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리적 폭력보다 무서운 ‘총체적 선전 체제’

안승오 교수
안승오 영남신대 선교신학 교수

이오시프 스탈린의 권력을 떠올릴 때 대중은 흔히 비밀경찰(NKVD)의 서슬 퍼런 칼날과 대숙청의 공포만을 기억한다. 그러나 스탈린 독재가 무너가지 않은 진짜 비결은 물리적 억압이 아닌, 인간의 인지와 의식을 근본적으로 개조하려 했던 정교한 ‘대중 기만술’에 있었다. 그는 언론, 문화, 예술, 역사적 사료까지 국가가 완전히 독점하는 ‘총체적 선전 체제(Agitprop)’를 확립했다.

그가 정립한 기만술의 본질은 단순히 사실을 왜곡하는 수준을 넘어선다. 아예 존재하지 않는 ‘가짜 현실(Pseudo-reality)’을 창조하고, 대중이 이를 자발적으로 신앙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거대한 마스터플랜은 1945년 해방 정국, 소련 군정의 탱크와 함께 38선 이북으로 고스란히 이식되었다. 훗날 북한이라는 거대한 ‘거짓말 공화국’을 탄생시킨 유전적 기원이 바로 여기다.

약품과 붓으로 지워진 역사, ‘시각적 조작’

스탈린식 대중 기만술의 첫 단계는 과거의 기억을 지우고 현재의 언어를 이데올로기화하는 것이었다. 그는 자신을 레닌의 유일무이한 계승자로 각인시키기 위해 대대적인 역사 왜곡을 감행했다.

가장 대표적인 무기가 ‘시각적 조작(Visual Falsification)’이었다. 레닌의 수석 보좌관이자 혁명 영웅이었던 트로츠키나 카메네프 등이 숙청될 때마다, 선전 기관은 과거 그들이 레닌과 함께 찍혔던 수천 장의 사진과 필름에서 이들의 모습을 약품과 붓으로 완전히 지워버렸다. 대중에게는 오직 ‘레닌의 곁을 지키는 충성스러운 스탈린’의 이미지만이 반복 노출되었다. 인간의 시각적 기억마저 국가가 통제할 수 있다는 오만한 기만의 승리였다. 복잡한 국가적 실패나 경제적 무능은 단어의 재정의를 통해 은폐됐다. 1930년대 강제 집단농장화 과정에서 발생한 참혹한 대기근과 저항은 ‘계급 적대 분자의 파괴 책동’이라는 프레임으로 둔갑했고, 당의 결정은 오류가 불가능한 ‘과학적 진리’로 포장됐다.

‘사회주의 리얼리즘’과 서구 지식인들의 파멸적 맹신

스탈린은 1932년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소련의 유일한 창작 원칙으로 규정하며, 예술가들을 “인간 영혼의 건축가”로 명명했다. 이 이론의 핵심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주의적 발전에 이바지하는 혁명적 현실’만을 묘사하는 것이었다. 존재하지 않는 이상향을 마치 눈앞의 현실인 것처럼 속여 그리는 공식적 기만 방법론이었다.

이 시기 제작된 영화와 회화 속 농민들은 언제나 풍요로운 음식을 앞에 두고 스탈린을 향해 찬양의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같은 시기 실제 우크라이나 등지에서는 농민들이 국가에 곡물을 수탈당해 수백만 명이 아사(餓死)하는 ‘홀로도모르(대기근)’가 진행 중이었다. 스탈린 정권은 이 참상을 감추기 위해 철저히 연출된 가짜 마을, 즉 ‘포툽킨 빌리지(Potemkin Village)’를 건설했다. 버나드 쇼를 비롯한 서구의 저명한 좌파 지식인들이 소련을 방문했을 때 목격한 것은 잘 짜인 각본에 따라 행복한 표정을 짓는 연출된 노동자들과 풍요로운 시장뿐이었다. 이들은 서구로 돌아가 “소련에는 기근이 없으며 인민들은 낙원을 살고 있다”는 가짜 증언을 퍼뜨리는 ‘쓸모 있는 바보들(Useful Idiots)’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

평양으로 복제된 스탈린의 유산, ‘극장 국가’ 북한

스탈린이 완성한 대중 기만 시스템은 1945년 8월, 소장파 소련군 장교 출신인 김성주(김일성)가 평양에 등장하면서 한반도 북녘땅에 그대로 복제되었다. 소련 군정의 선전 전문가들은 스탈린 우상화 기법을 김일성에게 자구 하나 틀리지 않게 적용했다.

김일성의 보천보 전투는 스탈린의 혁명 신화처럼 수십 배 부풀려져 ‘백두혈통’이라는 우상화의 초석이 되었고, 소련의 선전선동부 시스템은 북한 노동당 ‘선전선동부’라는 이름과 기능 그대로 이식되었다. 스탈린이 정적을 숙청한 뒤 사진에서 지웠듯, 김일성 역시 박헌영의 남로당계와 무정, 최창익의 연안파를 숙청한 후 북한의 공식 역사에서 그들의 흔적을 완전히 소멸시켰다. 평양을 거대한 연극 무대로 만들어 핵심 계층만 거주하게 하고 외부 세계에 보여주기식 ‘쇼윈도 도시’로 활용하는 북한의 ‘극장 국가’적 면모는, 정확히 스탈린이 연출했던 포툽킨 빌리지의 확장판이다.

진실을 밝히는 작업, 숭고한 정신적 해방 운동

스탈린이 전수한 대중 기만술은 “거짓말도 반복하면 진실이 된다”는 속설을 국가 권력 차원에서 제도화한 인류사 최악의 유산이다. 사실(Fact)보다 당성(Party spirit)을 위에 두고, 권력의 입맛에 맞게 언어와 역사를 뜯어고치는 이 기만술은 오늘날 북한 체제를 지탱하는 가장 강력한 영적 기둥이다.

오늘날 우리가 북한의 거짓을 폭로하고 진실을 밝히는 작업은 단순한 정치적 비판이나 이념 공세를 넘어선다. 그것은 스탈린주의가 오염시킨 인류의 보편적 상식과 윤리를 회복하고, 억압받는 북한 주민의 의식을 깨우는 숭고한 정신적 해방 운동이어야 한다. 거대한 거짓의 장벽을 무너뜨리는 힘은, 오직 가공되지 않은 날것의 진실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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