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과 독신 사이에서, 선교사의 현실적 선택
사도 바울의 원칙에서 모두를 위한 답 찾아야

영국 장로교회 소속으로 중국에 파송된 윌리엄 번스 선교사
영국 장로교회 소속으로 중국에 파송된 윌리엄 번스 선교사 ©위키미디어

◇독신주의

선교사가 독신으로 지내야 하는가 결혼해야 하는가를 이론적으로 따져 결정하는 문제는 고기 먹는 것을 절제해야 하는가를 결정하는 문제보다 훨씬 어렵습니다. 이 문제에 합리적인 대답을 내놓으려면, 선교사가 사역하는 지역 사람들의 사회관계, 특히 남녀 간의 예의범절을 조사하고 이해해야 합니다.

그러나 주제가 주제이니만큼, 독신이라고 하는 금욕 형태를 논할 때는 고기나 술이나 신체 활동에 관련된 금욕을 논할 때보다 고려해야 할 점들이 많습니다. 본래 사도들은 모두 기혼자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사역에 유익할 경우에는 결혼하는 것이 합당하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모든 도시에서 적대적인 군중과 부닥쳐야 했고, 위험에서 벗어날 때가 거의 없었고, 당장 목숨을 건지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도망쳐야 했습니다. 바울은 그런 상황에서 오랜 시간 진지하게 숙고한 뒤, 자신의 사명에는 결혼이 적합하지 않다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그의 삶의 상황이 특수했기 때문입니다.

현대의 선교사들은 바울의 본을 따라야 할까요, 다른 사도들의 본을 따라야 할까요? 사람들은 이 질문에 서로 다르게 대답합니다. 하지만 쌍방의 대답에 나름대로 타당성이 있습니다. 사실, 하나님 나라를 위해 크게 쓰임 받을 수 있었지만, 결혼생활 때문에 능력을 발휘하지 못한 선교사들이 많았습니다. 그런 선교사들은 가정생활과 공적인 사명 두 가지 모두에 적절한 주의를 기울일 수 없는 환경에서 살았습니다. 그렇지만 그러한 사례 몇 가지를 근거로 보편적인 원칙을 세우는 것은 적절치 않습니다.

결혼은 하나님의 명령이고, 따라서 좋은 것입니다. 그 자체로 보면, 결혼이 독신보다 도덕적으로 더 좋습니다. 독신은 하나님께서 명하신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교도 민족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도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그것도 역시 좋은 것입니다. 우리가 이 두 가지 하나님의 좋은 명령을 행할 때, 그 두 가지가 서로에게 도움을 주거나 적어도 서로에게 해를 끼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또한 어느 하나 때문에 다른 하나가 엉망이 되든지, 아니면 둘 다 엉망이 될 수도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인생에서는 이 명령을 둘 다 적절하게 행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보고 결혼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복음 전파와 결혼, 이 두 가지 명령을 모두 따라도 삐걱거리는 부분이 없을 뿐 아니라 유익하다면, 자신이 택한 것과 정반대되는 해결책을 따르라고 요구합니다. 그것이 바울의 원칙입니다.

이하에서 저는 낭만 소설의 관점이 아니라 사도 바울의 관점에서 결혼에 관하여 논하고 싶습니다. 다른 말로, 결혼이 선교 사역에 미치는 영향에 관하여 말하겠다는 것입니다. 중국의 예의범절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적어도 선교사로 그 땅에 들어가길 바라는 사람은 그 땅의 예의범절에 관하여 잘 알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선교사가 중국인에게 선포하는 말보다 그들에게 보여주는 품행이 하나님 말씀을 더 힘 있게 선포하기 때문입니다.

선교사들은 자신들이 그리스도의 뜻을 위해 일한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선교사들의 설교보다 사교 생활이 토착민 사이에 그리스도의 뜻이 더 퍼지게 할 수도 있고, 그것을 방해할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선교사가 그리스도의 뜻에 해를 끼치지 않으려면, 그리고 적어도 토착민에게 무례를 범하지 않으려면 토착민의 예의범절을 알아야 합니다. 중국 사회에는 특수한 상황이 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는 기혼자로 선교 사역을 하는 것은 상당히 바람직하지 못합니다. 불가능하지는 않겠지만 말입니다.

선양1) 지방에 최초로 들어간 선교사는 현지 영사(領事)에게 중요한 정보를 들었습니다. 선양이 중국의 모든 도시 중에서 외국인에게 가장 적대적인 곳이라 생명이 안전하지 않을 것이라는 정보였습니다. 영사는 그곳에 머물려는 생각은 아예 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선교사에게 진심으로 촉구했습니다. 그 선교사는 미혼이었습니다. 따라서 자신의 목숨에 대해서만 생각하면 되었습니다. 기혼자였다면 가족의 안전과 하나님의 일이라는 상반되는 가치를 놓고 고민할 수밖에 없었을 테지만, 그의 마음에는 그런 걱정거리가 없었습니다. 그는 만주를 그리스도께 드리려면 선양 지방을 반드시 복음화해야 한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렇게 사명이 명확해진 이상, 무엇이 두려웠겠습니까? 당시 선양에는 40만의 영혼이 있었습니다. 그 선교사에게는 친구가 한 명 있었습니다. 전도를 돕게 하려고 그 선교사가 데려온 중국인 회심자였습니다. 그 선교사에게는 40만 명의 원수가 있었습니다. 그 원수들 가운데 한 사람이 나중에 회심하고 설교자가 되었는데, 그 사람은 분명히 말했습니다. “선교사의 뼈에 붙은 살까지 발라 먹을 정도로” 그 원수들의 증오심이 격렬했다고 말입니다.

정신이 올바로 박힌 사람이면 그러한 도시로 숙녀분을 데리고 들어가지 않을 것입니다. 설령 선교사가 부인을 데리고 그러한 도시에 들어간다고 해도, 마을 사람들과 어울려 사는 대신에 멀리 떨어진 곳에서 살면서 아주 가끔 짧게 마을을 방문한다면, 선교 사역을 제대로 감당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런 식으로 사역해서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은 적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어떤 사람이 윌리엄 번스(William Burns)2)처럼 순회 전도자가 되기로 선택하는 경우, 결혼하지 않는 것이 더 효율적입니다. 어디든지 그 사람이 있는 곳이 그 사람 집일 테니 말입니다. 그런 사람은 마음을 뒤숭숭하게 하는 근심거리도 없고, 진행 중인 일에 집중하지 못 하게 마음을 빼앗아 가는 애착도 없습니다.

어떤 사람이 순회 전도자의 삶에 뒤따르는 위험에 직면했을 때, 자신을 의지하는 타인을 고려해야 한다면, 그러한 근심 때문에 기운이 약해지고 의욕이 마비될 것입니다. 따라서 어떤 선교사가 선교지를 답사하거나 여행하거나 순회 전도자로 헌신하라는 부름을 받은 경우, 결혼하지 않는 것이 더 좋습니다. 만약에 그 사람이 토착민의 성향을 알 수 없는 선교지나 외국 선교사를 적대하는 성향이 있다고 알려진 선교지를 새로 개척해야 한다면, 결혼하지 않는 편이 더 좋습니다.

그러나 평범한 선교 사역을 하는 경우, 안수받은 목사이든 의료 선교사이든, 모든 선교사는 결혼한 남성이어야 합니다. 중국의 사교 예의범절은 매우 엄격하고 까다롭기 때문에 어떤 미혼 남성 선교사도 감히 여성에게 말을 걸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것이 그리 부적절한 예법은 아니라고 봅니다.

선교사는 중국인의 집에 들어갔을 때 남자만 바라보아야 합니다. 여성에게 말을 해도 안 되고, 여성을 주시해도 안 됩니다. 미혼 남성 선교사가 기독교인 여성을 집에 들이는 것은 합당하지 않습니다. 미혼 남성 선교사는 집에 여성을 들여 가르치면 안 됩니다. 기독교인 여성들이야 유익을 얻길 바라기 때문에 그러한 가르침에 참석하기를 마다하지 않겠지만 말입니다.

그러나 그런 만남은 주변의 사교계에 해로운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이 언제나 눈을 크게 뜨고 날카로운 혀로 비판할 뿐 아니라, 사람들 눈에 기독교인의 행실이 나쁘게 비치도록 어떻게든 꼬투리 잡을 준비를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와 매우 친한 중국인 친구 한 명은 지방 수령입니다. 그는 독일이 파리를 포위했을 때 특별 대사의 비서관으로 파리에 체류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서양의 큰 나라들을 모두 잘 알고 있었고, 각 나라의 정책에 대하여 대단히 식견이 깊었고, 각 나라의 지도적인 인물들과도 꽤 친분이 두터웠습니다. 대단한 지성을 소유한 데다가 세상을 폭넓게 경험한 그는 일주일에 한 번씩 저를 불러 중국의 정치 상황과 가망이 없어 보이는 중국 정부에 관하여 토론하곤 했습니다. 그는 열정적인 개혁가인 데다가 비밀리에 기독교를 믿는 신자였습니다.

중국의 기준으로 보면, 그는 완벽한 신사였습니다. 그는 우리 집에 왔을 때, 정원에 있는 제 아내를 때로 그냥 지나갔고, 제 아내의 존재를 의식한다는 것을 말로나 시선으로 절대 나타내지 않았습니다. 그는 제 아내도 불러 함께 대화하자고 요청하지도 않았고 대화 중에 제 아내를 언급하지도 않았습니다. 중국의 예의범절을 따라 그렇게 한 것입니다.

제가 그 사람 집을 방문했을 때, 그는 사랑방에서 저를 맞이했습니다. 그때 저는 그 집에 사는 어떤 여자도 보지 못했습니다. 한번은 그 신사의 아내가 사랑방 부근에 왔습니다. 저는 사랑방으로 통하는 모퉁이를 돌다가 우연히 그녀와 정면으로 맞닥뜨렸습니다. 저는 그녀가 누구인지 알고 있었고 그녀도 제가 누구인지 알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 순간 깜짝 놀라 중국의 예의범절을 잊고 말았습니다. 그녀가 거기에 없는 것처럼 그냥 지나가야 옳았는데, 저는 한 걸음 물러나 길을 터주며 상체를 낮게 숙여 인사했습니다. 그녀는 작은 발을 황급히 움직여 총총걸음으로 지나갔습니다. 아마 전에 한 번도 뛰어본 적이 없기 때문에 그런 걸음걸이로 지나갔을 것입니다. 그녀는 너무 당황해서 얼굴과 목까지 붉게 상기되었습니다. 저는 그녀를 못 본 체해야 했습니다. 저는 그 사회의 예의범절을 심각하게 위반하는 잘못을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당시에는 우리 교회에 나오는 중국인 기독교인 여성을 거리에서 만났을 때, 아는 내색을 하는 것조차도 예의범절에 어긋나는 행동으로 인식되었습니다.

그러나 선교사가 아내와 함께 있을 때, 중국인 여성 신자들은 거리낌 없이 선교사의 집을 방문하거나 공부하러 옵니다. 선교사가 아내와 함께 집에 있으면 기독교 교리를 배우고자 하는 여성들이 자유롭게 찾아옵니다. 선교사의 아내가 여성 신자들을 가르치는 일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더라도, 그녀의 존재 자체가 기독교를 배우고자 하는 여성들이 마음 놓고 선교사를 찾아오도록 길을 터주는 것입니다.

말할 필요도 없지만, 기독교인 여성이 선교사의 아내와 자녀의 어머니로서 동역하지 않으면, 중국 교회는 만족스러운 교회가 될 수 없습니다. 이러한 기독교인 여성을 얻기 위해서, 그리고 특별히 중국의 기독교인들을 가르치기 위해서 선교사는 반드시 결혼한 남성이어야 합니다. 현재 미혼 남성들이 중국에서 이러한 사명을 맡고 있지만, 그것이 공동체에 일반적으로 미치는 영향은 결혼한 남성이 선교사 사명을 맡아야 한다는 제 진술을 강력하게 뒷받침할 정도입니다.

중국인은 불교 승려이든 도교 승려이든 독신자 중국인을 경멸합니다. 그들이 외국인 독신자를 특별히 호의적으로 여긴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중국인은 어떤 의미, 어떤 상황에서도 독신을 존경할 만한 것으로 여기지 않습니다. 독신은 선교사가 몇 가지 중요한 일을 감당하는 데 분명히 방해됩니다.

[미주]

1) 선양은 중국 랴오닝성의 성도이자 동북 지역(옛 만주) 최대 도시이다.

2) 번스(William Chalmers Burns, 1815–1868)는 19세기 스코틀랜드 출신의 장로교 부흥(revival) 운동가이자 중국 선교사였다. 특히 허드슨 테일러(Hudson Taylor)에게 큰 영향을 준 인물로 알려져 있다. 그는 “내 마음의 간절한 소망은 아직 구세주에 대해 들어보지 못한 이들에게 영광스러운 구세주를 알리는 것입니다(The longing of my heart is to make known my glorious Redeemer to those who have never heard)”라는 명언을 남겼다.

발췌: 존 로스 선교사의『만주선교 방법론』
번역: 순교자의 소리(www.vomkorea.com), 감수: 리진만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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