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담은 하와를 보고 고민하거나 탐색하지 않았습니다. 단번에 알아봤습니다.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 고백은 낭만적인 감탄사가 아니라, ‘당신과 나는 생명을 공유한 운명 공동체’라는 법적인 선언입니다. 삼손은 정말로 몰라서 속은 게 아닙니다. 사랑하는 여자가 그토록 원하는 것을 거절하지 못해서 자기 자신을 내던진 것입니다. 알면서도 속아주시는 사랑, 이것이 십자가입니다. 율법은 우리에게 ‘해라(Do)’고 요구하지만, 복음은 우리에게 ‘보라(Look)’고 말합니다. 내 상처가 아니라 놋뱀 되신 주님을 바라볼 때, 죽어가던 영혼에 생명이 돕니다. 십자가는 재활용 센터가 아닙니다. 십자가는 사형장입니다. ‘나’라는 가짜 자아가 완전히 삭제되고, 오직 예수만이 내 안에 남는 것, 이것이 구원입니다.
이해원 – 아담이 사랑한 여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로 완성된 복음의 세계는 사복음서 안에서 각기 다른 결로 드러납니다. 복음은 하나이지만, 그 선포의 자리와 관점은 저마다의 신학적 색채를 지니고 있습니다. 누가는 그중에서도 독특한 시선으로 복음을 증언합니다. 누가는 마가복음을 토대로 해서 마가복음이 전하는 복음의 세계를 더 분명히 하여, 복음이 오늘의 삶과 고난의 현실 속에서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치밀하게 드러냅니다. 누가의 관심은 단순한 사건의 재구성이 아닙니다. 그는 인간을 억누르는 불의한 현실, 죄로 인한 왜곡된 질서가 만들어내는 삶의 모순을 직시합니다. 동시에 그 현실을 전복하는 하나님의 나라의 역동성을 선명하게 부각합니다. 특별히 누가는 그 복음의 역동성을 ‘길 위에서’라는 분명한 특징 속에 담아냅니다. 예수의 사역은 고정된 공간에 머물지 않습니다. 갈릴리에서 시작하여 예루살렘을 향해 나아가는 여정 속에서, 길 위에서 선포되고 길 위에서 드러납니다. 그 길은 단순한 이동의 동선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이 인간의 삶 한복판으로 스며드는 통로입니다.
강현호 – 길 위에서 선포하신 말씀
믿음으로 하지 않는 모든 것이 죄가 된다는 것은 내가 강하고 굳세게 내 믿음과 의지로 하면 무엇을 하든 죄가 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 믿음으로 하지 않는 모든 것이 죄라고 하는 바른 뜻은 주님의 성령에 의한 참 생명의 생명력에서 나온 생명의 믿음으로 하지 않은 것은 죄가 되고 죄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한 분 하나님이신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신 성령의 생명력에서 나오는 믿음으로 행하고 살면 결코 죄가 되지 않는다. 이는 죄를 지을 수 없는 하나님의 씨인 성령의 생명력에 의한 믿음이고 삶이기 때문이다. 주님의 생명 이외에는 죄 없는 생명이 없고 다 치우쳐 죄에 빠져있기 때문이다. 죄인의 타락한 생명에서 나오는 자기 믿음과 자기 열성으로 하는 것은 무엇을 하든지 죄가 나오고 죄일 수밖에 없다. 죄악된 사람의 자기 믿음으로 아무리 크고 강하게 많이 오랫동안 한다고 해서 죄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일이며 의롭다고 인정받을 수 없는 것이다.
김원상 – 하나님의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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