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크리스천포스트(CP)는 기독교 변증가이자 작가인 로빈 슈마허의 기고글인 ‘하나님이 사람들을 죽을 만큼 두렵게 하신 날’(The day God scares people to death)을 4일(현지시각) 게재했다.
기독교 변증가로 활동하고 있는 슈마허는 작가로도 활동하면서 많은 책을 냈고 미국 내의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있다. 다음은 기고글 전문.
필자에겐 아내를 깜짝 놀라게 하며 살금살금 다가가 가볍게 툭 치는 나쁜 습관이 있다. 그러면 아내는 아기 익룡처럼 비명을 지르곤 한다. 필자에게는 재밌지만, 최근에야 알게 된 사실은 이런 행동이 실제로 사람을 ‘죽게’ 만들 수도 있다는 점이다.
우리는 "놀라서 죽겠다"는 표현을 아무렇지 않게 쓰지만, 조건만 맞으면 실제로 공포로 인해 사람이 쓰러져 죽을 수 있다. 특히 심장 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이라면 더욱 그렇다.
뉴욕 렉스힐 병원의 여성 심장 건강 프로그램 책임자인 수잔 스타인바움 박사는 이렇게 말한다. “사실 어떤 감정이든, 공포든 다른 것이든, 극도의 감정 상태는 사람을 죽게 만들 수 있다.” 그녀에 따르면, 뇌는 어느 정도의 공포 자극에는 잘 대응하도록 진화했지만, 극도의 공포를 경험하게 될 경우에는 우리의 신체가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게 된다. 공포가 극심할 경우, 우리 몸은 ‘투쟁-도피 반응(fight-or-flight response)’을 일으키며, 혈류에는 아드레날린 같은 스트레스 호르몬이 분비되고, 심박수, 혈압, 호흡률이 급상승하게 된다. 대부분에게는 이 반응이 일시적이고 치명적이지 않지만, 심혈관계가 약한 이들에게는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으로 인해 심장 근육이 약화되는 ‘부러진 심장 증후군(Takotsubo cardiomyopathy)’도 있다. 이 증후군은 심장마비와 유사한 증상을 보이며 실제로 사망에 이를 수 있다. 즉, ‘공포로 죽는다’는 표현은 과장이 아니라 과학적으로도 사실일 수 있다.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실제로 사람들을 ‘공포로 죽게 하시는’ 날이 올 것이라는 내용이 있다. 필자는 그 내용을 소개하고자 한다.
다가오는 전 인류의 공황 발작
우리는 흔히 미래의 일들에 대해 계시록에서 해답을 찾지만, 구약에도 동일한 내용이 담겨 있다는 점을 잊곤 한다. 구약과 신약은 하나의 동일한 이야기, 동일한 메시지를 전하며, 인류 전체가 공포에 질려 죽게 되는 사건 또한 마찬가지다.
계시록 6장은 일곱 인 중 여섯 번째 인이 떼어지면서 발생하는 사건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내가 보니 여섯째 인을 떼실 때에 큰 지진이 나며 해가 총담같이 검어지고 온 달은 피같이 되며 하늘의 별들이 무화과나무가 대풍에 흔들려 설익은 열매가 떨어지는 것 같이 땅에 떨어지며 하늘은 두루마리가 말리는 것 같이 떠나가고 각 산과 섬이 제자리에서 옮겨지매 땅의 임금들과 왕족들과 장군들과 부자들과 강한 자들과 각 종과 자주자가 굴과 산들의 바위 틈에 숨어 산들과 바위에게 말하되 우리 위에 떨어져 보좌에 앉으신 이의 얼굴과 어린 양의 진노에서 우리를 가리라 그들의 진노의 큰 날이 이르렀으니 누가 능히 서리요 하더라.” (계 6:12–17)
이와 동일한 사건은 이사야서에도 여러 번 등장한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레와 지진과 큰 소리와 회오리바람과 폭풍과 맹렬한 불꽃으로 너희를 징벌하실 것이라.” (사 29:6),
“보라 여호와의 날이 잔혹히 분노와 맹렬한 진노로 이르러 땅을 황폐하게 하며 그 중에서 죄인들을 멸하리니 하늘의 별들과 별 무리들이 그 빛을 내지 아니하며 해는 돋을 때에 어두우며 달은 그 빛을 비추지 아니할 것이로다. 내가 세상의 악과 악인의 죄악을 벌하며 교만한 자의 오만을 끊으며 강포한 자의 거만을 낮출 것이며 사람을 순금보다 희소하게 하며 인생을 오빌의 금보다 희귀하게 하리로다.” (사 13:9–13)
예수님도 동일한 종말의 공포를 이렇게 묘사하셨다. “해와 달과 별들에는 징조가 있겠고 땅에서는 민족들이 바다와 파도의 성난 소리에 혼란 중에 공포에 질려 기절하리라.” (눅 21:25–26)
여기서 “기절하다”로 번역된 헬라어는 ‘아포프쉬코(apopsuchō)’인데, 이는 문자 그대로 ‘숨을 내쉬다’, ‘생명을 잃다’라는 의미로, 어떤 번역에서는 “사람들이 공포로 인해 심장이 멎는다”고 해석되기도 한다. 이는 오늘날 의학적 사실과도 일치한다.
죽기를 구하는 기도
존 맥아더 목사는 여섯째 인이 풀릴 때 사람들의 반응을 이렇게 묘사한다. “이것은 역사상 가장 큰 기도 모임이 될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산과 바위에게 기도한다. 그들에게 무너져 내려 자신들을 덮어달라고 기도한다. 즉, 자살을 구하는 기도다. 그들은 차라리 죽고 싶어한다.”
여섯째 인이 열릴 때, 사람은 즉사하거나, 아니면 차라리 죽기를 바란다. 이것이 히브리서에서 말하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손에 빠져 들어가는 것은 무서운 일이다”(히 10:31)는 진술을 완전히 실감케 한다.
오늘날 복음주의 진영에서는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할 분으로 묘사하는 일이 드물다. 하지만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라고 성경은 분명히 말한다(시 111:10). 심판의 공포로 시작된 두려움은 결국 하나님의 자비와 용서를 깨달은 감격으로 전환되며, 그것이 바로 진정한 경외심이다.
“그러나 주께는 용서하심이 있음을 인하여 주를 경외하심이 있나이다.” (시 130:4) 결국 누구일지라도 신자든, 무신론자든, 불가지론자일지라도 하나님을 경외하게 된다. 문제는 ‘어떤 방식으로’ 경외하느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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