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I. 신약의 속죄

김영한 박사
김영한 박사

신약성경에서 복음서 저자들과 사도들은 예수의 죽음이 단지 의인의 무죄한 죽음만이 아니라 인류의 죄를 속하는 하나님 아들의 대속(代贖, atonement)의 죽음이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예수는 자신이 죄인의 대속을 위하여 십자가에 못박히신다고 수차례 고난에 대한 예언을 하셨다.

1. 복음서 저자들의 증언

예수는 제자들과 다락방에서 최후의 만찬을 하시면서 앞으로 자신의 죽음이 지니는 대속의 의미를 기념하라고 당부하셨다: “그들이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받으라 이것은 내 몸이니라 하시고, 또 잔을 가지사 감사 기도하시고 그들에게 주시니 다 이를 마시매, 이르시되 이것은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막 14:22-24). 예수가 십자가에서 흘리는 피는 인류의 속죄를 상징하는 언약의 피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운명하실 때 누가는 “성소의 휘장이 한가운데가 찢어졌다”(눅 23:45)고 기록한다. 그리고 마태는 “성소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서 둘이 되고”(마 27:51)라고 기록하고 있다. 성소와 지성소 사이를 가리는 휘장(揮帳)이 찢어졌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대속(redemption) 안에서 옛 성전과 희생 제의 시대가 끝나고 어린 양 예수로 인한 예배의 시대가 도래한 것과 예수 안에서 선민 이스라엘과 이방인 사이의 구분이 철폐되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이는 십자가 대속(代贖)을 통한 새 언약의 개통을 의미한다. 화해자 예수 안에서 하나님에게 나아가는 통로가 자유로와졌다. 대제사장 예수의 이름으로 누구나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예수는 이미 그의 복음전파 시에 이 사실을 예언하셨다. 예수는 가버나움에서 이방인 백부장의 믿음을 보시고 앞으로 이방인의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고 예언하셨다;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동 서로부터 많은 사람이 이르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천국에 앉으려니와, 그 나라의 본 자손들은 바깥 어두운 데 쫓겨나 거기서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마 8:11-12). 이 예언은 성소의 휘장이 찢어짐으로써 가시화되었다.

예수께서 운명하시고 난 후에는 무덤이 열리고 무덤 속의 성도들이 부활하는 사건들이 일어났다. 복음서 저자 마태는 이 영적 사건을 다음같이 기록하고 있다: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지고, 무덤들이 열리며 자던 성도의 몸이 많이 일어나되, 예수의 부활 후에 그들이 무덤에서 나와서 거룩한 성에 들어가 많은 사람에게 보이니라”(마 27:52-53). 이러한 사건들은 예수의 죽음이 지니는 대속적이고 우주적 의미를 시사(示唆)하고 있다.

사도 요한은 그의 복음서에서 세례자 요한이 예수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고 한 증언을 기록하고 있다: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요 1:29). 그리고 사도 요한은 예수께서 니고데모와의 담화에서 예수 자신이 세상을 구원할 하나님의 독생자라고 천명한 말씀을 기록하고 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 3:16). 그리고 사도 요한은 예수가 자신을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선한 목자라고 한 증언을 기록하고 있다: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요 10:11-15b). 또한 사도 요한은 예수가 자신의 죽음이 세상 죄의 대속을 위한 자발적으로 목숨을 버린다는 말씀을 기록하고 있다: “내가 내 목숨을 버리는 것은 그것을 내가 다시 얻기 위함이니 이로 말미암아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느니라. 이를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나는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으니 이 계명은 내 아버지에게서 받았노라”(요 10:17-18). 여기서 사도 요한은 예수의 십자가 죽으심이 이 세상의 구속을 위한 화목제물임을 증언하고 있다.

사도 요한은 그의 서신에서 예수 안에 있는 태초의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 증언한다: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주목하고 우리 손으로 만진 바라. 이 생명이 나타내신 바 된지라.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보았고 증거하여 너희에게 전하노니 이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 바 된 자니라”(요일 1:1-2). 신체로 나타나신 태초의 말씀은 사도 요한이 증언하고 있는 하나님의 독특성이다. 요한이 증거하는 하나님은 스스로 신적 존엄 속에만 계시지 아니하시고 자신을 낮추시어 인간의 모습으로 오셔서(요 1:14) 죄인과 연대하시고, 죄인들을 위하여 스스로 자기의 생명을 내어주시고 대속하신 사랑의 하나님(요 3:14; 요 6:53)이시다. 하나님은 그의 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심으로 죄인과의 연대를 보여주신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 아들은 죄인을 위하여 희생제물이 되시어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이다. 이 하나님 아들의 속죄사건이 바로 나사렛 예수의 역사성과 진실의 내용이다.

2. 바울의 증언

바울은 고린도교회에 보낸 서신에서 하나님의 구속의 섭리가 나사렛 예수의 십자가 죽으심에 의하여 실현된 것을 증언하고 있다. 바울은 그가 전도하여 세운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예수께서 제정하신 성만찬의 말씀을 회상시키고 있다: “내가 너희에게 전한 것은 주께 받은 것이니 곧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이르시되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식후에 또한 그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고전 11:23-25). 사도 바울은 성만찬 예식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죽으심에 의한 대속의 진리를 기념하는 것이라고 증언한다. 성만찬은 예수의 죽으심에 기초해서 세워진 구원에 대한 새로운 언약의 상징이다.

바울은 로마서에서 화목제물이 되신 하나님 아들 예수에 의한 대속의 진리를 증언한다: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 제물(ίλαςτήριον, propitiation)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롬 3:25). 화목 제물로 번역된 희랍어 힐라스테리온(ίλαςτήριον)은 히브리어로는 카포랫(kapporät)이다. 카포랫은 언약궤(言約櫃)의 덮개를 가리킨다. 이 덮개는 그 위로 여호와께서 구름에서 나타나신 장소다. 이 언약궤의 덮개는 하나님이 신비롭게 현존하시는 장소다. 이 거룩한 장소에 화목 제물로 도살된 짐승의 피가 뿌려졌다. 그 짐승의 피는 제물을 바친 사람의 생명을 대신하여 하나님께 바쳐진 것이다. 이는 인간의 죄를 담당한 희생 제물의 피가 속죄제물로서 하나님 앞에 드려지면서 그 피의 희생을 드린 자의 죄가 제거되는 것이다. 바울은 이 화목제물을 십자가에 달려 피를 흘리시고 그의 생명을 드린 예수에게 적용시킨다. 예수가 십자가에서 속죄제물이 되심으로 모든 인간의 죄와 허물을 담당하신 것이다.

복음의 진리란 하나님이 그의 아들을 화목제물로 주신 대속(代贖)의 진리이다. 하나님의 독생자(the one and only Son)가 이 세상의 죄를 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우리의 죄를 속량(贖良)하셨다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 안에서 인간이 되신 이유이다. 나사렛 예수는 누구인가? 그는 바로 인간이 되신 태초의 하나님의 말씀이었고, 세상의 죄를 속량하시기 위하여 인간이 되셔서 속량제물로 자신의 생명을 내어주신 하나님 아들이시다. 복음서는 나사렛 출신인 예수의 인격과 삶 속에서 하나님이 인간의 구원을 위하여 이 세상에 오셨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하나님의 오심은 나사렛 예수 안에서 역사적 형태와 몸의 형태로 주어졌다.

나사렛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세상에 들어오셔서 죽으셨다. 말하자면, 하나님 자신이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십자가에서 치욕(恥辱)의 죽음을 당하였다. 초대교회 그리스도 찬가(Christus Hymnus)는 다음같이 노래한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 2:5-8). 사도 바울은 이 증언을 그대로 수용하고 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갈 3:13).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속량하기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우리의 저주를 대신 받으셨다. 히브리서 저자도 다음같이 증언한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히 12:2). 하나님은 이러한 저주를 받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죽음에서 다시 일으키시고 하나님 우편 보좌에 앉으시도록 하셨다.

김영한(기독교학술원장, 샬롬나비 대표, 숭실대 기독교학대학원 설립원장,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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