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한국 경제는 고물가와 내수 침체에 대한 우려 속에서도 연간 2%의 성장률을 기록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나쁘지 않은 성과로 보일 수 있으나, 내용을 들여다보면 성장의 질에 대한 고민이 커지고 있다. 전체 성장률의 96.5%가 수출에 의해 달성된 것으로 나타나면서, 한국 경제의 구조적 편중에 대한 경고음이 커지고 있다.
수출이 사실상 성장을 견인한 배경에는 내수 부진이 자리잡고 있다. 정부 통계에 따르면 2023년 수출이 경제성장률에 기여한 정도는 1.93%포인트로, 전체 성장률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전 세계 경제가 타격을 입은 2020년을 제외하면, 이는 2010년대 이후 가장 높은 수출 기여도다.
통상적으로 한국 경제의 수출 의존도는 30\~60% 수준에서 유지돼 왔지만, 지난해는 이를 훌쩍 뛰어넘어 96.5%에 달했다. 2010년(62.9%)과 2011년(72.2%) 수출 호황기에도 70%를 넘지 않았던 점을 감안하면, 수출 중심 구조가 그 어느 때보다 뚜렷해졌다는 평가다. 특히 코로나19 이후 수출 회복세가 지속되면서 내수의 부진을 보완했지만, 장기적으로는 불균형 성장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한국무역협회는 "수출의 높은 성장 기여도는 수출 주도 성장 전략을 지속적으로 추진해야 할 필요성을 보여준다"며, "수출 품목의 양적 확대와 함께 질적 고도화, 산업 다변화가 병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수출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을 경우 외부 변수에 따른 충격이 고스란히 국내 경제로 전이될 수 있다는 점에서 경계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특히 미국과의 통상 마찰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대미 수출이 타격을 입고 있으며, 글로벌 공급망 재편 등 대외 변수에 따라 성장 기반이 흔들릴 수 있다는 분석이다.
김현수 대한상공회의소 경제정책팀장은 "대외 불확실성이 확대되는 상황에서 내수는 경제의 안전판 역할을 할 수 있다"며, "단기적인 소비 진작책만으로는 한계가 뚜렷하므로, 구조개혁과 미래 산업에 대한 선제적 투자가 병행돼야 지속가능한 성장이 가능하다"고 지적했다.
또한 수출 품목의 편중 현상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현재 한국의 수출은 반도체와 자동차 등 일부 주력 품목에 지나치게 집중돼 있어, 해당 업종의 경기 부진이 전체 경제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는 구조다. 무역협회는 "반도체, 자동차 등 특정 산업에 대한 의존도를 완화하고 수출 품목을 다변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국제 정세의 변화 또한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재집권 가능성을 시사하면서 미중 갈등 재점화, 보호무역주의 확산 등 글로벌 통상 환경의 불확실성도 다시 부각되고 있다. 이에 따라 수출 의존 경제 구조에 대한 리스크는 더욱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새 정부 출범을 앞둔 시점에서, 한국 경제는 내수 활성화와 수출 전략 재정립이라는 복합 과제를 동시에 안고 있다. 단기적인 수치에 안주하기보다는 균형 잡힌 성장 모델로의 전환과 중장기적인 구조개혁이 절실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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