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로회신학대학교가 개교 125주년을 맞아 신학교육의 핵심 가치인 ‘경건’의 의미를 재조명하는 학술대회를 개최했다. 이번 학술대회는 한국교회의 영성 위기와 공적 책임 약화 속에서 ‘경건과 학문’이라는 학교의 교육이념을 다시 성찰하고, 신학교육의 본질을 되짚는 자리로 마련됐다.
장로회신학대학교 학술연구처는 12일 오후 서울 광진구 소재 장신대 한경직기념예배당에서 ‘경건이란 무엇인가?’를 주제로 제26회 개교기념 학술대회를 개최했다. 이번 행사는 장신대 기독교사상과문화연구원이 주관했다.
이날 학술대회에서는 개혁교회 전통과 청교도 신앙, 한국교회사 속 경건 이해를 중심으로 다양한 발표와 논의가 이어졌으며, 신학과 영성, 교회와 사회를 연결하는 통합적 경건의 방향성이 집중적으로 조명됐다.
◇ 125주년 맞아 ‘경건’ 다시 묻는 일은 장신대의 자기 성찰 과제
박경수 총장은 인사말에서 “장신대의 교육이념인 ‘경건과 학문’ 가운데 한 축을 이루는 ‘경건’을 다시 묻는 일이야말로 개교 125주년을 맞은 학교가 감당해야 할 중요한 자기 성찰의 과제”라고 밝혔다.
박 총장은 종교개혁자 장 칼뱅의 「기독교강요」를 인용하며 “경건이 없는 곳에 하나님에 대한 참된 지식이 있을 수 없다”며 “신앙과 삶의 분리, 신학과 교회의 거리, 교회와 세상의 단절이 깊어지는 현실 속에서 경건의 본래 의미를 되묻는 작업은 신학교육 기관이 회피할 수 없는 책임”이라고 했다.
또한 장신대가 개교 125주년을 맞아 그동안 축적해 온 경건훈련의 전통을 체계적으로 정리해 단행본으로 출판할 계획도 소개했다. 박 총장은 “학술대회를 통한 신학적 성찰과 경건훈련 지침서 발간이라는 실천적 결실이 함께 어우러질 때 비로소 장신대의 응답이 온전한 모습을 갖추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장신대는 앞으로도 ‘경건과 학문의 균형을 통해 한국교회와 하나님 나라를 섬기는 신학교육 기관’이라는 정체성을 더욱 분명히 하며, 변화하는 시대 속에서도 변치 않는 복음의 진리를 가르치고 신실한 사역자를 길러내는 선지학교 본연의 사명에 충실하고자 한다”고 전했다.
학술연구처장 배희숙 교수는 “‘경건’은 장신대를 규정하는 핵심어이자 전 세계 그리스도인의 공통어”라며 “경건은 일상의 삶을 이루는 신앙의 요소이자 죽음에 이르기까지 추구해야 할 삶의 목적이다. 이번 학술대회가 하나님 앞에 서는 마지막 순간까지 걸어가야 할 경건의 여정에 도전과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기독교사상과문화연구원장 이상조 교수는 “참된 경건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바로 세우는 삶이며, 말씀 앞에서 날마다 변화되는 삶”이라며 “교회를 새롭게 하고 세상 속에서 이웃을 섬기며 공적 책임을 감당하는 삶이 바로 경건”이라고 했다.
아울러 “경건은 단순히 개인의 신앙생활을 정돈하는 문제가 아니라 신학교육의 본질과 교회의 사명, 한국교회의 미래와 깊이 연결된 신학적 과제”라며 “오늘의 학술대회가 장신대의 125년 역사를 감사로 기억하는 동시에 앞으로의 길을 새롭게 모색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 남궁혁·청교도·칼뱅 통해 바라본 ‘경건’… 한국교회 현실 향한 신학적 성찰 이어져
이날 학술대회에서는 세 편의 주제 발표가 진행됐다. △최영근 교수(장신대 역사신학)는 ‘한국교회사에서 본 경건: 남궁혁의 경건 이해’를 △김도훈 박사(뉴헤이븐한인교회, 에든버러대학교 박사)는 ‘청교도 입장에서 본 경건 이해’를 △이상조 교수(장신대 역사신학)는 ‘개혁교회 입장에서 본 경건 이해: 장 칼뱅을 중심으로’를 각각 발표했다.
최영근 교수는 한국 초기 장로교 지도자인 남궁혁의 경건 이해를 중심으로 발표를 이어갔다. 그는 “남궁혁에게 경건은 단순한 개인 영성의 차원을 넘어 믿음과 사랑의 결합이며, 성령 안에서 그리스도와 연합해 하나님의 말씀을 삶 속에서 실천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교회를 영적으로 회복하고 하나님 나라를 사회와 민족 가운데 실현하는 것으로까지 경건의 의미가 확장됐다고 분석했다. 최 교수는 “남궁혁의 경건 이해 안에는 성서적 신앙과 그리스도와의 연합, 교회의 본질과 사명에 대한 목회적 신학이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남궁혁이 일제강점기라는 시대적 상황 속에서 한국교회가 참된 회개를 통해 신앙을 회복하고 민족과 세상을 향한 거룩한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며 “남궁혁의 경건 이해는 개인의 영적 신앙생활에 머무르지 않고 교회와 사회, 민족과 세계로 확장됐다”고 평가했다.
최 교수는 또 “남궁혁의 경건 이해는 당시 한국교회의 신앙 퇴보와 교회 분열을 향한 진단과 처방이었으며, 오늘날 한국교회에도 여전히 유효한 신학적 성찰과 예언적 통찰을 제공한다”고 했다.
◇ 청교도 경건과 칼뱅 신학 통해 오늘 한국교회의 과제 조명
김도훈 박사는 청교도들의 경건 이해가 회심 중심의 종교개혁 정신과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청교도들이 한 영혼의 회심을 목회의 핵심 목적으로 삼았으며, 이를 통해 교회뿐 아니라 사회와 국가의 개혁까지 지향했다”고 밝혔다.
김 박사는 “청교도들에게 경건은 참된 회심의 증거이자 성도로서 감당해야 할 신앙적 의무였다”며 “청교도 경건은 체험적이고 응답적이며 실천적인 특징을 지녔다”고 설명했다.
이어 “청교도들이 추구한 참된 경건은 개인의 변화에 머무르지 않고 공동체와 사회의 변화를 지향했다”며 “오늘날 한국교회 역시 회심의 본질과 그 영향에 대한 포괄적 이해, 그리고 이를 삶 속에서 적용하고 실천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또 “우리의 경건은 회심의 본질을 드러내고 있는가, 우리의 목회는 한 영혼의 변화를 통해 교회와 사회의 개혁을 지향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오늘 한국교회가 다시 던져야 한다”고 전했다.
이상조 교수는 발표를 통해 칼뱅의 경건 이해가 오늘날 한국교회에 중요한 신학적 함의를 제공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먼저 형식주의와 율법주의에 대한 신학적 교정의 필요성을 언급하며, “경건의 외적 형식보다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살아 있는 인식과 감사의 응답 회복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또한 칼뱅의 경건이 개인주의적 영성을 넘어 공동체적 대안을 제시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칼뱅에게 경건은 개인 내면에서 끝나지 않고 교회 공동체 안에서 말씀과 성례, 공동 기도와 교리 교육을 통해 형성되고 보전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경건은 수도원적 분리나 특별한 종교 행위에 머무르지 않고 직장과 가정, 시민사회 등 삶 전체 속에서 구현돼야 한다”며 “신앙과 일상이 분리되는 현실 속에서 경건을 삶 전체의 질서로 회복해야 한다”고 했다.
특히 이 교수는 “칼뱅의 경건은 하나님 중심적 삶의 방향 전환을 요청하며, 동시에 이웃 사랑과 공적 책임으로 확장되는 사회적 함의를 지닌다”고 강조했다. 그는 “경건한 교회는 자기 보존에만 몰두하는 공동체가 아니라 세상 속에서 공동선을 추구하고 책임 있게 이웃을 섬기는 공동체여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오늘 한국교회가 회복해야 할 것은 경건의 외형 강화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의 진실성과 말씀 앞에서의 순종, 세상 속에서의 사랑과 책임을 다시 결합하는 일”이라고 덧붙였다.
학술대회는 논찬과 패널 종합토론, 폐회 순서로 이어지며 마무리됐다.
이날 행사에는 작은 음악회도 함께 진행됐다. 음악회는 백정진 교수(장신대 교회음악학)의 지휘 아래 장은성 학생이 반주를 맡아 진행됐다. 학술과 음악이 어우러진 이날 행사는 장로회신학대학교 개교 125주년의 의미를 되새기며 경건과 학문의 가치를 다시 확인하는 자리로 마무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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