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모든 것을 통제하려는 인간의 본능
사람은 본능적으로 타인을 통제하려 한다. 부모는 자녀를, 목회자는 성도를, 부부는 서로를 자기 기준에 맞추려 한다. 그러나 지나친 통제는 사랑이 아니라 두려움에서 나오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고린도전서 13:4) 진정한 사랑은 억압하지 않는다. 강요하지 않는다. 기다릴 줄 안다. 예수님도 사람들에게 억지로 믿음을 강요하지 않으셨다. 부자 청년이 예수님 곁을 떠날 때에도 억지로 붙잡지 않으셨다. “그 청년이 재물이 많으므로 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며 가니라”(마태복음 19:22)
예수님은 진리를 말씀하셨지만 선택은 그 사람에게 맡기셨다. 어쩌면 이것이 성경적인 “Let Them”의 모습일 수 있다.
2. 하나님도 인간에게 선택의 자유를 주셨다.
하나님은 인간을 로봇처럼 만들지 않으셨다. 에덴동산에서도 선택의 자유를 주셨다. 아담과 하와는 순종할 수도 있었고 불순종할 수도 있었다. 하나님은 강제로 막지 않으셨다.
왜일까? 사랑은 자유 안에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억지 순종은 진정한 사랑이 아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허락하셨다. “내가 오늘 생명과 복과 사망과 화를 네 앞에 두었나니…”(신명기 30:15) 하나님은 길을 보여주시지만 선택은 인간이 하게 하신다.
이 점에서 “Let Them”은 어느 정도 성경적 원리를 담고 있다. 즉, 모든 사람을 내 뜻대로 움직이려는 교만을 내려놓는 것이다.
3. 그러나 기독교의 “Let Them”은 무관심이 아니다.
세상적인 “Let Them”은 때때로 냉소나 무관심으로 흐를 위험이 있다. “마음대로 하게 둬.” “알아서 망해봐.” “난 이제 관심 없어.”이것은 성경적 태도가 아니다. 기독교는 사랑 안에서 기다리는 것이다. 탕자의 비유에서 아버지는 아들을 억지로 붙잡지 않았다. 재산을 가지고 집을 떠나는 아들을 보내주었다. 그러나 마음까지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매일 기다렸고 돌아오기를 소망했다. “아직도 거리가 먼데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누가복음 15:20) 이것이 기독교적 “Let Them”이다. 강요하지 않지만 사랑한다. 통제하지 않지만 기도한다. 억지로 붙잡지 않지만 기다린다.
4. 인간관계의 스트레스를 줄이는 믿음
많은 사람들이 인간관계 때문에 병들어 간다. “왜 저 사람은 변하지 않을까?” “왜 내 말을 듣지 않을까?” “왜 내 기대대로 하지 않을까?” 그러나 모든 사람을 바꾸는 것은 우리의 역할이 아니다. 변화시키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심는 이나 물 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나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뿐이니라.”(고린도전서 3:7) 우리는 씨를 뿌리고 사랑하면 된다.
결과는 하나님께 맡겨야 한다. 이 믿음이 없으면 우리는 끊임없이 타인을 조종하려다 지치게 된다.
5. 예수님의 사람들에 대한 태도
예수님은 사람들을 사랑하셨지만 모든 사람에게 인정받으려 하지 않으셨다. 떠나는 사람은 떠나게 두셨고, 배신할 유다까지도 자유롭게 두셨다. 예수님은 억지로 사람을 붙잡는 지도자가 아니셨다. 그러나 예수님은 제자들을 끝까지 사랑하셨다. 이것이 진정한 복음의 정신이다.
6. 오늘 우리에게 주는 교훈
가정에서도 그렇다. 자녀를 지나치게 통제하면 반항이 생긴다. 배우자를 바꾸려 들면 갈등이 커진다. 교회도 마찬가지다. 사람을 억지로 움직이려 하면 상처가 남는다. 때로는 하나님 앞에서 이렇게 말할 필요가 있다. “주님, 제가 바꾸려 하지 않겠습니다. 주님께 맡깁니다.” 그 순간 마음에 평안이 온다.
맺는말 - “Let Them”은 단순한 심리학 이론이 아니다.
올바르게 이해하면 인간의 한계를 인정하고 하나님을 신뢰하는 태도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성경은 단순한 방관을 말하지 않는다. 사랑하며 기다리고, 기도하며 맡기고, 통제 대신 신뢰를 배우라고 가르친다. 예수님은 우리를 억지로 끌고 가지 않으셨다. 지금도 문 밖에 서서 두드리신다.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요한계시록 3:20) 하나님은 강제로 역사하지 않으신다. 사랑으로 기다리신다. 우리도 그렇게 살아가면 어떨까?
“베드로가 돌이켜 예수의 사랑하시는 그 제자가 따르는 것을 보니 그는 만찬석에서 예수의 품에 의지하여 주여 주를 파는 자가 누구오니이까 묻던 자러라 이에 베드로가 그를 보고 예수께 여짜오되 주여 이 사람은 어떻게 되겠삽나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 하시더라”(요한복음 21:20)
양기성 교수(Ph.D., Hon. Th.D.)
서울신학대학교 교회행정학 특임교수
웨슬리언교회지도자협의회 대표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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