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목회포럼이 '종교개혁 496주년 기념포럼'을 11일 진행했다.   ©오상아 기자

교회력으로 496주년 종교개혁(1517년 10월31일)의 달을 기념해 미래목회포럼(대표 오정호)이 10일 오전 종로 연지동 한국기독교연합회관에서 '오늘의 교회개혁과 사회변혁'을 주제로 종교개혁 496주년 기념포럼을 개최했다.

포럼대표 오정호 목사(새로남교회 담임)는 "종교개혁의 달을 맞아 종교개혁자들의 개혁정신을 오늘에 되살리며, 한국교회의 개혁운동을 확산하기 원한다"고 포럼 취지를 밝혔다.

■ 교회 지도자들 '부패'…교회 '부패'로 연결 

'종교개혁과 한국교회 개혁'을 주제로 발표한 이상규 교수는 "16세기 개혁이 불가피했다고 말할 때 교회개혁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요인은 다양했지만 가장 중요한 원인은 교회의 부패였다. 교회가 부패했다는 말은 교회지도자들이 타락했다는 말이다"고 전했다.

그는 "중세교회의 부패와 타락 혹은 세속화를 가져온 두 가지 근본적 원인은 첫째는 교회와 교회 지도자들의 권력과의 야합, 곧 권력에 대한 지나친 야망이었고 또 하나는 물질에 대한 지나친 탐욕이었다"고 꼽았다.

"루이스 스피츠에 의하면 16세기 유럽 토지의 3분의 1은 교회의 소유이거나 교회의 통제 하에 있었다고 한다. 이외 교회는 각종 헌금제도로 수입을 올려 돈과 했다. 권력 때문에 8세, 11살짜리 아이가 추기경이 되기도 했다. 또 한 사람이 4개 도시의 대주교직을 독점하기도 했다. 소외 '겸직제도'와 '부재직임제'(absenteeism)가 정당시되고 합법화되어 성직자들의 사치와 탐욕이 가중되었다"

이 교수는 "이런 상황에서 유럽의 양심이라 불린 성 버나드(St. Bernard)는 교회나 성직자가 부를 통제할 신앙적 자제력이 없으면 차라리 가난해 지는 것이 낫다고 했다"며 "루터는 부(소유)는 분배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핍절된 이웃을 위해 분배되지 않는 제물은 '소유의 본질'을 상실한 것들로 규정했다"고 전했다.

그는 "칼빈은 빈곤에 가까운 청빈하고 검소한 생활을 했고, 가난과 부의 불균형을 제도적으로 제어하려고 한 바 있다"며 "한국교회를 개혁하는 최선의 길은 목회자의 의식이 달라지는 것이다. 그리스도인 지도자들이 검소하고 소박한 삶을 실천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 교수는 당시 '성직자들의 부패상'를 소개하며 "교황 보니페이스 8세(1294-1303)는 1300년 2월 22일 새로운 세기를 기념한다는 이름으로 소위 희년을 선포하고, 교황 칙령을 통해 "이 희년동안에 성 베드로와 성 바울 성당을 방문하는 모든 이들에게 모든 죄를 사해준다"고 선언했다"고 전하며 "공식 기록에 따르면 그의 교황 관저에는 48개의 루비, 72개의 사파이어, 45개의 에메랄드, 66개의 커다란 진주들이 박혀 있었다고 한다"고 전했다.

돈 만드는 천재로 알려진 요한 22세(1316-1334)는 각종 징세제도를 창안해 교회 질서를 극도로 문란하게 해 성직을 매매하고 면죄부를 판매했다. 또 종교개혁 진전의 교황 알렉산더 6세(1492-1503)은 그 이전의 교황들보다 더 심각해 교회의 관행과 규율을 무시하고 살았으며, 교황이 되기 전에도 3남 1녀를 두고 교황이 된 후에는 7명의 자녀를 더 얻었다. 이 교수는 1447-1517년 기간의 교황 중 절반이 사생아를 두었고 15세기 말 콘스탄츠교구의 경우 매년 약 1,500명의 사생아가 출생했다고 전했다.

이 교수는 "오늘 한국에도 노회, 총회가 지나치게 권력구조화 되었고 세속 정치계와 방불할 정도의 권력 구조가 엽관제도화(spoil system)되고 있다. 우리는 노회장, 총회장이라 하여 '장'이라는 교회 직분의 수위성을 말한다"고 지적하며 "영어에서는 그냥 중재하는 사람(moderator)이라고 부르고 있을 뿐이다"고 전했다.

■ 과다한 성직자 배출, 성직자의 지적·영적·도덕적 수준 저하

이 교수는"1500년 당시 유럽의 인구를 1억으로 본다면 성직자 수가 무려 5백만명에 달했고, 전 독일에 수도사들과 수녀들의 숫자는 무려 1백 50만명에 달했다. 독일 쾰른만 해도 무려 5000명의 사제들과 수도사들이 있었다"고 전했다.

그는 "성직자의 과다한 배출은 성직자의 지적, 영적, 도덕적 수준을 저하시켰고 이들을 상호 경쟁적으로 만들었다"며 "또한 성직자의 양산은 성직자들 간의 경제적 불균형을 불가피하게 만들었다. 어떤 성직자들은 어마어마한 부를 향유한 반면 다른 한편의 성직자들의 빈곤과 가난은 극에 달했다"고 전했다.

이 교수는 "오늘 한국교회의 보다 근원적인 문제와 문제의 소지도 따지고 보면 성직교육의 불균형과 과다한 성직자의 배출이라고 할 수 있다"며 "현재 한국의 성직자 수는 약 11만명으로, 한국의 전체 성직자의 10% 정도가 임지 없는 '비활동 인력'으로 알려져 있고 제가 속한 대한예수교장로회 고신의 경우에도 전체 목회자의 10%에 해당하는 180여명의 목회자들이 소명을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그는 "성직자의 과도한 배출은 분별없는 개척교회의 난립과 교회분열, 그리고 성직자간의 과도한 경쟁과 대립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며 "하나님 나라의 건설이라는 거룩한 소명보다는 자신의 생계를 위해 종교 활동에 참가하지 않으면 안될 만큼 교회 개척이 섭생의 수단으로 전락할 위험이 있다"고 전했다.

■ 교회개혁의 기초, 말씀·하나님 중심 사상 '회복'

이상규 교수는 "16세기에 일어난 종교개혁자들의 중요한 관심사는 말씀의 회복이었다. 이들은 교회갱신의 핵심을 말씀의 권위회복에 두었고 설교를 통해 이를 실현하고자 했다"며 "칼빈은 바른 말씀의 선포를 위해 청중도 올바로 들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청중은 설교의 바른 선포를 위해 파수군의 역할을 해야 한다고 보았다"고 했다.

또한 "종교개혁은 오도되고 변질된 신학과 교회로부터 성경 본래의 기독교로의 회복운동이었다. 그 근거와 출발점은 하나님의 말씀으로서의 성경이었다. 그동안 인간의 이성과 인간의 권위가 성경의 권위를 대신했으나 개혁자들은 성경만이 유일한 권위임을 천명했다. 이것이 바로 '성경 중심' 사상이다"고 덧붙였다.

개혁주의자들은 또한 "교황이 절대적일 수 없다는 점"을 말하고 '하나님 중심'이란 말을 했다. 이 교수는 "이 말은 인간이 중심일 수 없다는 것을 의미했다"며 "교황이 지상에서 그리스도를 대신하고, 사죄와 은혜의 수여자라는 당시 교회의 주장에 대한 비판이 바로 하나님 중심 사상이다"고 했다.

그는 "성경의 유일한 그리고 최종권위의 확인과 함께,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는다는 사실을 재확인한 것이 교회개혁 운동이 가져온 신학적 성취였다"고 강조했다.

■ 종교개혁, 성·속 이원론 극복

나아가 이상규 교수는 "종교개혁은 교회와 신학의 갱신뿐만 아니라 사회를 포함한 인간의 삶의 전 영역에 대한 개혁운동으로 확장되었다 이 점에 있어서는 루터보다 칼빈의 기여가 컸다"고 보았다.

"트릴취(Emest Troeltsch, 1865-1923)는 칼빈주의자들은 어느 곳에서나 사회전체의 삶을 계획적으로 구축하고자 하는 노력과 일종의 '기독교 사회주의'에 대한 시도가 있었다....칼빈주의는 교회가 삶의 모든 부분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원칙을 세워 놓았고, 루터교처럼 종교적인 요소와 비종교적인 요소를 분리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로마 천주교처럼 몇몇 기관을 세워 두고 간접적으로 참여하는 방식을 취하지도 않았다. 칼빈주의자들은 사회를 성속 이원론에 따라 분리하여 이분화 하지 않았고 사회와 그 제도를 절대적인 어떤 것으로 보지도 않았다"

이 교수는 "성, 속 이원론은 영역분리를 조장할 뿐만 아니라 두 영역에서 각기 다른 방식의 삶과 행동양식을 갖게 해준다"며 "종교행위를 단순히 주일예배와 이와 관련된 행위로만 제한하게 한다. 또한 세속적 영역에 대한 의무와 책임을 다할 수 없게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중세적 세계관은 우주와 사회를 위계체계적인 존재의 사슬로 보는 것이었다. 그러나 종교개혁을 거치면서 사회조직은 하나님이 세우신 절대불변의 구조로 보지 않았다. 사회를 절대불변의 구조로 보지 않는다는 말은 사회는 타락했고, 타락할 수 있다는 인식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한국교회는 개혁주의를 말하면서도 사실은 근본주의적 성향이 짙었다. 사회현실에 대해 무관심했고, 문화적 소명에 대해 바로 인식하지 못했다"며 "그 동안 한국교회는 '성장'이라는 한 가지 이유만으로 국내외적으로 긍정적인 평가를 받아 왔으나 건실한 신학과 윤리적 측면들은 무시되어 왔다. 건실한 신학이 없거나 신학이 잘못되면 모든 것이 잘못된다. 한국교회는 '신학 없는 교회' 혹은 '교회 없는 신학'을 추구하는 양극단이 있어 왔다"고 꼬집었다.

그는 "종교개혁은 16세기의 역사적 사건으로만 이해될 수는 없다. 데오도 베자가 말했듯이 '교회는 개혁되었으므로 항상 개혁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외 이날은 임희국 교수(장로회신학대학교, 교회사)는 '교회와 사회를 혁한 16세기 스위스 취리히 종교개혁'을 주제로, 김성건 교수(서원대학교, 한국종교사회학회)는 '종교개혁과 종교의 사회적 역할'을 주제로 발표했다. 이날 논찬은 이윤재 목사(한신교회 담임)정종훈 교수(연세대)가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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