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호 목사(공주세광교회 담임)   ©공주세광교회, 한국기독교장로회

퇴선명령 - 선장

세월호 침몰사고 열흘이 넘었다. 매일 나오는 사고소식에 온 나라가 침울하다. 외신들은 세월호 침몰사건을 한국사태(Korean Crisis)라고 부른다고 한다. 단순한 해난사고가 아니라 사고와 구조활동, 그 두 가지 진행과정에서 벌어진 믿을 수 없는 비행과 무능이 인류가 오랜 세월동안 쌓아 온 가치체계와 시스템에 대한 신뢰에 타격을 가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카타르 도하에 본부를 두고 있는 알자지라방송은 한국을 가리켜 '리더쉽이 실종된 나라'라고 하였으며, 외신들은 사고 초기 약 두 시간이나 되는 탈출 및 구조 기회를 놓친 이유가 무엇인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런데 어른들은 대부분 구조되고 아이들은 대부분 구조되지 못했다는 슬픈 현실이다. 다 알다시피, 이 배의 운항직 승무원들은 15 명 전원이 사고가 나자마자 가장 먼저 탈출해서 100 퍼센트의 생존율을 보인 반면, 단원고 학생승객의 경우 325 명 중 248 명, 즉 76.3 퍼센트가 사망했거나 실종되어 아직도 구조되지 못하고 있다.

이 배의 운항직 승무원들을 비롯한 어른들은 두 시간 이상 주어진 골든타임 동안 해난사고 매뉴얼을 지키지도 않았고, 안내방송에 따르지도 않았다. 그들은 자기들이 판단하여 행동했다. 그 결과 그들은 살아남았다.

더욱이 선장이 선장이 아닌 척하고 가장 먼저 배를 버리고 탈출하였다. 죽음의 위기에 닥치면 아무도 장담할 수 없는 급박한 상황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자기 배 안에는 무려 470여 명의 소중한 생명이 있었다. 선장이 구호소에서 담요로 몸을 따뜻하게 감싸며 물에 젖은 5 만 원 짜리 지폐를 말리고 있는 동안에도, 부모들이 자기 아이의 생사조차 모른 채 차가운 바닥에서 떨고 있는 그 현장에 교육부장관이 와서 팔걸이의자에 떡하니 앉아 컵라면을 먹고 있는 동안에도, 안전행정부 국장급 감사관이라는 자가 사망자 명단이 걸려있는 상황실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다 실종자 가족들에게 들켜 봉변을 당하고 있는 동안에도, 수 백 명에 달하는 아이들을 포함한, 실종자들은 여전히 아무 도움을 받지 못한 채 차가운 바닷속에 갇혀 죽어가고 있었다. 선장이 퇴선명령만 했더라면....

부끄럽다. 두렵다. 위계질서, 순종, 인내, 어른존중..... 다 무시하고 나 살고 보자는 세상이 될까 걱정스럽다. 그래야 사니까(?).

그런데 필자는 세월호 얘기만 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다. 목사는 한 교회의 선장이고 이 사회의 지도자이다. 그런데 어떻게 해야 잘 사는 것인가? 자문하며 이 사태에 할 수 있는 일이 하나도 없어서 그저 무릎을 꿇는다.

오,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생존자가족, 실종자가족을 위로하소서. 위기를 맞은 한국교회와 대한민국을 불쌍히 여기소서.

필자가 선장으로 있는 세광교회와 한국교회는 지금 침몰의 위기에 서 있다. 우선 주변 여건으로 볼 때 농촌은 점점 피폐되고 있다. 게다가 교회는 점점 인원이 줄고 있는데다 지도자의 무능으로 전혀 새로운 것이 없다. 무능한 선장이지만 침몰 위기에 있다는 정황을 파악하고 퇴선명령을 내린다. 모두 살아남기 위해서 퇴선하라.

그렇지 않으면 함께 힘을 모아 침몰 위기에 있는 교회를 구해내자. 지난 주 전교인 사진을 찍었는데 맨 앞줄에 여섯 명의 동네 아이들이 앉아 있었다. 한 영혼은 천하보다 귀하고 이렇게 외진 시골에서 어린이 한 명은 일당 백이다. 한 교사의 헌신과 사랑으로 동네 아이들이 교회에 나와 함께 점심을 먹는 식구가 되었다. 교회에 나와서 함께 밥을 먹으면 식구이다. 손님은 밥을 먹지 않고 간다. 지나다가, 동네 친척집에 왔다가 들린 분들은 대부분 예배만 드리고 점심식사를 사양하고 그냥 간다.

오랫동안 바울여정 성지순례를 계획했었다. 기도 중에 조용히 내려놓는다. 그리고 침몰하는 '세광선'을 구하기 위해 있는 힘을 다하려고 한다. 성도님들의 기도와 협력을 구한다.

<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 제공>, 글ㅣ이상호 목사(공주세광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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