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크리스천포스트(CP)는 마크 크리치 목사의 기고글인 "미국은 기독교 국가였던 적이 없었을까? 한 목사의 주장과 그 반박"Was America ever a Christian nation? One pastor says no — here's why he's wrong) 7월 11일(현지시각) 게재했다.
마크 H. 크리치 목사(Rev. Mark H. Creech)는 노스캐롤라이나 기독교행동연맹(Christian Action League of North Carolina, Inc.)의 사무총장이다. 그는 이 직책을 맡기 전에 20년 동안 목회자로 사역했으며, 노스캐롤라이나에서 다섯 곳의 남침례교회와 뉴욕주 북부에서 한 곳의 독립침례교회를 섬겼다. 다음은 기고글 전문.
로랜 리빙스턴(Loran Livingston) 목사는 결코 무명의 목회자가 아니다. 그는 노스캐롤라이나주 샬럿에 위치한 센트럴 교회(Central Church)에서 40년 이상 헌신해 온 오랜 목회자다. 그렇기에 그의 최근 발언은 더욱 중대한 의미를 지닌다.
그만한 경험과 영향력을 가진 목회자가 "미국은 과거에도, 현재에도 기독교 국가가 아니었으며, 앞으로도 결코 그럴 수 없다"고 선언한다면, 그 말에는 묵직한 무게가 실리기 마련이다. 동시에 그 발언은 신중한 검토를 요구한다.
리빙스턴 목사는 최근 미국이 저지른 수많은 죄악들을 근거로 미국을 기독교 국가라 부르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그는 아메리카 원주민 학살과 강제 이주, 노예제도의 악행, 남북전쟁의 대학살, 태아 살해(낙태), 성별에 대한 혼란, 아동의 신체 훼손, 동성 결합의 조장 등을 그 증거로 제시했다.
그가 규탄한 내용의 상당수는 마땅히 비판받아야 한다. 어떤 기독교인도 원주민 학대, 노예제, 낙태, 성적 혼란, 혹은 결혼의 재정의를 옹호해서는 안 된다. 이것들은 결코 가벼운 문제가 아니다. 명백하고 심각한 국가적 죄악이다.
하지만 리빙스턴 목사가 제시한 근거들이 곧바로 그의 결론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물론 그는 경건한 사람들이 종교의 자유를 찾아 이 땅에 왔고, 위대한 성경 설교자들이 미국의 강단에서 우렁차게 말씀을 선포했으며, 이 나라를 세우는 데 일조한 이들 중 일부가 참으로 경건했다는 사실은 인정했다. "그러나" 그는 이렇게 결론지었다. "미국은 결코 기독교 국가였던 적이 없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이 말은 대담하게, 심지어 예언자적으로 들릴지 모른다. 그러나 이는 정작 진지한 기독교인들 대다수가 주장하지도 않는 논리를 애써 반박하려 드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생각 있는 기독교인들이 미국을 '기독교 국가'라고 부를 때, 그것은 '미국'이라는 국가 자체가 곧 '교회'라는 뜻이 아니다. 모든 미국인이 구원을 받았다거나, 건국 주역들이 모두 정통 신앙인이었다거나, 모든 법이 의롭고 모든 전쟁이 정당했으며, 모든 공적 행위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다는 뜻도 아니다. 오직 개인만이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받을 수 있다. 미국은 하나님 나라가 아니다.
그러나 그것이 이 문제의 본질은 아니다. 진짜 핵심 질문은 '미국의 건국 이념, 도덕적 전제, 법적 전통, 자유에 대한 이해, 그리고 인권의 개념이 기독교에 의해 지대한 영향을 받았는가' 하는 점이다. 이 부분에 있어서는 역사적 기록이 차고 넘친다.
미국 독립선언서는 "자연의 법칙과 자연의 하나님"에 호소하고, 인간은 "창조주로부터" 양도할 수 없는 특정한 권리를 부여받았다고 단언하며, "세계의 최고 심판자"에게 호소하고, "신성한 섭리의 보호에 대한 굳건한 의지"로 끝을 맺는다.
이러한 문구들이 독립선언서를 교회의 신앙 고백서로 만드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는 미국의 건국이 세속적이거나 무신론적이거나 종교적으로 중립적이지 않았음을 명백히 보여준다. 권리는 정부가 주는 선물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선물로 여겨졌다. 정부는 도덕적 권위의 원천이 아니었으며, 더 높은 권위에 책임을 져야 하는 존재였다.
이러한 이해는 보수적 기독교인들이 최근에 꾸며낸 것이 아니다. 1892년 미국 대법원은 '성삼위 교회 대 미국(Church of the Holy Trinity v. United States)' 사건에서 이러한 역사적 현실을 인정했다. 미국인의 삶 속에 나타난 하나님과 기독교에 대한 수많은 공적 인정 사례들을 검토한 후, 대법원은 이러한 선언들이 "이곳이 기독교 국가라는 유기적인 발언들의 총체"에 기여했다고 결론 내렸다.
당시 대법원의 이 성명은 오늘날 많은 기독교인들이 염두에 두는 의미와 정확히 일치한다. 즉, 미국의 법, 관습, 제도, 그리고 도덕적 전제가 기독교에 의해 깊이 형성되었다는 것이다.
리빙스턴 목사는 마치 미국의 죄악들이 그 기독교적 유산을 완전히 지워버린 것처럼 지적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그 죄악들은 단지 이 나라가 얼마나 자주 그 유산을 배반해 왔는지를 폭로할 뿐이다.
한 국가가 위대한 신앙의 빛을 소유하고서도 여전히 그 빛에 반역할 수 있다. 성경 속 이스라엘은 우상을 숭배하고, 가난한 자를 억압하며, 무고한 피를 흘리고, 선지자들을 배척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이스라엘의 죄를 정죄하면서도 동시에 그들의 신앙적(언약적) 정체성은 인정했다.
미국이 기독교적 원칙을 고수했기 때문에 이루어낸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선한 일들은 외면한 채, 이 나라의 죄악에 대해서만 말해서도 안 된다. 그러한 원칙들의 영향 아래, 미국은 인간의 존엄성, 도덕적 책임, 질서 있는 자유, 자선 봉사, 교육, 병원, 고아 돌봄, 교도소 개혁, 노예제 폐지 운동, 민권 운동, 그리고 가난하고 중독되고 굶주리고 병들고 소외된 자들을 위한 수많은 사역을 발전시키는 데 기여했다. 미국은 스스로의 이상에 미치지 못할 때가 많았지만, 그 이상에 도덕적 실체를 부여한 기독교적 진리에 가장 가깝게 살았을 때 미국은 자국민뿐 아니라 전 세계에 축복이 되었다.
故 D. 제임스 케네디(D. James Kennedy) 박사와 제리 뉴컴(Jerry Newcombe)은 그들의 저서 『성경이 쓰이지 않았다면(What If the Bible Had Never Been Written?)』에서 미국이 기독교 국가라거나 한때 그랬다고 주장하는 것이 이제는 일종의 "도발적인 언사(fighting words)"가 되어버렸다고 관찰했다. 그들은 기독교인들에 의해 이토록 깊이 빚어진 나라에서 이제 신자들이 수세에 몰려 있는 현실의 아이러니를 지적했다. 그들은 미국 내에서 기독교를 공격하는 세속주의자들을 가리켜 *"기독교인들의 피와 땀으로 세워진 거대한 피라미드 꼭대기에 서서, 배은망덕하게도 그들의 후손을 향해 돌을 던지는 자들"*과 같다고 썼다.
참으로 강력한 비유다. 하지만 우리의 기독교 형제 중 한 명이, 아무리 의도치 않았다 해도 이와 비슷한 해악을 끼치는 주장을 되풀이할 때 그 슬픔은 훨씬 더 크다. 리빙스턴 목사가 세속주의를 돕고자 하는 의도는 결코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그의 주장은 미국을 신앙적 닻(정박지)과 다시 연결하기 위해 수고하는 수많은 신실한 기독교인들의 희생을 약화시킨다. 리빙스턴과 같은 설교자들과 우리 모두가 정부의 보복을 두려워하지 않고 강단에 서서 성경을 펴고 복음을 선포할 자유를 누리는 이유의 일부가 바로 그 '신앙적 닻' 덕분이다. 또한 그 닻이야말로 오늘날 세속 세력들이 지워버리기 위해 끊임없이 공작하는 대상이기도 하다.
리빙스턴 목사의 주장이 우려스러운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의 주장은 결과적으로 기독교인들에게 '우리가 돌아갈 곳은 아무것도 없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미국이 기독교에 의해 의미 있게 형성된 적도, 기독교적 도덕의 기반을 가진 적도 없으며, 역사적 혹은 문화적 관점에서 기독교적이라고 묘사할 정당성조차 없다는 뜻이 되기 때문이다.
그것은 결코 사실이 아니다. 진지한 기독교인라면 누구도 미국이 통째로 '구속받은 국가'라거나 시민권이 곧 구원과 같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논쟁의 핵심은 미국이 항상 하나님께 순종했느냐가 아니다. 당연히 그렇지 않았다. 미국의 역사에 끔찍한 죄악들이 포함되어 있는지 여부도 논쟁거리가 아니다. 분명히 존재한다.
진짜 논쟁은 '미국의 건국 이념이 하나님, 인간, 법, 자유, 정의에 대한 기독교적 이해에서 비롯된 도덕적 질서에 뿌리를 두고 있는가'이다. 그리고 분명히 그러했다.
리빙스턴 목사가 지적한 바로 그 죄악들조차, 수시로 변하는 인간의 얄팍한 의견보다 '더 높은 기준'에 의해서만 올바르게 심판받을 수 있다. 왜 노예제는 잘못되었는가? 왜 낙태는 악한가? 왜 아동의 신체 훼손은 사악한가? 왜 결혼은 문화가 마음대로 정의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왜 가난한 자, 참전 용사, 태아, 이방인, 약자가 존엄하게 대우받아야 하는가? 세속 정부는 왜 무고한 자를 보호하고 악행을 벌하며 도덕적 한계를 인정해야만 하는가?
대답은 명확하다. 하늘에 공의로우신 하나님이 계시고, 인간은 그분의 형상대로 창조되었으며, 그분의 법이 의롭고, 어떤 정부도 하나님이 세우신 것을 재정의할 권위가 없기 때문이다.
물론 미국이 애국심으로 구원받는 것은 아니다. 미국에는 복음이 필요하다. 미국인들은 회개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들은 여전히 하나님 앞에 책임이 있으며 그분에 의해 심판받을 것이다. 국가는 의를 존중할 때 번영을 기대할 수 있고, 악을 찬양할 때 멸망을 피할 수 없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한다. "공의는 나라를 영화롭게 하고 죄는 백성을 욕되게 하느니라" (잠언 14:34). 이 구절은 의가 오직 '교회'만을 영화롭게 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의는 '나라'를 영화롭게 한다고 명시한다. 그 어떤 국가든 말이다. 그리고 죄는 어떤 백성에게든 수치가 된다.
그러므로 기독교인들은 낙심하여 미국을 다시 진리로 부르는 노력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최근 몇 년 동안, 기독교인들의 오랜 정치적 옹호 활동 끝에 빼앗겼던 예전의 진지들을 다시 탈환해 냈다. 여전히 해야 할 일이 많다.
단지 미국이 기독교적 유산에 반하여 자주 죄를 지었다는 이유만으로, 미국에 기독교적 유산이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심각한 오류다. 미국의 죄악들은 오히려 미국이 수시로 배반했던 바로 그 진리, 즉 국가에 최고의 이상을 제공했던 '그 기독교적 진리'로 처절하게 되돌아가야 함을 증명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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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아동푸른센터 박은주 센터장, 엔젤스헤이븐 조준호 대표, 롯홈 박재홍 전략지원본부장, 구세군 한세종 서기장관, 홍봉식 커뮤니케이션스국장](https://images.christiandaily.co.kr/data/images/full/148982/image.jpeg?w=250&h=154&l=50&t=4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