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크리스천포스트(CP)는 기독교 변증가이자 작가인 로빈 슈마허의 기고글인 "우리가 모를 수 없는 것들에 관한 진실"(The truth about things we can’t not know)을 8월 31일(현지시각) 게재했다.
기독교 변증가로 활동하고 있는 슈마허는 작가로도 활동하면서 많은 책을 냈고 미국 내의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있다. 다음은 기고글 전문.
최근 영국 정부가 망명 신청자들을 대상으로 공공장소에서의 존중, 성관계와 동의, 양성평등, 그리고 영국의 법과 사회적 규범 등을 설명하는 안내 자료를 배포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BBC 보도에 따르면 이 자료는 9페이지 분량의 온라인 안내서로, 영국에서 적용되는 법과 관습이 일부 입국자의 출신국과 어떻게 다를 수 있는지를 설명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에 영국 개혁당(Reform UK)의 내무 담당 대변인 지아 유수프(Zia Yusuf)는 소셜미디어 영상을 통해 강하게 반발했다. 그는 성폭력과 아동 대상 범죄, 여성 폭력과 같은 행위가 잘못이라는 사실까지 정부가 별도의 안내서를 통해 설명해야 한다는 현실 자체가 납득하기 어렵다는 취지로 비판했다.
정치평론가 브렌단 오닐(Brendan O'Neill) 역시 비슷한 문제를 제기했다. 일부 입국자에게 성폭력이나 여성 대상 폭력이 잘못이라는 기초적인 규범까지 별도로 설명해야 한다면, 그것은 단순한 문화적 차이의 문제가 아니라 훨씬 근본적인 도덕적 질문을 제기한다고 지적했다.
물론 성폭력이나 아동 대상 범죄를 저지른 개인은 출신이나 신분과 관계없이 법에 따라 엄정하게 책임을 져야 한다. 문제의 핵심은 특정 이민자 집단 전체를 범죄와 동일시하는 데 있지 않다. 오히려 더욱 근본적인 질문은 이것이다. 인간은 정말로 강간과 폭력 같은 행위가 잘못이라는 사실을 누군가에게 배워야만 비로소 알게 되는 것일까.
이 질문은 생각보다 중요하다. 최근 배우 헤이든 파네티어(Hayden Panettiere)가 과거 연인 브라이언 히커슨(Brian Hickerson)에게 당한 학대 경험을 공개한 뒤, 히커슨은 한 인터뷰에서 자신이 성장하면서 가정폭력이 무엇인지 제대로 배운 적이 없다고 말했다. 어릴 때 그것을 배웠다면 자신이 저질렀던 행동을 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취지였다.
그러나 이런 설명만으로 도덕적 책임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성경과 인간의 경험은 우리가 어떤 도덕적 진리를 외면하거나 합리화하고 심지어 부정할 수는 있어도, 그 모든 것을 전혀 알지 못한다고 말하기는 어렵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옳고 그름에 대한 기본적인 앎
물론 이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어떤 도덕적 진리가 인간의 본성에 깊이 새겨져 있어, 그것을 억압하거나 합리화하고 재정의하거나 부인하려 해도 완전히 벗어날 수 없다는 생각, 즉 자연법의 개념 자체를 받아들이지 않는 이들도 많다.
예를 들어 철학자 존 로크(John Locke)는 인간이 선천적인 관념 없이 태어난다고 보았다. 인간의 지식과 개념은 감각적 경험과 환경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형성된다고 주장했다. 반면 프리드리히 니체(Friedrich Nietzsche)는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도덕 가치에 대해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인간은 사회와 가족, 문화와 교육을 통해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배우는 존재다. 실제로 심각한 학대 속에서 성장한 사람은 왜곡된 관계와 폭력을 정상적인 것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부모 역시 자녀에게 끊임없이 옳고 그름을 가르쳐야 한다.
성경 또한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반복해서 가르치며,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십계명을 비롯한 율법을 주셨다. 그렇다면 인간이 이미 선과 악을 본성적으로 알고 있다면 왜 이런 도덕 교육이 필요할까.
그 이유는 도덕적 지식을 갖는 것과 그 지식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훈련하며 적용하는 것이 서로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아이에게 양심이 있다고 해서 그 양심이 자동으로 완전하게 작동하는 것은 아니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에 대한 기본적인 감각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을 어떻게 이해하고 판단하며 일관되게 적용해야 하는지는 배워야 한다. 따라서 도덕 교육은 필요하다. 그러나 도덕 교육이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인간의 도덕성을 새롭게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성경도 시내산에서 율법이 주어지기 이전부터 인간에게 도덕적 책임이 있었다고 묘사한다. 모세가 등장하기 훨씬 전, 가인은 동생 아벨을 죽인 일에 대해 하나님 앞에서 책임을 져야 했다.
바울은 로마서에서 이 문제를 더욱 분명하게 설명한다: “율법 없는 이방인이 본성으로 율법의 일을 행할 때에는 이 사람은 율법이 없어도 자기가 자기에게 율법이 되나니 이런 이들은 그 양심이 증거가 되어 그 생각들이 서로 혹은 고발하며 혹은 변명하여 그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를 나타내느니라.”(롬 2:14-15)
기독교적 관점에서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됐다는 것은 인간에게 단순한 지적 능력만 주어졌다는 의미가 아니다. 인간은 도덕적 존재이며, 옳고 그름에 반응하는 양심을 가진 존재라는 뜻도 포함한다.
도덕적 지식과 도덕의 근거는 다르다
기독교 변증가 폴 코판(Paul Copan)은 이 문제를 설명하면서 윤리적 가치를 어떻게 알게 되는가라는 ‘인식론’의 문제와, 윤리적 가치가 무엇에 근거하는가라는 ‘존재론’의 문제를 구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는 무신론자였다가 기독교인이 된 철학자 J. 버지제프스키(J. Budziszewski)가 그의 저서 『우리가 모를 수 없는 것들(What We Can't Not Know)』에서 전개한 핵심 주장과도 맞닿아 있다.
버지제프스키는 인간이 자신 안에 존재하는 도덕적 지식을 지적으로 부정하거나 심리적으로 억압할 수 있다고 말한다. 문화적으로 합리화하거나 개인적으로 위반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가장 근본적인 도덕 원칙에 대해 “전혀 몰랐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양심에 대해 인간이 공정해야 한다는 기본적인 요구를 단순히 타인에게 들어서만 아는 것은 아니라고 설명한다. 오감을 통해 처음 발견하거나 복잡한 논리적 추론 끝에 도달하는 것도 아니다. 인간은 어떤 기본적인 도덕적 의무를 직관적으로 인식한다는 것이다.
그에게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이해하는 것은 이런 현상을 설명하는 중요한 출발점이다.
그렇다고 모든 사람이 모든 도덕적 문제에 대해 완벽하고 세밀한 지식을 선천적으로 갖고 있다는 뜻은 아니다. 인간은 근본적인 도덕 원칙을 알면서도 그것을 실제 상황에 적용하는 과정에서 얼마든지 왜곡될 수 있다. 문화와 교육, 개인적 욕망과 자기기만 역시 그 판단을 흐릴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이 하나 있다. 무엇이 잘못인지 알고 있다는 사실이 그것을 저지르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다.
인간은 모르기 때문에만 악을 행하는가
버지제프스키는 인간의 도덕적 상태를 두 개의 보편성이 충돌하는 모습으로 설명한다. 하나는 인간 안에 존재하는 보편적인 도덕적 지식이고, 다른 하나는 자신에게 불편한 도덕적 요구를 피하고 싶어 하는 보편적인 욕망이다.
기독교적으로 말하면 첫 번째는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됐다는 사실과 연결되고, 두 번째는 인간이 타락한 존재라는 사실과 연결된다. 이 구분은 중요하다.
악행이 존재한다고 해서 인간에게 보편적인 도덕적 지식이 없다는 결론이 자동으로 따라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사람은 어떤 행동이 잘못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자신의 욕망을 위해 그것을 합리화하거나 정당화할 수 있다.
우리는 일상에서도 이런 모습을 쉽게 발견한다. 사람은 자신의 행동이 잘못이라는 사실을 전혀 모르기 때문에 거짓말하는 경우만 있는 것이 아니다. 거짓말이 잘못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거짓말할 수 있다. 도둑질이나 폭력 역시 마찬가지다.
성폭력과 가정폭력 같은 심각한 범죄 역시 단순히 “배우지 못했다”는 설명만으로 도덕적 책임을 없앨 수는 없다. 성장 환경과 문화가 사람의 판단과 행동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과, 그것을 이유로 모든 도덕적 책임을 면제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또한 이런 원칙은 출신 국가나 문화, 종교와 관계없이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적용돼야 한다. 성폭력은 가해자가 이민자이든 자국민이든 동일하게 잘못이며, 피해자의 존엄과 안전 역시 동일하게 보호돼야 한다.
양심은 교육되어야 하지만 창조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교육은 필요 없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오히려 인간에게 양심이 있기 때문에 올바른 도덕 교육은 더욱 중요하다. 양심은 훈련될 수 있고 무뎌질 수도 있으며, 잘못된 문화와 반복적인 죄에 의해 왜곡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성경은 인간이 옳은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진리를 억누를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가정과 교회, 학교와 사회는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분명하게 가르쳐야 한다. 특히 동의와 폭력, 타인의 신체와 존엄, 어린이와 취약한 사람을 보호해야 할 책임 등에 대해서는 조금의 모호함도 없어야 한다.
그러나 이런 교육의 목적은 인간에게 처음으로 “폭력은 잘못”이라는 도덕성을 만들어 넣는 데 있지 않다. 이미 존재하는 양심을 깨우고, 그것이 진실을 더욱 분명하게 인식하며 올바르게 행동하도록 훈련하는 데 있다.
이 차이를 놓치면 인간의 악을 지나치게 단순하게 설명하게 된다. 모든 잘못을 무지나 교육 부족의 문제로 돌리면 인간에게 있는 자기기만과 욕망, 책임이라는 문제를 제대로 설명할 수 없게 된다.
기독교는 인간의 문제를 단순한 정보 부족으로 보지 않는다. 인간은 때로 무엇이 옳은지 모르기 때문에 잘못하지만, 때로는 옳은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에 잘못한다.
바로 이것이 자연법과 양심에 관한 논의가 중요한 이유다.
우리에게는 배워야 할 것이 분명히 많다. 양심은 교육과 훈련을 필요로 하며, 문화적 차이에 대한 설명도 필요하다. 그러나 동시에 인간에게는 누군가가 처음부터 새롭게 가르쳐주지 않아도 인식할 수 있는 기본적인 도덕적 진리가 있다는 사실 역시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사람을 강간해서는 안 된다. 어린이를 학대해서는 안 된다. 약자를 폭력으로 짓밟아서는 안 된다. 타인을 자신의 욕망을 위한 도구로 취급해서는 안 된다.
이런 기본적인 진실을 인간은 완벽하게 따르지 못할 수 있다. 억누르거나 합리화하고 심지어 거스르며 살아갈 수도 있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문제는 단순히 우리가 무엇을 ‘모르는가’에만 있지 않다. 때로 더 깊은 문제는,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것을 어떻게 외면하고 있는가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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