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시지 순례
도서 「메시지 순례」

1832년 고대도에 칼 귀츨라프가 도착하여 선교의 문을 두드렸을 때에 아직 이 땅은 복음의 문이 열리지 않았습니다. 1866년 대동강에서 다시 한번 토마스 목사가 성경을 전하며 복음을 전하고자 하였을 때에도 여전히 이 땅은 복음에 관하여 준비되지 않았습니다. 사람의 열심이 있었지만 아직 하나님의 때는 아니었습니다. 그렇다고 이러한 수고와 헌신이 무의미하다는 것은 아닙니다. 씨를 뿌린다고 하여서 당장에 열매를 맺는 것은 아닙니다. 또한 씨를 뿌림이 없이 열매를 맺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마침내 매클레이가 고종 황제로부터 선교 윤허를 받고 1885년 4월 5일, 언더우드와 아펜젤러 부부가 이 땅에 발을 디디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전후에 일어난 사건에 대해서 너무나 아는 것이 없습니다. 물론 학자나 연구가 손에 의해 기록된 많은 글들이 있지만 여전히 우리들의 손이 닿기에는 너무 멀게만 느껴집니다. 이에 이 작은 책자를 통해서 조선 선교의 일들에 관하여 살피고자 합니다. 그 안에 풍성한 하나님의 섭리를 바라보고자 합니다.

임경묵 – 메시지 순례

넷플릭스가 삼켜 버린 기독교
도서 「넷플릭스가 삼켜 버린 기독교」

나는 기독교가 현대 문화의 절대적 영향력 아래 빠져들게 된 원인이 사유(思惟) 능력의 상실에 있다고 생각한다. 많은 크리스천이 자기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신자유주의의 질서 아래에서 ‘소비자’로서만 존재하고 있다. 우리는 일요일에만 교회에 가는 ‘선데이 크리스천’의 시대를 지나 일주일에 한 번씩 교회 의자를 엉덩이로 따뜻하게 데워 주는 ‘벤치 워머(bench warmer) 크리스천’으로 살아가고 있다. 상상력의 원천인 성경을 가지고서도 아무런 상상력을 발휘하지 못한 채 세상이 넉넉히 감당할 수 있는 사람으로 살아간다. 상상력이 제압된 크리스천은 하나님 나라를 꿈꾸지 못한다. 그저 세상이 부여하는 이미지와 정체성을 따라 껍데기만 크리스천인 삶을 살아갈 뿐이다. 이 책은 상상력을 잃어버린 교회에게 상상력을 되돌려 주고, 온갖 조롱과 멸시 속에 있는 십자가를 미디어의 영역에서 복권시키는 데 그 목적이 있다. 포스트모던적 무기력증과 허무주의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크리스천들의 상상력을 세상으로부터 해방하기 위해 이 책이 작은 해독제가 되길 기대해 본다.

홍광수 – 넷플릭스가 삼켜 버린 기독교

내가 여기 있습니다
도서 「내가 여기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사랑의 본질로 ‘오래 참음’을 첫 번째로 들었다. 언뜻 생각하면 ‘오래 참는 것이 어떻게 사랑과 관계있다고 할 수 있는가’ 하고 반문할 수 있다. 그러나 사랑을 위한 마음가짐의 기본은 ‘참는 것’이다. 참으려면 사물이나 인간을 보는 눈과 마음이 넓어야 한다. 무한한 마음의 쿠션을 가져야 가능하다. 참음과 사랑의 관계는 어머니의 사랑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어머니는 자식을 사랑하여, 아무리 화가 나도 자식이 부모의 마음을 알 때까지 기다리며 참는다. 어머니는 자기의 생명을 잃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자식을 사랑하는 본능을 가지고 있다. 어머니는 자식을 위하여서는 모든 것을 참고 견딘다.

강구일 – 내가 여기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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