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크리스천포스트(CP)는 조셉 마테라 목사의 기고글인 ‘‘중립적 공론장’이 역사적 신화인 10가지 이유’(10 reasons why the 'neutral public square' is a historical myth)을 7월 4일(현지시각) 게재했다.
마테라 목사는 국제적으로 유명한 작가이자 컨설턴트, 신학자로 활동하고 있으며 미국 사도 지도자 연합(The U.S. Coalition of Apostolic Leaders), 그리스도 언약 연합(Christ Covenant Coalition) 등 여러 단체를 이끌고 있다. 다음은 기고글 전문.
현대 세속주의가 만들어낸 가장 강력한 신화 중 하나는 신앙과 정치가 결코 섞여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다. 우리는 종교가 개인의 신앙심, 예배당, 개인적인 도덕성의 영역에만 머물러야 하며 법, 문화, 혹은 공공 정책에 어떤 영향도 미쳐서는 안 된다고 배운다. 이러한 관점에 따르면, 건강한 사회란 종교적 신념이 철저히 배제된 '가치 중립적인' 공론장을 필요로 한다.
하지만 문제는 그러한 '중립'이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모든 법은 특정한 도덕적 비전을 반영한다. 그리고 모든 도덕적 비전은 진리, 인간의 존엄성, 정의, 그리고 궁극적인 권위에 대한 더 깊은 전제들에 뿌리를 두고 있다. 따라서 진짜 질문은 '신앙이 사회를 형성할 것인가'가 아니라, '어떤 신앙이 이 사회를 형성할 것인가'이다.
1. 모든 사회는 도덕적, 영적 전제에 의해 통치된다
그 어떤 문명도 도덕적으로 중립일 수 없다. 한 국가가 기독교를 수용하든, 세속적 인본주의, 마르크스주의, 민족주의, 혹은 그 밖의 다른 세계관을 받아들이든, 그 나라의 법과 제도는 필연적으로 그들이 가진 가장 깊은 신념을 반영하기 마련이다.
결혼, 인권, 정의, 교육, 경제, 인간 생명의 가치에 관한 질문들은 결코 단순한 정치적 이슈가 아니다. 그것은 다분히 도덕적이고 영적인 이슈들이다. 모든 문화는 궁극적인 신념 체계에 의해 형성되므로, 공공 영역에서 기독교를 제거한다고 해서 그 자리에 중립이 찾아오는 것이 아니다. 그저 다른 신념 체계가 그 빈자리를 차지하도록 내버려 두는 것일 뿐이다.
2. 성경은 국가 권력이 하나님 앞의 청지기임을 보여준다
이스라엘의 국가적 삶이 시작될 때부터, 통치자들은 신성한 권위 아래에서 다스리도록 요구받았다. 왕들은 하나님의 율법을 등사하여 곁에 두고 그분의 기준에 따라 통치하라는 명령을 받았다(신명기 17:17-18).
선지자들은 끊임없이 정치 지도자들에게 책임을 물었다. 나단은 권력을 남용한 다윗을 책망했고, 엘리야는 아합의 부패와 불의를 꾸짖었다. 이사야는 약자들을 억압하는 법을 제정한 통치자들을 향해 매서운 비판을 쏟아냈다.
성경은 세속 정부를 결코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존재로 묘사하지 않는다. 정치적 권위는 실재하지만, 결코 그것이 궁극적인 권위는 아니다. 모든 통치자는 더 높으신 보좌 앞에 책임을 져야 하는 존재다.
3. 초대 교회는 정치 권력 없이 사회를 변화시켰다
초대교회 성도들에게는 투표권도, 정치적 영향력도, 로마 정부 내의 대표성도 없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기독교를 그저 개인적인 영적 체험으로 축소하는 것을 단호히 거부했다.
그들은 버려진 아기들을 구조하고, 과부와 빈민을 돌보았으며, 성적 착취에 반대했다. 또한 서로 다른 계급과 민족의 사람들이 함께 모여 예배하는 공동체를 일구어냈다. 초대 교회는 그저 '그리스도를 주로 모시는 삶'을 실천함으로써 로마 제국의 도덕적 전제들에 정면으로 도전했다.
불과 3세기 만에, 기독교는 제국을 내부로부터 변화시켰다. 로마는 군사력에 의해 정복된 것이 아니다. 복음의 증언과 희생적인 섬김을 통해 근본적으로 변화된 것이다.
4. 기독교 사상은 제한 정부의 원리를 확립했다
콘스탄티누스의 회심과 기독교 공인 이후, 신자들은 신앙과 공공 생활의 관계를 두고 치열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기원후 410년 로마가 함락된 후,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e)는 『신국론(The City of God)』을 저술하여 정부가 인류를 구원할 수는 없지만 악을 억제하고 평화를 유지하는 역할은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기독교인들에게 이 땅의 왕국과 하나님의 영원한 나라를 혼동하지 않으면서도 사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것을 가르쳤다.
이러한 균형 잡힌 접근은 기독교적 '제한 정부(limited government)' 이해의 토대가 되었다. 즉, 정부는 반드시 필요하지만 그것이 궁극적인 통치자는 아니라는 통찰이다.
5. 서구의 법은 '더 높은 법(Higher Law)'의 개념 위에 세워졌다
기독교가 문명에 기여한 가장 위대한 업적 중 하나는 통치자 자신도 법에 종속된다는 신념을 심어준 것이다.
유스티니아누스 황제의 법률 개혁은 신적 질서에 뿌리를 둔 정의를 강조했다. 수 세기 후, 마그나 카르타(대헌장)는 왕조차 법에 복종해야 하며 자의적으로 통치할 수 없음을 선언했다.
이 혁명적인 개념은 모든 권위가 하나님 아래 존재한다는 성경적 확신에서 비롯되었다. 통치자 위에 있는 '더 높은 법'이 없다면, 정치 권력은 결국 절대 권력으로 타락하고 만다.
6. 종교개혁은 폭정에 대한 저항을 옹호했다
프로테스탄트 종교개혁가들은 정부가 도덕법 앞에서 책임을 져야 한다는 사상을 한층 더 발전시켰다. 존 칼뱅(John Calvin)은 『기독교 강요』에서 세속 정부가 정의를 수호하고 무고한 자를 보호하도록 하나님에 의해 세워졌다고 가르쳤다. 동시에 그는 하위 관리(lower magistrates)들이 폭정에 저항할 의무가 있다고 주장했다.
1554년의 '마그데부르크 신앙고백(Magdeburg Confession)'은 이 원칙을 확장하여, 정부가 조직적으로 정의와 의를 대적할 때 폭정에 대한 저항은 도덕적 의무가 될 수 있다고 선언했다.
이러한 사상은 훗날 입헌 정부와 서구 전역의 민주적 자유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7. 인권은 창조주에게 달려 있다
미국의 건국은 수 세기에 걸친 기독교 정치 사상의 유산을 고스란히 물려받았다. 미국 독립선언서는 인권의 근원을 '창조주'에 두고, 모든 인간은 하나님으로부터 양도할 수 없는 특정한 권리를 부여받았음을 천명한다. 권리는 세속 정부가 하사하는 선물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선물로 여겨졌다.
이러한 구분은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만약 권리가 세속 정부로부터 온다면, 정부는 언제든 그것을 거두어갈 수 있다. 하지만 권리가 하나님으로부터 온다면, 정부는 그것을 보호할 엄중한 의무를 지닌다.
권리를 그 초월적인 근원으로부터 단절시킨 사회는 결국 인권을 정치적 조작 앞에 무방비로 내던지게 된다.
8. 기독교적 확신은 역사적으로 사회 개혁을 이끌어냈다
어떤 이들은 신앙이 철저히 개인적인 영역에 머물러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역사는 사회의 가장 위대한 개혁 중 상당수가 깊은 기독교적 신념에 의해 추진되었음을 증명한다.
윌리엄 윌버포스(William Wilberforce)는 모든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다고 굳게 믿었기에 수십 년 동안 영국의 노예 무역에 맞서 싸웠다. 엄청난 정치적 저항에도 불구하고, 그의 끈질긴 헌신은 마침내 대영제국 전역에서 노예제를 폐지하는 결과를 낳았다.
마찬가지로 찰스 피니(Charles Finney)와 제2차 대각성 운동의 지도자들은 진정한 회심이 반드시 사회 변화로 이어져야 한다고 믿었다. 그들의 사역은 노예제, 알코올 중독, 사회적 불의에 맞서는 거대한 운동에 불을 지폈다. 기독교 신앙은 개혁의 걸림돌이 아니었다. 오히려 개혁을 촉발하는 원동력이었다.
9. 예언자적 기독교는 여전히 불의에 맞선다
20세기는 마틴 루터 킹 주니어(Martin Luther King Jr.) 목사의 사역을 통해 신앙이 공공 생활에 어떻게 긍정적 영향을 미치는지 보여주는 가장 선명한 사례 중 하나를 제공한다.
킹 목사는 단순히 정치 활동가로서 공민권 운동(미국의 흑인 민권 운동)에 접근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성경과 예언자적 전통으로 무장한 기독교 목회자로서 이 문제에 다가갔다. 그의 유명한 "버밍엄
감옥에서 쓴 편지"에서 그는 아우구스티누스와 토마스 아퀴나스를 인용하며, 부당한 법은 하나님의 도덕적 질서를 위반하기 때문에 진정한 법이 아니라고 역설했다.
공민권 운동이 큰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이유는, 그것이 한 국가의 양심에 호소하는 초월적인 도덕 원칙에 굳게 뿌리내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기독교적 신념이 신실하게 적용될 때, 그것은 정의와 인간의 존엄성을 위한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된다.
10. 중립지대는 없다
네덜란드의 신학자이자 정치가였던 아브라함 카이퍼(Abraham Kuyper)는 다음의 선언으로 이 진실을 가장 잘 요약했다. "창조 세계의 그 어떤 영역도 그리스도께서 '이것은 내 것이다!'라고 외치지 않으시는 곳은 단 1제곱인치도 없다."
카이퍼는 신정정치와 세속주의를 모두 배격했다. 그는 가정, 교회, 교육, 비즈니스, 정부가 각각 고유한 책임을 지니고 있지만, 그 모든 영역이 결국 하나님 앞에 책임져야 하는 존재임을 가르쳤다. 따라서 기독교인들이 공공 영역에서 물러난다고 해서 그곳이 '중립지대'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그저 우리의 문화적 제도들이 다른 세계관에 의해 주조되도록 방치하는 것일 뿐이다.
진짜 질문은 '신앙이 법과 문화에 영향을 미칠 것인가'가 아니다. '누구의 신앙이 영향을 미칠 것인가'다.
기독교인들이 공공 영역에 참여하는 이유는 정치가 세상을 구원할 수 있어서가 아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이 세상의 주인이시기 때문이다.
가치 중립적인 지대란 없다. 오직 서로 충돌하는 지배권들만 있을 뿐이다. 그리고 모든 국가의 궁극적인 미래는 그들이 섬기기로 선택한 대상이 누구인지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press@cdaily.co.kr
- Copyright ⓒ기독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