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은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그러나 끝이 보이지 않는 기다림은 무게감이 다르다. 내일이 오늘보다 나을 것이라는 보장 없이 이 현실이 언제 끝날지 모른 채 하루하루를 버티는 것, 그것이 고난이 우리에게 주는 가장 무거운 짐이다. 내 손에서 떠난 그 문제가 능하신 하나님의 손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내려놓음은 포기가 아니다. 더 큰 손을 믿는 것이다. 내가 감당할 수 없다는 고백이 아니라 하나님은 감당하실 수 있다는 믿음이다. 내가 감당할 수 없다는 고백이 아니라 하나님은 감당하실 수 있다는 믿음이다. 내가 올려드린 기도는 기도라기엔 너무 거칠었다. 그냥 하나님이라는 전능한 존재를 놓지 않으려고 이를 악무는 몸부림의 밤이었다. 그 날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신앙의 행위는 마음으로 붙들고 늘어지는 처절한 씨름이었다.
허진열 - 고난 사전
지금까지 통일신학을 돌아보면 많은 물량적 지원에도 아쉬운 부분들이 많았다. 때로는 정치적 편향성의 문제가 있고, 때로는 정부의 정책을 무비판적으로 답습하며, 개인의 취향에 따라 보수주의의 복음을 강조하거나 반대로 진보주의의 평화를 더 선호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분열은 한국교회 안에서 남남 갈등을, 탈북민들에게는 열등의식을 심어주어 깊은 상처를 받게 만들었다. 하지만 하나님 나라 복음의 관점에서 한반도 통일을 추구하는 교회는 결단코 이러한 이분법적 사고에 빠져서는 안 된다. 하나님의 주권이 인정되는 곳에는 세상의 이념을 추구하지 않고 하나님 나라 백성의 하나 됨을 지향하기 때문이다. 세상과 다른 통일관을 가지고 교회가 노력할 때, 통일신학은 대사회적인 신뢰를 형성하고 통일 선교에 많은 영향력을 가지게 된다. 한반도의 통일은 인간이 주체가 되어 만든 이데올로기에 기초한 나라가 아니라 하나님의 조건 없는 사랑에 기초하기 때문이다.
김병로 외 7명 - 분단의 고난과 통일의 비전
용기란 결코 두려움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어려운 현실과 두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그 두려운 일을 해내는 것이다. 겁이 없어서, 형편이 넉넉해서, 상황이 만족스러워서 순종하고 헌신하는 것이 아니다. 참된 용기는 두려움이 사라진 상태가 아니라, 두려움보다 더 가치 있고 중요한 것을 선택하고 그 가치를 따라 행하는 것이다. 지금 무엇을 바라보고 있는가? 문제와 상황에 집착해 시선을 빼앗기면 두려움과 근심에 매몰되기 쉽다. 그러나 얼굴을 들어 하나님을 향할 때, 불가능해 보이는 문제도 돌파할 수 있다. 기존 방식과 상식에 머물지 말고 ‘영적 배면뛰기’를 하라. 문제 대신 하나님을 바라보고 말씀에 순종하라. 그때 두려움은 희망과 담대함으로 바뀌고, 당신은 눈앞의 한계를 훌쩍 뛰어넘는 믿음의 사람이 될 것이다. 우리에게는 몸이 기억하는 ‘영적 머슬 메모리’가 필요하다. 매일의 예배와 작은 사명 앞에서 최선을 다하는 반복이 영적 습관이 될 때, 급박한 위기 속에서도 무너지지 않는 단단한 신앙의 자세를 유지할 수 있다. 하나님의 비전 앞에 가장 먼저 헌신하는 태도가 삶의 본능이 되도록, 오늘도 영적 기억을 새겨넣어야 한다. 순종과 기도, 감사의 루틴을 강화하라. 그것이 당신을 지키는 진정한 영적 실력이 될 것이다.
안호성 - 용기는 두려움이 없는 게 아니라 두려운 일을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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