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한 세대 만에 서양식 근대화에 성공하고 제국주의로 성장한 일본의 힘은, 메이지유신을 통해서 국정개혁과 서양식 문물제도를 적극적으로 수용했기 때문이다. 이 두 가지를 할 수 있는 정신적 뿌리가 선견자를 길러낸다는 요시다 쇼인이다.
야마구치현 하기시에 쇼카 손주쿠라는 학당을 1830~1859년에 걸쳐서 세우고 이토 히로부미, 야마가타 아리토모, 기도 타카요시 등 메이지유신의 주역들을 가르치고 키워냈다. 하기는 시모노세키에서 4시간 거리의 외진 곳이다. 일본은 이곳을 유신의 고장이며 일본 근대화가 시작된 땅이라며 포스터를 걸어놓고, 요시다 쇼인 신사에는 수많은 일본인이 계속 참배를 한다.
인구 5만의 하기시에서는 9명의 총리가 배출되었다. 요시다 쇼인의 신사에서 150주년 기념식을 하면서, 곤도 관장은 하기가 일본의 근대화를 주도한 것은 쇼인의 신분과 관계없이 제자를 받고 교육의 폭과 수준을 높였기 때문이라고 했다.
조선 정부는 시모노세키 조약을 지지하고 반겼다. 조약 1조가 조선이 완전무결한 자주독립임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당시 조선은 약관의 원세계(위안스카이)를 조선에 파견해서 내정과 외교에 간섭하고 맹목적이던 조공관계(종속)를 실질적인 속국관계로 전환하려는 청나라에 강한 반감을 가지고 있었다.
시모노세키 조약으로 조선 정부는 청국 사신을 맞이하던 서대문 밖에 영은문을 헐어내고 삼전도비를 쓰러트리고 파묻어버렸다. 병자호란 때 자결한 김상용의 후손 김가진은 이제야 여러 왕대에 걸쳐서 당한 능욕을 씻고 사사로운 원수도 갚게 되었으니, 이것이 개화의 이익이라고 했다.
그러나 이것은 김가진의 순진한 생각이며 조선 정부의 무능한 증거였다. 일본이 조선을 자주독립국으로 확인한 이유는 조선을 청국의 세력권에서 떼어내서 일본의 식민지를 만들기 위한 첫 번째 수순이었다.
당시 더욱 한심한 것은 조선 정부가 이러한 위험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것이다. 총리대신 김홍집과 군무대신 조희연은 “일본이 청국과 전쟁을 시작한 것은 우리의 고유한 독립권을 인정하여 동양의 평화를 유지하려는 뜻에서 나온 것”이라며, “일본의 군사들이 바다와 육지에서 청국을 크게 이기는 공로를 이룩했으니 특별히 칙사를 파견하자”고 건의하였다. 깊은 잠에 빠져 급속히 변화하는 국제 정세를 읽지 못한 무지의 발언이다.
조선 정부가 이렇게 무지하게 오판하고 안일했던 모습은 1937년 순번로 앞에 세워진 일본과 청국의 강화기념관에서 확인된다. 조선통신사 상륙 기념에서 멀지 않은 곳에 일청강화기념관이 있고, 건물 옆에 이토 히로부미와 외무대신 무쓰 무네미쓰의 동상을 세워놓은 기념관에는 강화회담 당시 양국 대표가 앉았던 탁자와 의자를 이름표와 함께 재현해 놓은 것이 보인다. 조선 땅에서 벌어진 전쟁의 마무리를 위한 것이었고 조선의 운명을 좌우하는 회담이었지만, 조선 대표와 관계자의 이름은 없었다. 이렇게 격변하는 국제 정세와 일본 침략의 의도를 읽지 못한 조선 정부는 결국 이후 열강들이 벌이는 파워게임의 흙탕물 속에서 눈치 보고 살아남기 위해 역사의 소용돌이 속으로 휩쓸리고 말았다.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진솔한 대화가 미래를 보장한다고 했다. 일본이 우리보다 겨우 30년 앞선 개혁개방으로 근대화에 성공한 이유가 국정개혁과 서양식 민주정치였지만, 여기에 원동력이 된 것은 총리 9명을 배출한 하기시의 정치학당이었다. 이곳에서 신분과 문벌에 관계없이 제자를 양성하고 공교육의 수준을 높였기 때문임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 그러나 지금도 일부 정치인들은 개천에서 가재, 붕어, 개구리로 사는 것도 괜찮다며, 누구나 용이 되려고 노력할 필요는 없다고 한다.
신분과 문벌에 관계없이 인재를 양성하고 국가 공교육의 수준을 높이고, 누구나 뜻을 세우고 노력하면 꿈을 이루는 다음세대의 기대가 충족되는 대한민국이 되어야 한다는 것은 150년 전이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 그런데도 지금 우리는 조선 말의 무능한 관리들과 부패한 정치권과 무엇이 달라졌는지 심히 염려가 된다.
그리고 부패하고 무능한 거대한 청나라는 시모노세키 조약으로 그들이 그토록 무시한 섬나라 일본에 무릎을 꿇는다. 또 류구와 대만, 랴오둥 반도를 일본에 상납하고 조선을 포기하고 2만 냥의 배상금을 헌납했다. 국가 안보가 없이는 경제도, 인권도, 국민의 안전도 없는 것이다. <끝>
이범희 목사(㈔한국보훈선교단 이사장, 6.25역사기억연대 역사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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