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인권단체 앰네스티 인터내셔널(Amnesty International)이 영국의 기독교 및 생명운동 단체들을 ‘반(反)인권(anti-rights)’ 단체로 규정한 보고서를 발표했다가 거센 비판에 직면하면서 해당 보고서를 일시적으로 철회했다.
영국 크리스천투데이(CT)에 따르면, 앰네스티는 최근 발표한 ‘커져가는 위협: 영국의 반인권 운동(A growing threat: the anti-rights movement in the UK)’ 보고서에서 다수의 시민사회 단체들이 “여성과 성소수자(LGBT+)의 권리를 후퇴시키기 위해 서로 협력하는 광범위한 ‘반인권 생태계’의 일부”라고 주장했다.
보고서는 이들 단체가 “도덕적 공포를 조장하고 소수자와 사회적 약자에 대한 두려움을 확대하거나 증폭시키고 있다”고 평가했다.
또한 각 단체를 주요 활동 분야에 따라 분류했으며, 일부 단체는 낙태와 성전환, 교육 등 여러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보고서에는 크리스천 인스티튜트(The Christian Institute)를 비롯해 영국복음주의연맹(Evangelical Alliance), 크리스천 컨선(Christian Concern), 잉글랜드·웨일스 가톨릭주교회의(Catholic Bishops' Conference of England and Wales), 기독의사회(Christian Medical Fellowship), 태아생명보호협회(Society for the Protection of Unborn Children·SPUC), 기독교인 국회의원 모임(Christians in Parliament), CARE(Christian Action, Research and Education), 프리미어(Premier), 생명윤리개혁센터 영국지부(CBR UK), 자유수호연맹 영국지부(ADF UK), 빌리그래함복음전도협회 영국지부(Billy Graham Evangelistic Association UK) 등 수십 개의 기독교 단체가 포함됐다.
이 밖에도 위기임신지원센터(Crisis Pregnancy Centres), 작가 J.K. 롤링이 설립한 성폭력 피해 여성 지원단체, 여성 전용 공간 보호를 주장하는 단체들도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앰네스티는 위기임신지원센터에 대해 “낙태를 반대하는 단체들이 설립했으며 여성들이 낙태를 선택하지 않도록 설득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며 “중립적인 상담기관처럼 운영되지만 NHS(영국 국가보건서비스)와는 무관하고 낙태를 막는 것이 목적”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영국 자선위원회(Charity Commission)에 해당 단체들의 자선단체 지위를 재검토할 것을 요구하고, NHS도 환자들에게 위기임신지원센터를 안내하지 말 것을 권고했다.
이에 기독교 및 생명운동 단체들은 자신들을 ‘반인권 단체’로 규정한 데 대해 강하게 반발했다.
영국복음주의연맹의 피터 리나스(Peter Lynas) 대표는 “종교의 자유와 여성, 태아의 권리를 옹호하는 것이 앰네스티의 블랙리스트에 오르는 일이라면 기꺼이 그 명단에 이름을 올리겠다”며 “앰네스티가 인권보다 최신 이념을 선택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라고 비판했다.
여러 단체들은 양심수 보호를 위해 1961년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던 피터 베넨슨(Peter Benenson)이 설립한 앰네스티가 본래의 설립 정신에서 크게 벗어났다고 지적했다.
크리스천 인스티튜트의 키어런 켈리(Ciarán Kelly) 대표는 “앰네스티는 양심수를 보호하던 출발점에서 너무 멀리 벗어났다”며 “이제는 인권을 선택적으로 적용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태아의 생명권과 성매매로 착취당하는 여성의 권리, 양심과 표현의 자유는 더 이상 인권으로 취급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생명운동가 플레어 엘리자베스 메스턴(Fleur Elizabeth Meston)은 “독실한 기독교인이었던 창립자가 양심수를 보호하기 위해 만든 단체가 이제는 자신들과 다른 양심을 가진 사람들을 ‘반인권’으로 낙인찍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생물학적 성(sex)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것, 태아를 보호하자고 주장하는 것은 결코 반인권이 아니다”라며 “우리 역시 여성과 태아 모두의 인권을 지키기를 원할 뿐”이라고 강조했다.
SPUC의 마이클 로빈슨(Michael Robinson) 대표도 “이 보고서는 신앙을 ‘반선택’ 운동과 동일시하고 거대한 음모론의 일부인 것처럼 묘사하고 있다”며 “피터 베넨슨이 이 보고서를 봤다면 충격을 받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여성 전용 공간과 종교의 자유, 태아의 권리, 생애 말기 장애인의 권리를 옹호하는 단체들을 반인권 단체로 규정한 것은 매우 우려스럽다”고 밝혔다.
또 “앰네스티는 낙태시설 완충구역(buffer zone)에서 침묵기도를 했다는 이유로 기독교인들이 체포되는 문제에는 침묵하고 있다”며 “인권을 표방하면서도 가장 기본적인 생명권을 더 이상 지키려 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CBR UK 역시 “우리는 태아의 생명권과 여성들이 태아의 발달 과정 및 낙태의 실상을 알 권리를 옹호하고 있을 뿐”이라며 “오히려 앰네스티는 임신 9개월까지 낙태를 허용하는 입장을 지지하고 있는데, 이는 창립 당시의 사명과는 거리가 멀다”고 주장했다.
보고서는 원치 않는 동성 성향이나 성별 불쾌감(gender dysphoria)을 경험하는 사람들을 위한 상담을 지원하는 코어 이슈스 트러스트(Core Issues Trust)와 국제치료·상담선택재단(IFTCC)도 지목했다.
앰네스티는 IFTCC가 이른바 ‘전환치료(conversion practices)’를 조장한다고 주장했지만, IFTCC는 이를 부인하며 더 강한 감시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반박했다.
IFTCC 설립자인 마이크 데이비드슨(Mike Davidson) 박사는 “진정한 인권 사회라면 양쪽 모두의 자유를 보호해야 한다”며 “성 정체성을 확인하는 치료를 원하는 사람뿐 아니라 다른 합법적인 치료나 목회적 상담을 자발적으로 선택하는 사람들의 자유도 보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인권은 개인의 양심과 선택을 보호해야 하며, 특정 이념만을 특권적으로 인정해서는 안 된다”고 덧붙였다.
기독교계뿐 아니라 다른 단체들도 보고서를 비판했다.
작가 J.K. 롤링은 “이 보고서는 앰네스티가 어떤 사람들은 인권을 누릴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보이게 만든다”고 비판했다.
영국 대법원에서 ‘성별은 생물학적 성을 의미한다’는 판결을 이끌어낸 포 위민 스코틀랜드(For Women Scotland)는 “여성에게 법적 권리가 없다고 생각하지 않는 한 우리를 반인권 단체라고 부를 수는 없다”며 “앰네스티가 성폭력 피해 지원단체와 여성단체까지 비방하는 수준으로 추락한 것은 매우 유감”이라고 밝혔다.
스코틀랜드 보수당의 레이철 해밀턴(Rachael Hamilton) 부대표도 “여성의 권리를 보호하고 성폭력 피해자를 지원하는 단체들을 반인권 단체로 낙인찍은 것은 충격적”이라고 말했다.
머도 프레이저(Murdo Fraser) 스코틀랜드 의원은 “경악스럽고 혐오스럽다”며 앰네스티에 공식 해명과 사과를 요구하는 서한을 보냈고, 자선위원회에도 이 문제를 제기하겠다고 밝혔다.
논란이 확산되자 앰네스티 측은 “해당 보고서는 내부 검토를 위해 일시적으로 홈페이지에서 내렸다”며 “앰네스티 영국지부는 앞으로도 인권 문제 연구와 캠페인을 계속할 것이며, 여기에는 트랜스젠더 권리 보호 활동도 포함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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