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평우 목사
한평우 목사

브리스길라 부부는 사도 바울을 자신의 목숨 이상으로 소중하게 여겼다. 그를 위해서라면 언제든지 자신의 생명을 희생하겠다는 각오를 가졌던 부부였다. 이런 사실을 알고 있던 바울은 그 부부를 로마교회에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너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동역자들인 브리스가와 아굴라에게 문안하라, 그들은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들의 목까지도 내놓았나니 나뿐 아니라 이방인의 모든 교회도 그들에게 감사하느니라”(롬16:3~4)

로마서 16장은, 로마교회 성도들에게 안부를 전하는 내용이다. 그런데 30여 명의 성도에게 안부를 전하면서 대부분, 한 절씩을 사용했다. 그런데 유독 형용사나 부사를 사용하여 두 절씩 할애하여 칭송한 성도는, 로마서 편지를 전달한 겐그레아 교회의 여집사 뵈뵈와, 브리스길라 부부다. 주님의 부르심을 받은 자마다 주님께 헌신하는 삶을 살지만, 그 헌신의 질량은 성도마다 차이가 있다 싶다.

전승으로 전해지는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의 집은 두 곳으로, 브리스길라 카타콤베(Catacombe di Priscilla)가 있는 Via Salalia 430. 브리스길라 부부의 가정교회 위에 세워진, Santa Prisca 교회다(Via di Santa Prisca11). 개인적 소견으로는 산타 프리스가 교회가 세워진 곳이 그 부부가 살았고, 가정교회를 이룬 집이었겠다 싶다. 그곳은 로마의 중심 지역으로 당시 귀족들이 살던 지역이었기 때문이다. 그곳은 로마 정치의 중심지인 포로 로마노(왕궁)를 품고 있는 팔라티노 언덕과 비슷한 고도에 있다. 그 집 아래로는 대 전차경기장인 치르코 마시모(Circo Massimo)가 있다.

대전차 경기는 당시 로마인들이 가장 열광했던 스포츠 경기로, 보통 15만-25만 이상이 관람할 수 있는 경기장이었다고 한다. 15만-25만의 군중이란, 로마 인구가 약 백만이었다고 하는데 약, 인구1/4이, 참석했다는 의미다. 1세기 로마 시민들에게는 빵과 서커스, 또는 검투사 경기, 전차 경기의 관람이 무료였다고 하니 얼마나 많은 군중들이 참석했을지 상상이 간다.

마차 경기는 국민의 폭발적 인기가 있었는데, 팀을 청,적,백,녹의 4개 팀으로 나누어 경기가 진행되었고, 승리한 팀은 수천, 수만 세스테르우스를 받았다. 갈리굴라 황제시 자신의 좋아하던 녹색 팀의 선수 에우티쿠스(Eutychus)에게 팁으로만 200만 세스테르티우스를 하사한 일도 있었다. 1-2세기에 활동했던 최고의 전차 기수 가이우스 디어클레스(Gaius Appuleius Diocles)는 24년간 활동했는데, 총 3,586,3120세스테르테우스를 받았다. 이 액수는 당시 로마제국 전체 로마 군인들의 2개월분의 봉급에 해당하는 액수였다.

그런 정도였으니 요즈음 서구 아이들의 꿈은 무조건 축구선수가 로망인 것처럼 당시의 청소년들도 비슷했을 것이다. 고로 경기가 끝난 후에도 패한 팀에 소속된 자들은 분을 삭이지 못해 싸움판을 벌었다고 한다. 그랬으니 경기장 주변은 늘상 함성과 고함이 끊이지 않았다.

 

대전차경기장 전경
대전차경기장 전경

더구나 1세기에는 연간 공식 축제일 수가 77일 중 17일 동안 전차 경기가 열렸다. 즉, 하루에 10~12회의 경기가 펼쳐졌다. 그런데 갈리굴라와 클라디우스 황제 시, 경기 일수가 170일까지 파격적으로 늘어났고 전차 경기는 연간 66일로 불어나게 되었다. 평화로운 시대였기에 연중 1/6이 경기가 열리는 셈이었다. 경기 횟수는 하루 평균 24회(1회당 7바퀴를 돌았다)가 진행되었다. 고로, 대전차 경기장에서 외치는 응원의 함성은 온 로마를 뒤흔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튿날 이웃과 만나면 온통 승패에 관한 얘기, 또는 자신이 좋아하는 팀에 관한 얘기로 날이 새는 줄 몰랐을 것이다. 이런 과거의 역사를 이어가기 위함인지, 이곳에서 수시로 콘서트가 열린다. 젊은이들의 광란의 밤을 즐기도록 시에서 후원한다.

이런 문화를 제일 가슴 아파한 사람이 있다면 브리스길라 부부가 아니었을까? 그 마음에 하나님이 없으니 로마 시민들은 표피적인 쾌락에 목숨을 걸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마음이 허허로웠기에 무언가 채워야 했다. 그래서 전차 경기가 있는 날을 기다렸고, 그날이 되기 전에 미리 도착하여 숙소에 머무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 많은 관중이 모이려면 로마 외곽에 거주하는 사람들도 참석했을 것이다. 아마도 그들은 경기가 열리기 며칠 전에 와서 시내의 숙소를 정하고 머물렀을 것이다. 그들이 로마를 뒤흔드는 응원의 함성이나 승리함으로 시내로 쏟아져 나와, 어깨동무하며 외쳐대는 승리한 팀이나 선수에 대한 함성은 굉장한 구경거리가 되었을 것이다.

더 나아가서 대 전차경기장에서 콜로세움까지는 가까운 거리다. 그렇다면 전차 경기가 없는 날에는 콜로세움에서 검투사 경기가 이루어졌을 것이다. 이런 일상을 대하면서 브리스길라 부부는 얼마나 안타까웠을까?

하나님을 모르고 감각적 쾌락에 자신을 방임하는 사람들이요, 미래가 없는 존재들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은 2천 년 전이나 현재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복음의 가치를 깨닫게 된 사람은 복음에 미치게 되는 법이다.

세상의 유행이나 인기, 재물이나 권력에 지나치게 몰입하지 않게 된다. 헛된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의 신앙, 그 부부는 에베소에 가정교회를 세웠던 것처럼, 로마에 돌아와서도 가정교회를 만들어 복음을 전하는 일에 최선을 다했을 것이다. 이런 뜨거운 헌신자가 이 시대에도 필요하다. 타는 목마름으로 그런 자를 찾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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