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승오 교수
안승오 영남신대 선교신학 교수

북한 체제에서 최고지도자를 신격화하는 '우상화(Idolization)'는 단순한 권력 선전을 넘어선다. 이는 체제 존속과 1인 유일 지배체제를 정당화하는 핵심 정치 기제다. 북한은 최고지도자를 인간의 영역을 넘어선 초월적 존재로 묘사하기 위해 정교한 상징물과 극존칭 수사를 동원해 왔다. 그 정점에 있는 '민족의 태양'이라는 수사의 기원과 제도화 과정, 그리고 오늘날 맞이한 균열을 짚어본다.

1. '태양' 수사의 기원과 전개

01) 항일 무장투쟁 신화의 조작과 1인 독재의 서막 (1940~1950년대)

북한 당국은 김일성을 '태양'에 비유하기 시작한 시점을 1930년대 항일 무장투쟁 시기로 소급해 선전한다. 김일성의 본명인 '김성주'를 동지들이 '조선의 해와 별이 되라'는 뜻에서 '한별(일성, 一星)'로 바꿨고, 이것이 다시 '밝은 해'를 뜻하는 '일성(日成)'으로 발전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 세련된 수사가 대중 선전의 전면에 등장한 것은 1950년대 말~1960년대 초 김일성의 권력 기반이 확고해진 이후다. 1956년 '8월 종파사건'을 통해 연안파와 소련파 등 반대 세력을 완전히 숙청하고 권력을 1인에게 집중시키는 과정에서, 과거의 항일 투쟁 경력을 절대적 신화로 격상시키기 위해 '태양'이라는 자연주의적·종교적 상징이 본격적으로 동원되었다.

02) 주체사상 정립과 '사회정치적 생명체론'의 완성 (1960~1970년대)

1960년대 중·소 이념 분쟁의 틈바구니에서 북한은 독자 노선인 '주체사상'을 천명했다. 이 시기 '민족의 태양' 표현은 단순한 수사를 넘어 사상적 체계성을 갖추기 시작한다. 1970년대 완성된 '수령관'과 '사회정치적 생명체론'에 따르면, 인간에게는 부모가 주는 '육체적 생명' 외에 수령이 부여하는 '사회정치적 생명'이 존재한다. 대지에 빛을 내려 만물을 살리는 태양처럼, 수령(김일성)은 인민에게 영생하는 사회정치적 생명을 주는 존재로 치환된 것이다. 1972년 김일성의 환갑을 계기로 '민족의 태양', '인류의 태양'이라는 극존칭이 공식화되었고, 전국의 모든 가정과 일터에 초상화를 모시는 '초상화 사업'이 의무화되며 우상화는 일상이 되었다.

2. 우상화의 제도화: 죽음을 넘어선 '태양의 세습'

01) 주체연호와 태양절, '제도적 종교'로의 진화 (1990년대)

1994년 김일성 사망 이후, 북한은 대기근(고난의 행군)과 체제 붕괴의 위기 속에서 오히려 우상화를 법제적·제도적으로 완성하는 이른바 '유훈통치' 전략을 취했다.
김정일 정권은 김일성 사망 3주기인 1997년을 기점으로 김일성이 태어난 1912년을 원년으로 삼는 '주체연호'를 제정했다. 동시에 김일성의 생일(4월 15일)을 국가 최대 명절인 '태양절'로 지정했다. 최고지도자의 육체적 사망이 우상화의 종말이 아니라, 오히려 헌법과 제도를 통해 영원히 죽지 않는 신(神)적 존재로 박제되는 '제도적 종교화'의 계기가 된 것이다.

02) 정치 공학이 만들어낸 종교적 신격화

북한의 김일성 우상화는 기독교적 메시아 사상이나 전통 왕조의 천명(天命) 사상과 유사한 형태를 띤다. 북한 문헌의 단골 슬로건인 *"수령님은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신의 영생성을 철저히 모방한 결과물이다.

'태양이 없으면 생명이 살 수 없듯, 수령이 없으면 주민과 민족의 존재도 불가능하다'는 논리는 인민들에게 무조건적인 복종과 충성을 유도하는 가장 강력한 심리적 통제 도구로 기능해 왔다.

3. 흔들리는 태양 신화, 대한민국의 과제

김일성을 '민족의 태양'으로 규정한 신격화 체제는 취약한 세습 독재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치밀한 정치공학적 산물이었다. 이 거대한 가스라이팅은 인민의 사상을 통제하고 외부 세계를 차단하는 방벽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2000년대 이후 불어닥친 장마당의 확산, 외부 정보(한류 콘텐츠)의 유입, 그리고 만성적인 경제난은 수십 년간 쌓아 올린 '태양 신화'의 뿌리를 흔들고 있다. 현실의 굶주림과 모순을 뼈저리게 겪은 북한의 신세대들에게 "만물을 살리는 태양"이라는 수사는 더 이상 절대적 구속력을 갖지 못한다. 이는 향후 북한 체제의 내부 가치관 균열을 야기할 핵심 변수다.

8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정교한 우상화 시스템 아래 인간을 신으로 섬기며 자유를 박탈당해 온 북한 동포들이다. 이들이 '가짜 태양'의 그늘에서 벗어나 인간 존엄을 회복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은 이제 통일 시대를 준비하는 대한민국의 가장 시급하고도 중대한 역사적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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