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윤기
광주 도심에서 일면식 없는 여고생을 살해한 혐의 등을 받는 장윤기(23)가 14일 오전 광주 서부경찰서에서 검찰 송치를 위해 형사과를 빠져나와 호송차로 이동하고 있다. ©뉴시스

광주 여고생 살인사건 피의자 장윤기 사건을 계기로 형법상 ‘친족 특례’를 둘러싼 논란이 다시 확산하고 있다. 현직 경찰관인 피의자의 부친이 핵심 증거를 폐기한 정황이 제기됐지만, 친족이라는 이유로 증거인멸죄 처벌이 어려울 수 있다는 해석이 나오면서 제도 개선 필요성이 국회와 법조계에서 제기되고 있다.

9일 법조계에 따르면 광주지검은 지난 7일 장윤기의 아버지인 현직 경찰 장 모 경감의 자택 등을 압수수색하는 과정에서 장윤기 차량에서 사라졌던 케이블 타이 실물을 확보했다. 검찰은 해당 케이블 타이가 피해자를 결박하거나 제압하는 데 사용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검찰은 이 물품이 장윤기의 범행 목적이 성범죄였다는 공소사실을 뒷받침하는 주요 정황 증거가 될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그러나 장 경감이 아들의 사건과 관련된 물품을 임의로 폐기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상황에서도 형법상 친족 특례가 적용될 경우 증거인멸죄 처벌이 어려울 수 있다는 점이 논란의 핵심으로 떠올랐다.

증거 폐기 의혹에도 친족 특례 적용 논란

장 경감은 장윤기의 자취방을 찾아 리얼돌과 과거 사용하던 휴대전화 등을 임의로 폐기했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수사기관은 이들 물품이 장윤기의 범행 동기와 목적을 확인하는 데 필요한 자료였을 가능성을 살펴보고 있다.

현행 형법은 친족이 본인이나 친족을 위해 범인을 숨기거나 증거를 없앤 경우 처벌하지 않는 특례 조항을 두고 있다. 형법 제151조와 제155조는 범인은닉과 증거인멸 범죄에 대해 일정 범위의 친족 특례를 인정하고 있다.

이 제도는 가족 공동체를 보호하고 친족에게 가족을 고발하도록 강요하지 않겠다는 취지에서 마련됐다. 그러나 장윤기 사건처럼 수사기관 소속 공무원이 직무와 관련된 사건에서 가족의 범죄 은폐에 관여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경우까지 동일하게 면책하는 것이 타당한지를 두고 문제 제기가 이어지고 있다.

특히 이번 사건에서는 경찰이 장 경감에게 수사 정보를 제공했다는 의혹도 함께 불거졌다. 이에 따라 단순한 가족 간 보호 차원을 넘어 수사기관 내부 정보 유출과 증거 훼손 가능성까지 함께 따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과거 사건에서도 반복된 면책 논란

친족 특례가 적용돼 처벌을 피한 사례는 과거에도 있었다. 2011년 전북 전주 일가족 살해 사건에서는 현직 경찰관이던 외삼촌이 조카의 범행 사실을 알고도 주변인들에게 현장 유류품을 치우고 차량을 세차하도록 지시한 혐의를 받았다.

당시 외삼촌은 증거인멸 교사 혐의를 받았지만, 검찰은 그가 방계 4촌 이내 친족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친족 특례를 적용해 무혐의 처분했다. 이 사건 역시 친족 관계를 이유로 범죄 은폐 행위가 면책되는 것이 적절한지를 두고 논란을 낳았다.

장윤기 사건 이후 이 같은 과거 사례들이 다시 거론되면서 친족 특례 폐지 또는 개정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특히 강력범죄나 수사기관 종사자가 관련된 사건에서는 특례 적용을 제한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국회에서도 관련 법 개정 논의가 시작됐다. 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2일 가족의 범죄 사실을 숨기거나 증거를 인멸한 경우에도 처벌할 수 있도록 하는 이른바 ‘친족 특례 폐지법’을 대표 발의했다. 해당 법안은 형법상 범인은닉죄와 증거인멸죄에 적용되는 친족 특례 조항을 삭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법무부·국수본도 제도 개선 필요성 언급

정성호 법무부 장관도 친족 특례 제도 개선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정 장관은 최근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친족상도례가 시대 변화에 맞춰 폐지된 만큼, 범인은닉·증거인멸 관련 친족 특례 역시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홍석기 국가수사본부장도 지난 6일 정례 기자간담회에서 장윤기 사건과 관련해 철저한 수사 방침을 밝혔다. 그는 “조직의 명운을 걸고 철저히 수사하겠다”고 말했다.

홍 본부장은 친족 특례와 관련해서도 “이번 건을 제외하고도 일반적으로 수사하면서 많이 느끼는 부분”이라며 “국회에서 입법적으로 잘 정리해주면 좋겠다”고 밝혔다. 수사 현장에서 친족 특례 조항이 실제 사건 처리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만큼 국회 차원의 입법 정리가 필요하다는 취지로 해석된다.

다만 법조계에서는 전면 폐지론과 신중론이 함께 제기되고 있다. 친족이라는 이유만으로 처벌을 면제하는 현행 제도가 시대 변화에 맞지 않는다는 주장과, 가족 공동체 보호라는 입법 취지를 고려해 보완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의견이 맞서고 있다.

법조계, 폐지론과 신중론 맞서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친족 특례를 폐지하고 친족 관계는 법원이 양형 과정에서 고려하는 방식이 바람직하다고 제안했다. 그는 친족이라는 이유만으로 범죄를 아예 처벌하지 않는 현행 제도는 시대 변화에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다만 경찰 등 특정 직군만 예외적으로 친족 특례 적용 대상에서 배제하는 방안에는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한 교수는 합리적 이유 없이 특정 직업군만 제외할 경우 차별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며, 공무원이 직무 과정에서 범죄에 관여했다면 직권남용 등 다른 범죄 적용 여부를 따지는 것이 맞다고 설명했다.

반면 김대근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친족 특례가 가족 공동체 보호와 개인의 양심 보장이라는 취지에서 도입된 만큼, 하나의 사건을 계기로 예외를 확대하는 방식의 입법에는 신중해야 한다고 밝혔다.

김 연구위원은 친족에게 가족을 고발하거나 가족에게 불리한 행동을 하도록 강제하는 것은 개인의 양심과 가족 공동체를 침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친족 특례가 일정 부분 타당성을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경찰처럼 직무상 의무가 있는 공무원이 관련 사건에 개입한 경우에는 징계나 직권남용, 교사범 성립 등 다른 법률을 통한 제재 가능성을 검토할 수 있다고 봤다.

  • 네이버 블러그 공유하기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press@cdaily.co.kr

- Copyright ⓒ기독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장윤기 #광주 #친족특례 #증거인멸 #기독일보 #기독일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