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중서부에서 800년 가까이 존재했으나 백제에 병합되며 역사 속에서 잊힌 고대 연맹왕국 마한. 이 사라진 문명에 대한 탐색이 작가 정은영의 발길을 따라 되살아나고 있다. 세종도서에 선정된 『잊혀진 나라 가야 여행기』의 저자 정은영은 이번에 『마한 여행기』를 통해 고향 남도의 땅을 직접 밟으며 우리 민족 정체성의 뿌리를 다시 묻는 여정을 펼친다.
정 작가는 이 책에서 단순한 고고학적 탐구나 역사 서술을 넘어서, 개인의 정체성과 한국인의 근원을 찾아가는 감성적 기록을 남겼다. 2021년부터 2024년까지 3년간 익산, 고창, 광주, 나주, 해남, 신안 등지를 걸으며 마한의 흔적을 기록했다. 그 여정은 기록과 상상, 현재와 과거, 역사와 일상을 넘나드는 다층적인 구조로 전개된다.
책의 1부는 마한의 땅을 직접 걷는 여정이다. 영산강 유역을 따라 이어지는 순례 같은 여행 속에서, 나주의 반남 고분군과 복암리 아파트형 고분, 영암의 내동리 쌍무덤, 무안과 목포의 하구 유적, 신안의 해안 무덤 등 마한의 주요 유적지들이 감성적 시선과 사진 자료로 소개된다. 이 여정은 단순한 역사 기행이 아니라, 정체성의 원형을 되짚는 사유의 시간으로 확장된다.
2부는 마한을 상상하고 재구성하는 시간이다. 옹관묘, 금동관, 금동신발, 신창동 현악기, 구슬과 문신, 동물과의 교감 등 다양한 테마를 통해 마한의 생활 문화와 정신세계를 복원한다. 마한 여성 리더의 존재, 왕인 박사의 정체성, 일본 요시노가리 유적과의 비교 등은 기존 고대사에 새로운 해석을 제시한다.
정은영 작가는 문화체육관광부 공무원이자 고고학 전공자로, 이번 책을 통해 "잊힌 것을 환대하고 기록하는" 자신의 여정을 이어간다. 마한은 단순한 고대 지역국가가 아니라, 오늘날 '대한민국'과 '한민족'이라는 명칭 속에 남은 '한(韓)'의 기원을 보여주는 문화적 근간이라는 것이 그의 시선이다.
그는 마한을 공동체 중심의 자율적 사회로 그려낸다. 중앙집권 대신 느슨한 연맹체, 혈연 중심의 다장(多葬) 풍습, 자궁을 상징하는 대형 옹관, 포용과 연대를 바탕으로 한 공동체 문화는 오늘날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저자는 "사납고 용맹하다"는 마한인의 평이 단순한 호전성이 아니라, 억압과 불의에 저항하는 본능적 힘이라며, 이것이 이후 동학농민운동과 광주민주화운동으로 이어졌다고 해석한다.
마한의 문화는 오늘날 K-컬처의 원형으로도 주목된다. 구슬을 금보다 귀하게 여긴 미의식, 문신과 장신구, 음악과 제천 행사 등은 현대 축제 문화와 연결되며, 고대 문화의 연속성과 다양성을 보여준다. 국립나주박물관에 전시된 거대한 옹관, 정촌 고분의 금동신발과 금동관 등은 마한 문화의 정수로 생생하게 그려진다.
특히 저자는 자신의 유년기 기억이 서린 함평에서 마한 유적과 조우하며 장소에 대한 깊은 애정과 역사적 책임감을 확인한다. 이 감정은 단순한 향수가 아니라, 오래된 것들에 대한 존중과 현재로 되살리려는 복원의지로 이어진다.
『마한 여행기』는 단순한 역사서를 넘어, 정체성의 기원을 향한 인문학적 탐사이자, 잊힌 존재에 대한 애정 어린 복원의 기록이다. 영암이 스스로를 "마한의 심장"이라 부르며 역사성을 환기하듯, 이 책은 과거의 마한이 오늘의 우리에게 던지는 묵직한 질문이자 오래된 메시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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