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칠곤 목사
▲김칠곤 목사(크릭사이드 한인교회)

하나님이 손가락으로 만드신 세상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에 모습은 참으로 다양하고 독특하고 소중하다. 그 이유는 하나님이 한 사람 한 사람을 고유하게 창조하셨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세상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이 추구하는 세계는 그리 복잡하지 않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추구하는 세상은 삶에 대한 두려움에서 벗어나 안전하고 평안한 삶속에서 성공이라는 정상에 도달하는 것이다. 어느 학자가 이렇게 살아가는 인간의 삶을 세가지 원을 그려 설명하였는데 그것들은 편안한 지대(Comfort Zone), 성장 지대(Growth Zone) 그리고 두려운 지대(Fear Zone)이다.

편안한 지대에 살아가는 사람은 내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이면 충분하고 여기에서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다. 이러한 사람의 유형은 환경을 통해 새로운 변화가 일어나는 것을 그리 반갑게 여기지 않는다. 이것은 자기 중심적인 삶이며 누구도 자기를 힘들게 하지 아니하면 된다고 여기는 삶을 사는 사람들이다. 두번째는 성장 지대에 살아가는 사람으로 항상 뭔가 변화를 추구하려하고 새로운 것을 시도해 보려고 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때로는 새로운 변화를 추구하다가 암초에 부닥치는 경우를 경험하게 된다. 거기에는 위험(Risk) 이라는 도전적인 것이 도출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뚫고 넘어가 새로운 세계를 향해 나아가는 사람이 성장지대에 사는 사람이라고 말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안전지대에 살아 가거나 편안한 지대에 살아가거나 인간이 경험하며 살아가는 세상 속에는 누구에게나 삶에 대한 두려움의 지대를 만나게 된다.

세상과 삶에 대한 두려움은 그것을 어느 시각에서 바라보느냐가 중요하다. 편안한 지대에 살기를 바라는 사람이 삶에 대한 두려움에 부닥치게 되면 세상에 사는 것이 대단히 불편하고 그것을 불행이라 여기며 삶의 문제가 극복이 되지 아니하면 계속적인 염려와 불안 가운데 살아가게 된다. 그러나 이와 반면에 성장을 바라는 사람은 자신에게 불어 오는 두려움을 극복하려 하고 한다. 그리고 "자신에게 주어진 위기(危起)를 삶에 기회로 여긴다"그래서 두려움을 두려움으로 여기지 아니한다. 그런데 문제는 삶의 환경에서 주어지는 어려움의 위기를 인간의 힘으로 스스로 이겨낼 수 있는 저항력을 갖는 것은 그리 쉬운일이 아니다. 그것은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이 바꾸어진 상태에서 마음의 눈이 먼저 바뀌어야 하기 때문이다. 즉 현실을 보다는 다가올 세상을 바라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것을 위해서는 미래를 볼 수 없는 사람이 하나님의 도움을 받아 변화가 없는 환경을 하나님께서 변화시켜 주실 것이라고 믿는 믿음을 가지는 것이다. 그래서 신앙인의 삶은 하나님을 전적인 신뢰하는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도움을 받아 희망과 승리를 바라보고 "성장 지대"(Growth Zone) 곧 "믿음 지대"(Faith Zone)에 살아가야 한다. 오늘날 현대인들이 살아가는 세상은 천지를 창조하시고 죄가운데 살아가는 세상 사람들을 사랑하시고 구원하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일하심과 하나님의 사랑을 저버리고 하나님의 역사에 반항하는 두려운 시대를 살고 있다.

이러한 하나님의 역사에 대한 반항의 모습은 바로 '동성연애', '동성결혼', 'IT에 노예화', '인간의 복제', '사이버 세계의 통제', '적 그리스도'와 같은 것들이다. 이러한 것들은 과거의 인류 문화의 역사속에 볼 수 없을 정도로 너무나 빠르게 급진전이 되고 있다. 그리고 지난 수천년 성경의 역사속에서 죄로 여겼던 것이 죄가 아니라 인권이라는 명목하에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정당하게 여기게 하는 것이다. 이것을 볼때 우리가 사는 세상은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영적인 세계', '영원한 세계', '하나님의 역사'(Kairos)를 점점 망각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이러한 삶을 본다면 우리가 사는 세상은 무서움과 하나님의 징계를 두려워하지 않음에 틀림이 없다고 볼 수 있다. 한가지 분명한 것은 세상이 죄가 너무나 관영하면 하나님의 심판은 반드시 주어질 것이다. 그 이유는 하나님은 처음의 알파요 마지막의 오메가 이시기 때문이다. 세상이 하나님의 역사속에 저항하는 것은 하나님의 세계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과거, 현재, 미래를 주관하시는 분이시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들에게는 영원을 사모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전도서3:11) '수평적인 시각'(Horizontal sight), '역사적 시각'(Kronos sight)으로는 하나님의 때를 알 수 없기에 하나님의 일하님에 대해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역사에 저항하는 적 그리스도가 마지막 때에 더 크게 일어난다.

하나님의 교회를 무너뜨리려고 하는 적 그리스도가 아무리 강하게 일어난다 할지라도 교회는 늘 승리한다. 그것은 바로 교회의 머리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며 교회의 머리가 되시는 주님은 이미 십자가 상에서 죽음을 이기셨으며 부활 하심으로 사단의 권세를 정복하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회는 승리할 수 밖에 없으며 그것을 하나님은 구원받은 자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시기를 바라신다. 하나님의 자녀된자 들은 곧 교회가 되어야 한다. 이러한 교회된 하나님의 백성들은 마지막 까지 "남은 자로 살아야 한다." 이것을 위해서 영적 전투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영적인 무기를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이것은 곧 믿음이다. 믿음은 자신을 신뢰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에 절대적인 순종에서 주어지는 것이다.

아브라함은 100세에 자신에게 주신 이삭을 하나님이 모리아 땅에 가서 번제로 드리라고 했을 때 그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 했다. 그런 믿음을 보시고 하나님은 이삭 대신에 번제를 위해 숫양을 준비해 두시었으며 그를 열국에 믿음의 아버지가 될 것이라고 축복을 선포하셨다. 이러한 믿음을 가지고 "강하고 담대함"을 가져야 한다. 그러면 적그리스도 그리스도인들을 결코 무너뜨릴 수 없다. 교회가 승리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이 그의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이땅에 보내시어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의 못박혀 죽으셨기 때문이다. 주님의 십자가 사랑은 이슬람 사람들이 존중이 여기는 한 손에는 칼 다른 한손에는 코란과 다른 것이며 세상 사람들이 인권의 존중을 여겨 죄를 죄라고 여기지 않도록 만드는 인권의 평등과는 전적으로 다르다. 마지막 시대를 살고 있는 교회의 몸인 성도들은 어두움을 모르고 살아가는 세상 사람들에게 십자가를 높이 들어 주님을 바라 볼 수 있도록 진리의 빛을 세상에 비추어야 한다. 주님의 교회를 통해 세상이 주를 볼 수 있도록 하나님의 백성들은 어두움 속에서 일어나야 한다. 그것이 곧 교회가 일어나는 것이며 교회가 승리하는 것이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역사(Kairos)가 세상의 역사(Kronos)를 통제 하기 때문이다.

크릭사이드 한인교회 김칠곤목사 www.thecreeksidechurch.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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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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