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저출생·초고령사회가 직면한 인구 위기 속에서 ‘돌봄통합지원법’이 시행되었다. 이제 돌봄은 국가와 사회가 함께 책임져야 할 공적 과제이며, 이를 위한 실천적 논의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점이다.
세계적인 정치철학자이자 ‘돌봄민주주의(Caring Democracy)’의 저자인 조안 트론토(Joan C. Tronto) 미국 미네소타대 교수는 2일 국회에서 열린 돌봄민주주의 토론회에서 "돌봄의 위기는 민주주의 위기, 분리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민주 정치는 시민을 돌봐야 하고, 민주 시민은 민주주의를 돌볼 의무가 있다는 것이다. 트론토 교수는 저출생, 고령화, 돌봄 노동자 부족 현상을 단순한 인구·복지 문제를 넘어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구조적 모순의 결과로 지적했다. 이를 해결하려면 경제성장과 효율 중심의 사고에서 벗어나 돌봄을 사회의 핵심 가치로 재배치해야 한다.
특히 저출생을 단순한 '출생아 수 감소'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 사람들이 원하는 만큼 아이를 낳지 못하는 근본적인 원인을 살피고, 돌봄을 실현할 수 있는 환경을 먼저 조성해야 한다. 고령화 역시 늘어난 기대수명에 맞춰 제도를 전면 재설계해야 한다. 돌봄을 위한 가장 핵심적인 자원은 바로 ‘시간’이다. 우리 사회는 시민들이 아이와 고령자, 가족, 그리고 자기 자신을 돌볼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제도적으로 보장해야 한다.
통합돌봄이 진정한 '좋은 돌봄 정책'으로 자리 잡으려면 이용자의 요구를 세세히 살피고, 그들의 결정과 의사를 '권리'로 존중해야 한다. 차별과 방임 없이 안전하고 신뢰도 높은 돌봄 체계를 구축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선결 과제와 방향을 제안하고자 한다.
첫째, 돌봄민주주의를 중심에 둔 실천적 논의가 확산되어야 한다. 돌봄을 사회 구성원 모두가 함께 책임지고 참여하는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로 바라보고, ‘함께 돌봄(Caring with)’을 실천하기 위한 정책적 대안을 치열하게 모색해야 한다.
둘째, 현장 중심의 연구와 적용이 시급하다. 의료·요양·복지 서비스를 지역사회 중심으로 연계하는 통합돌봄 정책의 실효성을 높이고, 돌봄 노동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해야 한다. 아울러 종교계 등 민간 부문과의 협력 방안 및 한국 사회에 적합한 돌봄 체계의 방향성을 정립해야 한다.
셋째, 철저하게 ‘이용자 중심’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 사회복지·의료·보건·주거지원 사업을 수요자의 욕구와 상황에 주목하는 구조로 바꾸어야 한다. 도움을 원하는 이용자로부터 출발해 필요한 자원과 서비스를 설계하는 전문 역량을 집중함으로써, 돌봄 생태계와 안전망의 완성도를 높여야 한다.
넷째, 돌봄 거버넌스 활성화를 위해 지자체 복지행정의 혁신이 선행되어야 한다. 중앙정부와 광역·기초지자체, 전문기관, 종교계를 비롯한 민간기관 간의 명확한 역할 조율과 협업 환경 조성이 필수적이다. 이를 통해 지역 밀착형·지역 주도형 복지 생태계를 만들고, 주민이 주민을 돌보는 지역 돌봄 공동체를 활성화하며, 사회적경제 영역의 참여 기반을 확대해야 한다.
다섯째, 생애주기별 통합돌봄 사업을 체계화하고 공적 보장성을 확대해야 한다. 노인 계층을 시작으로 장애인, 정신질환자, 나아가 아동·청년·중장년에 이르기까지 생애주기 전반에서 단절 없는 돌봄과 공적 지지 시스템을 촘촘히 마련해야 한다.
통합돌봄을 위한 제도적 기반은 이제 막 마련되었을 뿐, 현장에 안착하기까지는 많은 과제가 남아있다. 돌봄 사각지대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지자체를 중심으로 종교계 등 민간 협력 네트워크를 촘촘히 강화해야 한다. 지역 사회가 돌봄의 진정한 주체로서 권한과 책임을 갖고, 돌봄 노동의 가치가 정당하게 회복되며, 시민이 함께 돌봄을 분담하는 문화가 뒷받침될 때 비로소 대한민국 헌법 제10조의 핵심 가치를 담은 ‘한국형 돌봄민주주의’가 완성될 것이다.
장헌일 박사
한국공공정책개발연구원장
저출산대책국민운동본부 정책위원장
한국지방자치학회 국회정책협력위원장
신생명나무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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