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기획위원회(국정위)가 통일부 명칭에서 ‘통일’을 삭제하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 중이란 소식이 알려지면서 이재명 정부가 통일을 포기한 게 아니냐는 논란이 일고 있다. 주된 이유가 남북관계 개선의 물꼬를 트기 위해서라는데 결과적으로 북한이 선언한 ‘적대적 두 국가론’을 수용하는 꼴이 된다는 점에서 섣불리 결정할 사안이 아니란 지적이 나온다.

국정위가 통일부 대신 거론된다고 밝힌 명칭이 ‘한반도 평화부’, ‘남북관계부’, ‘남북협력부’ 등이다. 지난 대선 과정에서 일부 시민단체들이 통일부 명칭 변경 제안과 함께 이런 이름들을 건의했었고, 대선 후에도 일부 재외동포 단체를 중심으로 구체적인 이름이 거론됐다고 한다.

이런 기류에 통일부까지 동조하는 분위기다. 통일부 차관이 최근 국회에 나와 “현재 상황 변화를 고려해 명칭 변경 여부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가 그동안 내부와 외부에서 여러 가지로 나왔다”며 “그런 상황을 전반적으로 고려해 검토를 할 계획”이라고 밝힌 데서 알 수 있다.

그런데 국정위가 통일부에서 ‘통일’이란 명칭을 빼려는 이유부터가 영 석연치 않다. 윤석열 정부가 대북 강경 노선을 고집한 탓에 ‘통일’이 북한에 ‘흡수통일’을 연상케 한다는 거다. 이 말인즉슨 북한의 거부감을 없애기 위해 통일부에서 ‘통일’을 빼겠다는 건데 북한 눈치 보기의 전형이란 말이 나온다. 이런 논리에 수긍할 국민이 몇이나 되겠나.

남북통일을 목표로 협력 사업과 정책을 추진해온 통일부에서 그 근간인 ‘통일’을 빼는 건 단순한 기구 개편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부처가 추진해 온 정책의 방향을 ‘통일’에서 ‘평화’ 또는 협력, 지원 등으로 바꾸겠다는 구상이란 점에서 본말이 완전히 전도됐다고 할 수 있다.

국정위는 어떻게 해서든 남북관계 개선의 물꼬를 트겠다는 것이 핵심이란 점을 내세우고 있다. 그렇다고 이게 모든 걸 덮고 이해하고 넘어갈 성질인가. 결과적으로 북한의 ‘적대적 두 국가’ 체제를 수용한다는 시그널을 북한 등 국내외에 줄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위험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통일부 명칭 변경 논란이 확산하면서 통일 전문가들 사이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평화적 통일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추진해야 할 정부가 본연의 임무를 포기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당장 거론되는 문제가 위헌 시비다. 헌법 제4조에 ‘대한민국은 통일을 지향하며,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추진한다“라고 규정돼 있다. 헌법이 ‘평화적 통일의 사명’을 부여했는데 정부가 그 사명을 정책 과제에서 지우려는 것부터가 헌법 정신에 부합하지 않는다.

잇단 논란에 급기야 문재인 정부에서 통일부 장관을 지낸 이를 비롯해 여권 인사들까지 우려를 나타냈다. 통일부란 이름이 국민 다수의 합의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는데 이를 정권의 입맛대로 바꾸면 새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간판을 붙였다 떼었다 하는 악순환이 반복될 거란 지적이다.

정부가 통일부에서 ‘통일’을 빼려는 건 국정위 설명대로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끌어내려는 데 주안점이 있어 보인다. 그런데 ‘통일’을 빼고 다른 이름을 붙인다고 해서 북한이 호응해 올 거란 기대에 회의적인 시각이 적지 않다. 통일 전문가들 사이에선 오히려 대북 협상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우려하고 있다. 통일을 지향하는 부처가 북한을 일방적으로 도와주는 부처로 전락하게 될 거란 거다.

이 시점에서 전문가들이 하나같이 입을 모아 걱정하는 게 있다. 북한이 포기한 건 ‘평화통일’이지 ‘적화통일’이 아니라는 거다. 그러니 제발 착각하지 말란 거다.

북한 김정은은 2023년 12월 말 개최된 제5차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남북관계를 ‘동족 관계’가 아닌 ‘적대적 두 국가관계’로 규정했다. 동시에 “유사시 핵무력을 포함한 모든 물리적 수단과 역량을 동원하여 남조선 전 영토를 평정하기 위한 대사변 준비에 계속 박차를 가해나가자”라고 했다. 이는 평화적인 통일 대신 핵무기를 앞세워 적화통일을 달성하겠다는 위협이다.

최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인사청문회에서 정동영 통일부 장관 후보자는 통일부 명칭 변경의 필요성을 언급하면서 “북한이 주적이냐”는 질문에 “주적이 아닌 위협”이라고 했다. 그런데 북한을 ‘주적’으로 규정한 건 지난 1995년 국방백서때부터고 가장 최근에 발간된 2022 국방백서에도 “북한 정권과 북한군은 우리의 적”이라고 분명히 명시돼 있다.

통일 관련 정책과 사업을 담당할 주무장관 후보자의 이런 발언은 북한 김정은이 지난해 2월 “한국 괴뢰 족속들을 우리의 전정에 가장 위해로운 제1의 적대 국가, 불변의 주적”이라고 규정한 사실에 비쳐 볼 때 위험하기 그지없다. 대한민국을 콕 찍어 ‘불변의 주적’이라고 규정한 집단을 단지 위협으로 간주하는 사람이 통일부 장관이 되는 걸 북한 김정은 집단이야 반기겠지만 통일을 염원하는 북한 주민들과 국민의 속은 까맣게 타들어 가지 않겠나.

북한 김정은 체제는 6.25 전쟁 이후 오랜 분단 상황에서 체제 경쟁에서 남한에 완전히 뒤처지자 경제·문화·군사적으로 흡수될까 두려워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그것 때문에 선대의 유지인 적화통일 달성을 위해 최후 수단인 핵무기에 목을 매는 것이다.

정부가 이런 북한 상대로 대화의 자리로 불러내기 위해 다양한 방안을 강구할 필요는 있다. 하지만 북한의 주장에 동조하는 모습을 보이는 건 북한의 오판을 부를 수 있다는 점에서 극히 조심해야 한다. 특히 북한을 상대하면서 실체 없는 ‘평화’ 환상에 사로잡히는 건 지난 문재인 정부의 실패를 반복하게 된다는 점에서 절대 금물이다. 그런 점에서 통일부에서 ‘통일’을 빼는 건 정부 스스로 ‘통일’을 포기하는 선언인 동시에 북한 주민의 간절한 소망을 내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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