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에서 제대로 다루지 않고 넘어가는 지속적인 문제 중 하나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성경 문해력이다. 오늘날 교회에서는 성경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인식과 숙련이 당연시되거나, 신학교가 다루어야 할 일로 맡겨지거나, 아예 무시되기도 한다. 그러나 모든 기독교 교리, 신앙, 그리고 소망이 성경에서 비롯된다고 할 때, 성경 문해력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 이 문제는 분명히 우리의 문제다. 그러나 해결할 수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오래된 길로 돌아가야 한다. 교회는 최우선 과제가 전통적인 것, 즉 사람들을 성경으로 훈련시키는 것임을 분명히 해야 한다. 이것이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을 성장시키는 동력이 된다. 왜냐하면 성경 문해력은 성경이 계시하는 하나님에 대한 더 큰 사랑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경 문해력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성경문해력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거기에 도달할 수 있는지를 명확히 해야 한다.
코리 M. 마쉬 - 평신도를 위한 쉽게 쓴 성경 문해력
항상 의심만 하고 주변만 맴돌 것인가? 믿음의 도약을 할 것인가? 나는 후자를 택했다. 뛰어 건넌 저 절벽에 무엇이 있는지 설명할 수도, 논증할 수도 없었다. 그러나 내가 알지 못하는 신비함이 있다는 확신은 들었다. 나는 도약하기로 했다. 지금도 나는 질문한다. 믿지 못하기 때문이 아니라 더 잘 믿기 위해서다. 성경을 그냥 읽지는 못한다. 뒤집어서 읽고 반대로도 읽고 행간을 읽으려고 노력한다. 설명과 질문은 권위를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 권위 안으로 들어가는 길이 된다. 공의의 하나님, 사랑이신 하나님은 내가 알지 못하는 은밀한 계획이 있으실 것임을. 그리고 그 계획에는 아버지에 대한 계획도 있으시길 기도한다. 아버지가 그립다.
오효석 - 질문하는 믿음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지고,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가 깨지고, 인간과 땅과의 관계가 깨진다. 삼중의 단절이 발생한다. 타락은 단순히 규칙을 어긴 것이 아니라 관계의 파괴다. 에덴의 문제는 열매를 먹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신뢰하기를 멈춘 것이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지고,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가 깨지고, 인간과 땅과의 관계가 깨진다. 삼중의 단절이 발생한다. 타락은 단순히 규칙을 어긴 것이 아니라 관계의 파괴다. 에덴의 문제는 열매를 먹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신뢰하기를 멈춘 것이었다. 믿음은 의심이 없는 상태가 아니다. 의심이 있어도 하나님을 향해 손을 내미는 행위다. 물이 넘치지 않아도 배를 타는 것처럼, 느낌이 없어도 언약을 붙잡는 것이 믿음이다. 기도는 문제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보다 크신 하나님을 먼저 보는 것이다. 모든 사건, 모든 사연, 모든 인연을 구속사의 언어로 해석하는 자만이 광야에서 길을 잃지 않는다. 구름 기둥과 불기둥은 지금도 우리 앞에서 움직이고 있다.
김희송 - 언약을 붙잡는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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