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메이지유신으로 인한 막부와 농민들의 반발을 잠재우고자 ‘정한론’을 내세워 교활하고 철저하게 조선 정복을 계획하고 실시했다. 1873년 정한론을 시작으로 1874년 대만정복, 1875년 강화도 조약, 1894년 조선 침략과 청일전쟁, 1895년 명성황후 시해, 1904년 러일전쟁으로 류큐 왕국과 대만과 조선을 병합시키고 지배하기 시작했다.
5천 년의 역사와 문화를 자랑하는 조선을 강제로 합병시킨 5가지 조약이 있었으며 이 조약을 보는 한일 학계의 시각은 서로 다르다.
1. 시모노세키 조약
시모노세키 조약은 동아시아의 전통적 질서였던 조공과 책봉 체계를 와해시키고 메이지 일본의 대륙침략을 본격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약해진 청나라를 서구 열강이 분할 점령하여 청은 붕괴되고 반식민지가 되었고, 조선의 멸망과 일본의 식민지가 되는 첫 단추가 시작되었다. 근대 일본의 정치적 정책은 군사적 침략으로 결정짓는 계기가 되었다.
한국학계에서 이태진 서울대 명예교수는 “자력은 아니지만 이러한 조약으로 조선이 청나라의 간섭에서 독립이 된 이후 대한제국으로 거듭나서 개혁의 의지를 보였다. 하지만 일본의 계획적이고 장기적인 침략 정책으로 결국 식민지로 전락하고 말았다. 고종은 개혁 성향의 군주이며, 일본의 강제합병이 지닌 침략성”을 강조했다.
김도형 전 연세대 교수는 “일본의 불법 부당성은 아주 잘못된 것이지만, 고종이 을시늑약에 애매한 태도로 일관했고 광무개혁을 전후한 내우외환 시기에 적절한 대응을 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일본학계에서 다카하시 히네나오 전 교토대 교수는 “청일전쟁과 러일전쟁, 조선합병, 중일전쟁, 태평양전쟁에 이르기까지 계획된 것이 아니었다. 국제적 상황에 따라 어쩔 수 없이 국가 안위를 위해서 자위책이었을 뿐이었다”고 1980년 이후에 세상이 다 아는 거짓 주장을 하고 있다. 또 조작된 방대한 자료를 들이대며 “조선침략과 청일전쟁 등 모든 계획이 없었다. 국제적 상황에 따라 일본이 왕위를 위한 자구책이었다”고 주장했다.
이노우에 키요시 전 교토대 교수 등 일부는 일본이 벌인 전쟁은 철저한 계획에 따라 진행한 제국주의적 침략이라고 했다.
1895년 3월 20일 청일전쟁을 마무리 짓기 위해서 시모노세키에 도착한 청나라 북양대신 리홍장은 4일 뒤 숙소인 정토종 사찰 인금지 부근에서 일본 청년에게 총격을 당했다. 왼쪽 눈 밑에 11cm 상처를 입은 그는 황급히 피신해서 긴급수술을 받았다. 간신히 몸을 추스른 그는 숙소에서 회담 장소인 고급 음식점 순반로까지 언덕길을 힘겹게 오가며 회담 타결에 매달렸다.
450년의 역사를 지닌 인금지는 조선통신사도 머물렀던 대사찰이다. 주지승인 에도는 리홍장이 탄 가마가 무거워서 가마꾼이 휘청거렸다고 했다. 10분 거리에, 둘이 걷기도 힘들 정도로 좁은 길이다. 지금은 이 도로를 리홍장로라고 부르며 관광지화하고 있다.
이곳을 회담장으로 정한 것은 일본의 전략인 것이다. 일본 측 수장인 이토 히로부미가 일본 군함을 바다에 늘어놓고 위세를 과시하기 위해서 이곳을 정했다고 한다. 청나라의 실력자 리홍장이 이곳에 힘들게 온 것은 지난 10년간 일어난 두 나라의 위상 역전을 잘 말해 주고 있다. 1885년 실패로 끝난 갑신정변의 뒤처리를 위해서 천진조약을 맺을 당시, 리홍장은 이토 히로부미를 중국으로 불렀다. 그러나 이번에는 리홍장이 이토 히로부미를 만나러 바다를 건넜던 것이다.
1894년 7월 20일 충남 아산만 풍도 앞바다에서 일본 왜군이 청국 군함을 기습 공격하며 시작된 청일전쟁은 이듬해 3월 일본의 완승으로 끝났다. 일본은 청나라의 수도 베이징을 위협할 수 있는 보하이만과 츠리 해협을 장악한 데 이어서 랴오둥반도까지 점령했다.
일본은 1895년 4월 17일까지 계속된 이 회담에서 조선의 독립(?)과 랴오둥반도, 타이완, 펑후열도를 할당받고 배상금 2억 냥의 요구를 관철시켰다. 1853년 미국의 페리 제독이 흑선을 끌고 와서 일본을 강제로 개국시킨 지 40여 년 만에 서양에 맞먹는 강국이 된 것이다. 불과 한 세대 안에 서양식 근대화에 성공하고 제국주의로의 성장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계속>
이범희 목사(㈔한국보훈선교단 이사장, 6.25역사기억연대 역사위원장)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press@cdaily.co.kr
- Copyright ⓒ기독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