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6장 6–7절에서 바울은 그리스도인의 과거와 현재를 분명하게 구분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의 옛사람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다. 죄의 지배 아래 살며 죄에게 종노릇하던 이전의 삶은 이미 끝났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새로운 삶은 이 사실을 깨닫는 데서 시작된다.
옛사람이 죽었다는 것은 우리의 존재가 사라졌다는 뜻이 아니다. 죄를 주인으로 섬기며 살아가던 옛 신분과 관계가 끝났다는 의미다. 과거에는 죄가 우리에게 명령했고, 우리는 그 명령을 거부할 힘이 없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죄가 우리를 지배할 권리를 잃었다. 우리는 더 이상 죄에게 속한 사람이 아니다.
바울은 옛사람이 십자가에 못 박힌 목적을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라고 설명한다. 복음은 죄의 형벌만 면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죄의 권세에서도 해방한다. 예수께서 우리의 죄를 담당하셨을 뿐 아니라, 죄가 우리를 얽어매던 사슬까지 끊으셨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죄를 거절하고 하나님께 순종할 수 있는 새로운 자유를 얻었다.
이것은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를 건넌 사건과 같다.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를 건너자 그들을 뒤쫓던 애굽의 병거는 바다에 잠겼다. 종살이하던 애굽은 더 이상 그들의 자리가 아니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은 죄의 나라에서 건짐을 받아 새로운 자리로 옮겨진 사람이다. 과거의 주인이었던 죄는 더 이상 우리를 소유할 수 없다.
그럼에도 구원받은 사람은 살아가는 동안 넘어질 수 있다. 죄의 유혹을 받고, 잘못된 선택을 하며, 자신의 연약함 때문에 낙심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구원받기 이전의 삶과 같지 않다. 이전에는 죄의 종으로서 죄의 지배 아래 살았지만, 이제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남아 있는 죄의 습관과 싸운다. 이 차이를 분명히 아는 것이 중요하다.
칭의와 성화를 혼동하면 신앙은 쉽게 흔들린다. 칭의는 그리스도의 은혜로 단번에 일어난 신분의 변화다. 하나님께서는 믿는 자를 의롭다고 선언하시고 죄의 권세에서 해방하셨다. 성화는 의롭다 하심을 받은 사람이 날마다 죄의 습관을 버리고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과정이다. 성화의 길에서 넘어졌다고 해서 칭의의 은혜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사탄은 우리가 실패할 때마다 “너는 아직도 죄의 종이다.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고 속인다. 그러나 복음은 “너의 옛사람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다”고 선언한다. 우리는 자신의 감정이나 현재의 연약함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더 굳게 붙들어야 한다. 죄가 유혹할 수는 있지만 더 이상 우리의 주인이 될 수는 없다.
바울은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다”고 말한다. 죽음은 이전의 지배 관계를 끝낸다.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사람은 죄의 요구에 더 이상 빚진 자가 아니다. 죄가 우리를 고발하고 정죄하려 해도, 그리스도께서 이미 죄의 값을 치르셨기에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하심을 받은 자로 서게 된다.
예수님께서 나면서부터 맹인 된 사람을 바라보신 시선도 이 복음의 방향을 보여준다. 사람들은 그의 고통이 누구의 죄 때문인지 과거의 원인을 찾으려 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에게서 장차 나타날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셨다. 주님의 관심은 그를 과거의 비극에 묶어두는 데 있지 않고, 그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일을 나타내는 데 있었다.
우리도 자신의 부족함과 실패를 보며 과거에 묶일 때가 있다. 왜 이런 모습으로 태어났는지, 왜 그런 잘못을 저질렀는지, 왜 아직도 연약한지를 생각하며 자신을 정죄한다. 그러나 그리스도교 신앙은 우리를 과거의 죄와 상처에 가두지 않는다. 하나님은 우리의 연약함까지 사용하여 장차 더 큰 영광을 나타내신다.
오늘의 말씀은 우리에게 묻는다. 우리는 여전히 자신을 죄의 종으로 여기고 있지는 않은가. 이미 끊어진 사슬을 다시 붙들고 과거의 죄책과 실패 속에 머물러 있지는 않은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옛사람은 이미 죽었고, 우리는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받은 사람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새로운 신분에 맞는 삶을 살아야 한다. 죄의 명령에 끌려가지 말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의의 길을 선택해야 한다. 넘어질 때에도 자신을 정죄하며 주저앉지 말고 다시 일어나야 한다. 우리의 과거보다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더 크며, 우리의 연약함보다 하나님께서 장차 나타내실 영광이 더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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