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과 로마서에서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의 행적을 기록하고 있다. 겐그레아 교회의 여집사 뵈뵈의 목숨을 건 헌신으로 로마교회에 전달된 편지는 놀라운 반향을 일으켰다. 그 이유는 사람이 의롭게 되는 길은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에 의해서라는 말씀 때문이었다. 사람은 누구나 의를 위해 노력하고 힘써야 한다는 본질적인 종교성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신앙인들 가운데는 은연중에 자신의 노력이나 헌신을 자랑하려고 한다. 기도, 헌금이나 구제, 성경을 많이 읽는다는 등등. 그러나 그런 일을 조심해야 한다.
이탈리아에는 중세부터 이어져 오는 성지순례의 코스가 다양하다. Pellegrinaggio(성지순례), 비아 프란치나(Via Francigene-영국의 캔터베리에서 로마까지-), Camino di San Benedetto-서유럽 수도원의 창시자, 베네데토의 고향인 Nursia에서 시작하여 Monte Casino까지. Camino di Francesco-성 프란치스코의 길을 따라 앗시시를 중심으로 걷는 순례길 등등.
그 외에도 있는데, 그들은 걷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며칠 동안을 땀 흘리며 걷는 수고를 통해 행한 죄에 대한 대가를 치르고자 한다. 그러나 바울은 구원을 위한 인간의 노력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속죄를 이루심을 믿을 때, 값없이 의롭게 된다고 역설하셨다는 사실이다. 이런 진리를 깨닫게 된 로마교회 성도들의 기쁨은 대단했을 것이다. 더 나아가서 사도 바울을 통해 알게 된 브리스길라에 대한 존경심도 놀라웠을 것이고, 그녀가 로마의 귀족 출신이었고, 성도라는 사실에 동질감을 그끼게 되었을 것이다.
그 후, 브리스길라의 헌신에 대해서는 더 이상 알려지지 않았지만, 로마 교인들의 마음에는 로마서를 대할 때마다 그녀를 기억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 후 불어닥친 네로 황제의 핍박, 그리고 연이어 도미티아누스 황제, 트라야누스 황제로 이어진 핍박으로 고통스러울 때도 그녀는 헌신의 모델로 기억되었고 고난을 견디는 신앙의 표지가 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태동 된 것이 브리스길라 카타콤베(Catacombe of Priscilla-Via Salalia 430)가 아닐까 싶다. 또한 남편의 이름이 삭제된 것은 로마 성도들의 자존심 때문이었다고 본다. 브리스길라 카타콤은 고대, 카타콤베의 여왕(Regina Catacumbarum)으로 불리어졌다. 그녀는 자신의 넓은 영지를 기독교 공동체에 헌납하였는데, 그곳에 2~4세기경, 그녀의 이름으로 카타콤베가 조성되었다. 지하 2-3층으로, 길이는 13Km에 이르고 약 4만 개의 묘지를 품고 있다. 또한 고 미술사로 유명한 그림들이 있는데, 베일을 쓴 여인의 방에는 한 여인의 결혼과 어머니의 삶, 그리고 죽음, 천국에서의 모습 등이 단계적으로 그려져 있다.
또한 순교자와 주교들, 특히 콘스탄틴 대제와 막역했던 로마의 감독 실베스테르와 7명의 교황(주교)들이 묻혀있다. 바울은 롬16장 12절의 주 안에서 많이 수고하는 사랑하는 버시에 대해 언급하였다. 아버지는 원로원 의원이었는데, 버시는 가정교회를 만들었고, 순교 당한 성도들, 그리고 부모님을 위시하여 가까운 친지들을 모두 이 카타콤베에 모셨다고 한다.
카타콤베가 위치한 곳은 로마 시내에서 북동쪽의 성 밖으로, 유서 깊은 비아 살라리아 길(Via Salalia)에 인접해 있다. 그 길은 로마가 건국되기 훨씬 전에 생겼고 기원전 4세기경에 로마가 세력을 확장하면서 정비된 길이다. 즉, 로마의 테베레강 하구인 오스티아(Ostia)에서 생산된 소금을 이탈리아 내륙 사비니(Sabines)인들에게 실어 나르기 위해 조성된 길이다. 예배처를 다닐 때, 종종 이용하곤 했는데, 때로는 좁고 험한 소로길을 통과해야 하지만 옛스런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는 길이다. 소금 없이는 생존할 수 없었기에 기원전부터 소금을 나르는 중요한 길이었다. 때로는 로마 군인들에게 급료 대신 소금을 나눠주었기에 월급이라는 영어(Salary) 단어가 소금에서 태동되기도 했다.
처음 그곳은 성도들의 묘지로 사용했는데, 묘지는 점점 늘어나게 되었다. 더구나 황제들의 핍박이 길어지자 묘지는 지하로 내려가게 되었고 카타콤베의 영역은 한없이 커지게 되었다. 콘스탄틴 대제가 기독교를 정식으로 공인한 313년에 이르러서야 지하묘지를 만드는 수고를 멈추게 되었다. 한 사람의 성도가 믿음으로 올곧게 살아갈 때, 영향력은 수천 년까지 이어진다. 브리스길라는 지금도 천국에서 우리의 영적 경주를 내려다보며 응원하고 있을 것이다. 힘들지만 힘을 내라고 말이다.
여러분, 힘들지요? 그러나 주님을 만날 날이 점점 다가오고 있습니다(롬13;11). 고통스럽지만 브리스길라의 헌신을 배우시지요. 그것이 잘사는 길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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