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역사상 가장 많이 인쇄되고, 가장 널리 번역되었으며, 가장 격렬한 논쟁의 중심에 섰던 책. 그러나 정작 우리는 이 ‘책’ 자체의 역사를 얼마나 제대로 알고 있을까?
종교개혁 연구의 세계적 권위자인 브루스 고든 예일대학교 교회사 석좌교수의 신작 『성경의 세계사』는 성경을 신앙의 대상을 넘어 하나의 '역사적 실체'로 바라본다. 파피루스 두루마리부터 구텐베르크의 인쇄기를 거쳐 오늘날의 스마트폰 성경 앱에 이르기까지, 2천 년에 걸친 이 책의 장대한 전기(傳記)를 전 지구적 스케일로 복원해 낸 야심 찬 인문 역사서다.
문명을 빚어내고 문명에 의해 다시 태어난 ‘이주자’
성경은 하늘에서 뚝 떨어진 완결된 단행본이 아니었다. 수백 년에 걸친 독서와 신심의 실천 속에서 서서히 정경으로 묶였으며, 그 이후로도 끊임없이 국경을 넘나들었다. 저자는 성경을 상인과 순례자, 선교사와 정복자의 짐에 실려 대륙과 대양을 건넌 ‘이주자’에 비유한다.
가닿는 곳마다 사람들의 세계관과 문화를 바꾸어 놓았지만, 일방적인 전파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성경 역시 그들이 처한 문화와 교차하며 새로운 언어와 책으로 끊임없이 재탄생했다. “성경이 문명을 만들었고, 문명이 성경을 다시 만들었다”는 통찰은 이 책을 관통하는 묵직한 주제다.
억압의 무기이자 해방의 언어, 성경의 두 얼굴
이 책은 성경이 지닌 낯설고도 역설적인 두 얼굴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권력자들은 자신들의 지위를 공고히 하고 노예제를 정당화하기 위해 성경을 동원했으며, 해석을 독점하고자 평신도의 손이 닿지 않는 곳에 책을 가두기도 했다.
그러나 반대편의 역사도 존재했다. 성경으로 글을 깨친 흑인 노예 프레더릭 더글러스나 식민 지배에 맞선 아메리카 원주민 샘슨 오컴에게 성경은 억압과 위선에 맞서는 강력한 저항의 무기였다. 억압과 해방, 전쟁과 위로, 검열과 계몽이라는 인류사의 가장 극적인 순간마다 성경은 그 중심에 자리한 모두의 언어였다.
한국 그리스도교의 역동성을 세계사의 무대 위로
이 책은 고대 지중해 세계부터 르네상스와 종교개혁, 그리고 아메리카와 아프리카를 거쳐 뻗어나간 번역과 권력의 문화사를 흥미진진하게 펼쳐낸다. 특히 한국 독자들의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제13장이다.
저자는 세계 최대 규모인 여의도 순복음교회로 대표되는 메가처치 현상, 산과 기도원으로 상징되는 한국적 영성, 무속·불교·유교 등 오랜 전통과 조우하며 독자적으로 발전한 한국 그리스도교의 역동성을 비중 있게 다룬다. 세계사의 객관적인 시선으로 한국 성경 수용사의 자리를 확인하는 진귀한 경험을 할 수 있다.
"성경은 분투를 고무하나 소유와 독점은 거부한다."
『성경의 세계사』는 교리를 설파하거나 신앙을 강요하는 책이 아니다. 미디어와 기술, 번역과 권력, 식민과 저항의 역사가 한 권의 책과 어떻게 얽혀왔는지를 추적하는 탁월한 문화 교양서다. 신앙인에게는 익숙한 경전의 낯설고 인간적인 이면을, 비신앙인에게는 세계사를 관통해 온 가장 문제적인 ‘사물’의 역사를 보여줄 것이다. 책과 번역, 문명의 교류에 관심 있는 모든 독자에게 일독을 권한다.
▶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press@cdaily.co.kr
- Copyright ⓒ기독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