 잡으려다 초가삼간 다 태운다. 모세는 자신을 비판하는 자들을 고소하지 않았고, 다윗은 자신을 죽이려고 한 사울 왕을 대적하지 않았다. 그 대신 하나님께 맡겼다. 하나님은 모세의 원수와 다윗의 원수들을 심판해주셨다. 교단의 힘 있는 목사들이 먼저 재판 권력을 내려놓고 하나님께 맡기고, 성령의 불을 받기 위해 기도하고, 앞장서서 코로나19와 교회를 핍박하는 골리앗과 싸운다면, 비판은 사라지고 존경받게 될 것이다.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마 7:18) 성령 충만한 자는 성령님의 열매를 맺지만 성령 충만하지 않으면 충만한 척은 할 수 있어도 세속의 열매를 맺을 뿐이다. 세상 법정에 고소하지 말라고 하면서 교단과 세상에 고소를 남발하는 모순된 자들, 교단을 위하는 척하면서 임기를 연장하고 돈과 권력과 명예를 탐하는 자들, 자신을 반대하면 재판과 징계의 칼을 휘두르는 자들은 좋은 나무가 아니다. 바울 사도는 이런 자들에게서 떠나라고 충고했다(딤후 3:5). 그들도 한 때는 순수하고 성령 충만했을 것인데 안타깝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될 날을 생각하고 회개하길 기도한다.

사울 왕처럼 돈과 권력과 명예욕에 빠진 자들이 악법을 합법으로 만들고, 의인을 징계하는 재판의 칼을 휘두르는 일이 발생해도 나는 절망하지 않는다. 사울이 3천 명이나 되는 군대를 앞세우고 벼룩같이 작은 다윗에게 칼을 휘두를 때 성령님은 사울을 떠났고, 칼 휘두르기 좋아하던 사울은 자신의 칼에 스스로 죽었다. 벼룩 잡으려다 초가삼간 다 태운 꼴이다. 성령님은 다윗에게 옮겨가시고 다윗을 사용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위대한 왕국을 건설하셨다.

이처럼 하나님은 공의로운 심판을 하시고 성결교이든 장로교, 감리교이든 어느 교단이든지 간에 또 어느 교단의 목회자이든지 간에 반드시 합당한 자를 새로 선택하시고 성령님을 부어주셔서 코로나19와 핍박을 물리치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위대한 역사를 이루실 것을 나는 믿는다.

김영태 목사(참빛순복음교회)

  • 네이버 블러그 공유하기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email protected]

- Copyright ⓒ기독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독교 종합일간지 '기독일보 구독신청 바로가기'

#김영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