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정치권에서 감독과 축구협회 관계자들을 국회 청문회에 세우려는 움직임은 많은 국민에게 또 다른 생각거리를 던져 주고 있다. 물론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한 검증과 제도 개선을 위한 시도는 꼭 필요하다. 동시에 공적 기관과 공공성이 강한 단체는 국민의 비판과 감시를 겸허히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나 혹여 청문회가 국민의 실망과 분노를 정치적 공방의 소재로 삼거나 여론을 의식한 보여주기식 행사로 변질된다면, 그것은 국가의 품격을 높이는 길이 아니라 정치에 대한 불신만 키우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민주주의는 국민이 책임을 묻는 제도이지만, 동시에 절제와 균형을 요구하는 정치 질서이기도 하다. 모든 실패를 정치의 영역으로 끌어들이는 것은 민주주의의 성숙이라기보다 정치의 과잉으로 보일 수 있다. 말하자면, 정치가 국민의 감정을 확대 재생산하는 데 머물러서는 안 된다. 감정을 제도로 승화시키고, 비판을 개혁으로 연결하는 것이 성숙한 정치의 모습이다. 국회는 헌법이 부여한 막중한 사명을 가진 기관이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고, 민생경제를 회복하며, 청년의 미래를 준비하고, 저출생과 고령화, 안보와 교육, 지역 균형발전과 같은 국가적 과제를 해결하는 데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스포츠 행정의 문제 역시 철저히 점검해야 하지만, 국가적 현안의 우선순위를 잃어버려서는 안 된다. 정치는 국민의 관심이 큰 곳으로만 향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의 삶이 어려운 곳을 먼저 살펴야 한다.
성경은 공동체의 책임을 매우 분명하게 말씀한다. 사도 바울은 "각 사람이 자기 일을 살피라"(갈라디아서 6:4)고 권면하였으며, 또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로마서 12:18)고 말씀하였다. 책임은 상대를 정죄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역할을 다하는 데 있으며, 공동체의 목적은 갈등을 확대하는 것이 아니라 회복과 화해를 이루는 데 있다.
존 웨슬리 역시 정의와 사랑은 함께 가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그는 죄를 분명히 책망했지만 사람을 포기하지 않았다. 잘못은 바로잡되 공동체를 세우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믿었다. 정의는 분노를 키우는 수단이 아니라 공동체를 회복시키는 힘이어야 한다는 그의 가르침은 오늘의 우리 사회에도 깊은 울림을 준다. 윈스턴 처칠은 "성공은 끝이 아니며 실패는 치명적인 것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계속 나아갈 용기이다."라고 말했다. 스포츠도 마찬가지이다. 실패는 비난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도약의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한국 축구는 이번 실패를 계기로 선수 육성 시스템과 지도자 선임 과정, 협회의 운영과 행정을 냉정하게 평가하고 과감하게 혁신해야 한다. 그것이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는 길이다. 독일의 신학자 디트리히 본회퍼는 "책임은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증명된다."고 말했다. 오늘 우리 사회는 비판의 목소리는 넘쳐나지만 책임지는 모습은 쉽게 찾아보기 어렵다. 스포츠도, 정치도, 교회도 상대를 비난하는 데 머물 것이 아니라 공동체를 더 건강하게 만드는 책임을 실천함으로 증명해야 한다.
오늘 대한민국은 갈등이 너무 쉽게 정치화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모든 갈등을 정치의 무대로 가져오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스포츠는 공정한 경쟁과 실력으로 평가받아야 하고, 정치는 국민의 삶과 국가의 미래를 위한 책임 있는 결단으로 평가받아야 한다. 서로의 영역을 존중하면서도 각자의 책임을 다할 때 우리 사회는 더욱 건강해질 수 있다.
월드컵의 실패는 끝이 아니라 새로운 출발이어야 한다. 이번 경험을 통해 한국 축구는 더욱 투명하고 경쟁력 있는 시스템을 갖추어야 하며, 정치는 국민의 감정을 이용하는 정치를 넘어 국민에게 희망과 비전을 제시하는 정치로 나아가야 한다.
성숙한 국가는 실패를 숨기는 나라가 아니라 실패를 통해 배우는 나라이다. 성숙한 정치는 분노를 자극하는 정치가 아니라 국민들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공정을 보여주는 정치이며, 성숙한 지도자는 국민의 감정을 이용하는 사람이 아니라 국민에게 희망을 보여 주는 사람이다. 이번 월드컵의 아쉬움이 한국 축구의 경쟁력을 높이는 계기가 되고, 우리 정치 또한 절제와 책임, 그리고 품격을 회복하는 전환점이 되기를 기대한다. 그것이 국민이 바라는 진정한 개혁이며, 대한민국이 더욱 성숙한 민주국가로 나아가는 길일 것이다.
양기성 교수(Ph.D., Hon. Th.D.)
서울신학대학교 교회행정학 특임교수
웨슬리언교회지도자협의회 대표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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