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야에서 살아가는 양들의 고백
도서 「광야에서 살아가는 양들의 고백」

많은 이가 마음 속에 품고 살아가는 한가지 물음이 있다. ‘하나님을 목자로 삼고 살아가고 있는데도 왜 나의 삶은 푸른 초장이 아니라 광야 같을까?’ 하는 것이다. 우리는 그 대답을 이런 그림을 그려가는 가운데 찾게 될 것이다. 그리고 광야와 같은 척박한 삶이 하나님과 멀어져 있다는 증거가 아님을, 오히려 하나님이 광야 인생길을 걷는 우리의 목자이시기에 오늘도 이 광야를 견뎌내면서 살아가고 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이 책을 덮을 때쯤 되면 시편 23편의 양들이 광야에서 살아가면서도 어떻게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라고 고백할 수 있는지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광야 인생을 살아가는 우리도 이렇게 고백하게 될 것이다. 양은 아무 생각 없이 바로 앞에 가는 양을 무조건 따라간다. 한 마리가 구덩이에 빠지면 두 마리, 세 마리, 네 마리, 다섯 마리 줄줄이 다 구덩이에 빠지고 마는 것이 양이다. 이렇게 늘 길을 잃어버리고 헤매는 것이 양이다. 그리고 길을 잃으면 절대로 혼자서는 길을 찾아오지 못하는 짐승이 바로 양이다. 그래서 반드시 목자가 양을 찾아가야 한다. 목자가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을 찾아가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진희 – 광야에서 살아가는 양들의 고백

관계에서 공동체로
도서 「관계에서 공동체로」

성경의 계시는 하나님이 자신의 성품이나 도덕법이나 성품(누구신가)을 계시한다(Revealed). 반면에 꾸란의 와히는 하늘에 있는 보존된 판이 지브릴 천사를 통해 무함마드에게 내려온(Sent down) 것이고 알라가 무함마드에게 샤리아를 알려 준 것이다. 따라서 무슬림 배경의 신자에게는 꾸란의 와히와 아랍어 성경의 와히가 그 개념에서 어떤 차이가 나는지를 설명해 줘야 한다. 제자양육은 특별히 제한된 시간을 두고 훈련하는 것이 아니고 평생 주님을 닮아가는 과정이다. BMB가 그리스도 안에서 새피조물이 되고(고후 5:17) 그의 생각(mind)이 변혁될 때(롬 12:2) 세계관의 혁신이 시작된다.

공일주 – 관계에서 공동체로

신앙의 지구력은 어떻게 생기는가?
도서 「신앙의 지구력은 어떻게 생기는가?」

성령님은 살아 계시는가? 아니면 돌아가셨는가? 성령님이 돌아가셨을 리는 없으니, 그렇다면 우리가 죽은 것인가? 왜 우리의 신앙은 변화되거나 성장하지 않고 여전히 그대로인가? 무엇이 잘못되었는가?” 이 질문을 품고서 달리기하고 독서하고 말씀을 묵상하면서 많은 깨달음이 있었다. 한마디로 말하면, 신앙이 달라지지 않는 이유는 신앙의 지구력이 없기 때문이다. 신앙은 단거리가 아니다. 100미터, 200미터 달리기가 아니다. 100세 시대인 지금 최소 80-90년을 달려야 하는 그야말로 장거리 중의 장거리 레이스다. 믿음이 없거나 연약한 사람이 먹으면 하루아침에 영적 거인으로 자라게 되는 신비한 약은 없다. 장거리 경기의 대표는 마라톤이다. 마라톤에 가장 필요한 것은 지구력이다. 신앙도 장기 레이스다. 죽을 때까지 달려야 한다. 그래서 신앙인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지구력이다.

조성환 – 신앙의 지구력은 어떻게 생기는가?

  • 네이버 블러그 공유하기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press@cdaily.co.kr

- Copyright ⓒ기독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독일보 #기독일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